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1_개봉한지도 모르게 묻히는 영화들 속에서
 
개봉 일을 표기하긴 했지만 <뉴욕 42번가 기타샵>은 실은 곧바로 2차 시장으로 직행할 운명의 영화다. 수입/배급사도 고민이 많았을 게다. 매달 숱하게 많은 영화가 개봉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그런 영화도 있었어요? 하는 대접에 만족해야 한다. 그나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정보가 나온다는 정도? 어떤 영화는 '천만 영화'로 표상되는 대박의 꿈을 꾸며 코로나 시국에 끊임없이 개봉시기를 미뤄가는 중이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영화들은 그래도 개봉영화 타이틀이 붙어야 조금이나마 나은 조건에 손실을 줄일 수 있기에 꾸역꾸역 개봉 중이다. 이 영화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는 걸로 치부될 작품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되면 그 작품이 제대로 평가될 차례조차 얻지 못한 채 그냥 묻혀버리는 상황에 대해 슬퍼지거나 분노하게 될 때가 생긴다. 이 영화는 저주받은 걸작이라고까지 오버액션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어쩌다 발생하곤 하는 역주행의 기적은 아니더라도 가늘고 길게 누군가는 계속 언급하고 호명되기를 꿈꾸고픈 그런 작품이다.
 
2_아주 특별한 가게를 소개합니다!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뉴욕 구도심, 42번가 거리 한 구석에는 반세기 넘도록 자리를 지켜온 노포 악기점 카민 스트리트 기타가 있다. 주인장 릭 켈리는 스마트 폰도 컴퓨터도 없이 90이 훌쩍 넘은 노모 도로시의 수기 장부의 도움에 힘입어 가게를 꾸려가는 중이다. 얼마 전부터 이 가게에는 전직 미술가인 이십대 중반 여성 신디가 견습생으로 들어와 있다. 그녀는 릭에게 핸드메이드 기타 제작을 배우는 중이다. 영화는 이 가게의 일주일을 요일별로 보여준다. 그게 전부다.
 
오래된 전통을 지키는 노포에 얽힌 사연과 그곳을 드나드는 유명인들, 장인의 고집을 다루는 작품은 국내외에서 양산되는 중이다. <뉴욕 42번가 기타샵> 역시 그 범주에서 거의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기타가게 주인을 닮은꼴이다. 재료가 빈약할 때 요리하는 이는 양념이나 손맛을 발휘해 재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힘쓴다. 반대로 재료가 충분히 좋다면 손질은 최소한에 그치는 게 좋다.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그 당연한 기본에 엄격함이 느껴질 만큼 충실하다. 이게 보기보다 정말 힘든 지점이다. 좋은 재료를 대하면 이걸로 뭔가 솜씨를 뽐내고픈 과시욕이 없다가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겉도는 기름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감독이 누굴까? 찾아본다. 론 만. 생소한 이름이다. 필모그래피를 검색한다. 직접 연출한 작품은 많지 않지만 국내외 영화제에서 소개된 수십 편의 다큐멘터리에 기획자로 참여한 60살이 훌쩍 넘은 베테랑이다. 예전에 인상 깊게 봤었지만 재 관람할 순 없었던 몇 편의 작품에 그의 이름이 걸쳐져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이 작품을 만든 솜씨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화려하게 과시하지 않지만 다큐멘터리에 담긴 사람들과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라 하지만 주5일제를 충실히 지키는 영업방침인지 영화의 시간은 월/화/수/목/금 달력 안에서 멈춘