<국대는 국대다>의 남현희

<국대는 국대다>의 남현희 ⓒ MBN


전설은 위대하다. 그러나 엄전드(엄마+레전드)는 더 위대하다. 열악한 신체조건, 세상의 편견을 극복하고 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길을 완성해낸 '땅콩 검객' 남현희와 엄마들의 특별한 도전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지난 5일 방송한 MBN <국대는 국대다> 5회에서는 세 번째 레전드로 펜싱 스타 남현희가 출연했다. 앞서 출연한 탁구 현정화, 씨름 이만기가 개인전이었다면 이번에는 최초의 '팀전'방식으로 진행됐다. 남현희와 이혜선, 서미정까지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결혼과 육아에 전념하던 여성 펜싱 레전드 3인이 팀을 결성하여 현역 국가대표 후배들과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
 
남현희를 오랫동안 지켜본 조종형 대한펜싱협회 부회장은 그녀를 "한국 펜싱의 역사를 새롭게 쓴 선수"로, 김창곤 심판위원장은 "작은 거인 혹은 괴물"이라는 표현으로 남현희를 정의했다. 현역 시절 세계 랭킹 최고 2위까지 기록한 남현희는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4회 연속 출전했고, 2008년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메달(은메달)을 비롯하여 2006년 도하AG과 2010 광저우 AG 개인전-단체전 금메달 2연패, 2012런던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2016 우시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했다.
 
라이벌이었던 세계랭킹 1위 발렌티나 베잘리와의 올림픽 명승부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조종형 부회장은 "그 당시에 베잘리를 이긴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였다. 베잘리와 경기를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할 만큼 세계 펜싱의 획을 그은 선수였다"고 회상했다.

남현희는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베잘리와 격돌했다. 4대 4로 맞선 마지막 라운드에서 종료 41초를 남기고 동시타를 이뤘으나 비디오판독 결과 남현희가 먼저 공격에 성공한 것이 인정되어 5대 4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29초를 남겨놓고 베잘리의 반격으로 동점을 허용했고 4초전에서는 끝내 역전을 허용했다. 남현희는 마지막 공격을 노렸으나 득점은 인정되지 못하고 결국 다잡은 금메달을 눈앞에서 아깝게 내줘야했다.
 
조종형은 "베잘리가 훗날 이야기하기를 '남현희는 자기가 만나본 선수 중 제일 상대하기 까다롭고 힘들었다'고 하더라"는 뒷이야기를 밝혔다. 국영호 스포츠기자는 "여자펜싱도 세계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남현희가 남긴 영향력을 극찬했다.
 
남현희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자신의 작은 키에 대하여 "정확하게 154.7cm"라고 밝혔다. 펜싱 강국들이 많은 유럽에서 작다고 하는 선수들이 165cm 정도였다. 팔과 다리가 길수록 유리한 펜싱이라는 종목 특성상 선수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체형이었다. 남현희는 외국선수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본인의 장점을 '스피드'라고 밝히며 "역습을 위하여 발놀림을 많이 가져가야했다"고 고백했다. 배성재는 순간이동을 연상시키는 남현희의 민첩하고 현란한 풋워크를 영화 <여고괴담>의 명장면에 비유하기도 했다.
 
선수시절의 빛나는 영광은 그녀에게 무릎을 희생하는 대가를 요구했다. 무릎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펜싱 특성상, 남현희는 "2018년에 연골제거 수술을 했다"고 고백하며 현재 연골이 20%만 남아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남현희는 "팡트(팔과 다리를 길게 뻗어 상대를 찌르는 동작)을 할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키가 작으니까 최대치로 늘려서 공격을 해야했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남현희는 가장 기억에 남는 메달로 한국 펜싱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이었던 2005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꼽았다. 펜싱계에서는 올림픽보다도 더 어려운 무대가 세계선수권으로 꼽힌다. 올림픽은 8강부터 시작하지만 세계선수권은 64강부터 짧은 시간안에 여러 단계를 거쳐야하는 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더 컸다.
 
남현희-서미정-이혜선-정길옥으로 구성된 당시 여자국가대표팀은 지금도 역대 최고의 멤버들로 꼽힐 만큼 전설로 남아있다. 결승에서 루마니아를 상대한 한국은 남현희의 분전으로 승부를 19대 19, 연장까지 몰고가는 데 성공했다.

먼저 득점을 올리는 쪽이 승리하는 연장전에서 1분간 실점없이 버티기만 해도 이기는 상황. 남현희는 1분을 버틸것이냐, 먼저 공격을 노릴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남현희는 상대의 공격을 받아쳐서 역습을 노리는 것을 선택했고 남현희의 검이 먼저 상대의 상체를 찌르는 데 성공하며 기적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한국 펜싱의 역사를 새롭게 쓴 순간, 당시 얼싸안고 환호하던 선수들의 모습은 다시 봐도 국민들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김창곤 위원장은 "그때만 생각하면 전율이 오른다"고 회상했다.
 
남현희는 "마지막 주자 역할이 처음이었다. 저한테는 기회였기에 잘 해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에이스로서의 부담감에 대하여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하지는 않지만, 즐기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하니까"라며 책임감을 드러냈다.
 
남현희의 흑역사로 꼽히는 성형 파문도 언급됐다. 남현희는 성형수술 논란으로 국가대표 자격까지 정지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남현희는 당시 상황에 대하여 "운동에 미쳐있다보니 저한테 자신감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성형으로 이슈화가 되면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현희의 살신성인 이후로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남현희는 "이제는 '성형의 날'이 각 팀마다 있다고 하더라"고 너스레를 떨며 폭소를 자아냈다.
 
2012년 올림픽 이후에는 출산과 육아로 또 1년여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 검객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2014 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하며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남현희는 2013년 출산후 60일 만에 팀으로 복귀하고 4개월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나서야했던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남현희는 "원래 가족을 경기장에 부르지 않는데 저때는 은퇴경기라고 생각하고 초청했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들었다"면서 경기장에 딸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너와 함께 있을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며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남현희는 "원래 제 소망은 평범한 엄마였다. 그런데 저는 바쁜 엄마이지 않았나. 아이한테는 '멋진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엄마의 현역생활을 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에게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남현희의 미션은 은퇴선수와 현역 국가대표의 3대 3 단체전 팀대결이었다. 남편인 전 싸이클 국가대표 공효석과 딸 공하이 양은, 남현희가 현역 국가대표들과 대결한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하이는 "연습하면 이기고 연습 안하면 질 것"이라는 우문현답을 내놓았고, 공효석은 "걱정반 우려반"이라면서도 "그래도 남현희니까"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남현희는 예전의 동료였던 이혜선과 서미정을 섭외했다. 세 사람 모두 이제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경력단절 엄마들'의 전형이었다. 이혜선과 서미정은 모두 공백기에 대한 부담과 예전같지 않은 몸상태로 처음엔 난색을 표시했다. 하지만 남현희의 추억팔이를 더한 설득, 그리고 엄마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자녀들의 권유로 마침내 도전을 결정했다. 

세 사람은 제주도에서 맏언니 서미정이 운영하는 펜싱 체육관에서 합숙훈련을 진행했다. 평균연령 41.6세로 처음에는 스트레칭조차 벅차하던 엄전드들은 시간이 흐르고 훈련을 진행하면서 현역 시절의 감과 열정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모습이었다. 훈련을 마친 엄전드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다시 모여서 캔맥주를 한잔씩 나누며 모처럼 엄마의 시간에서 해방되어 추억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서미정은 현역 시절 과도한 운동의 후유증 때문에 허리디스크로 사진을 촬영하면 "척추가 까맣게 나온다"고 고백했다. 남현희는 펜싱이 비인기종목 취급을 받는 데 대한 서운함을 고백하며 "내 이름을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안 잊혀졌으면 좋겠다"며 여전한 펜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남자 펜싱 레전드 최병철이 엄전드를 위한 특별코치로 등장하여 장신 선수들을 대비한 스페셜 훈련을 진행했다. 엄전드들과 팽팽한 접전을 펼친 의문의 연습 상대는 놀랍게도 남자 중학생 유망주들로서 엄전드들의 아들뻘이었다. 최병철은 "중학생이지만 성인에 가까운 체격을 가진 선수들을 상대로, 공격력에서는 크게 밀리지 않았다"고 평하면서도 "포인트가 잘 맞지않고 빗나갔다"는 것을 엄전드 팀의 보완 과제로 꼽았다.
 
최병철은 엄전드들이 "각자 개성이 강한데 색깔이 다르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성적을 낸 팀이기에 현역이라고 해도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한번 정점을 찍은 선수들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며 명승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남현희는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보여주고싶은 경기"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20대 현역 국가대표들을 상대로 할 엄전드의 위대한 도전을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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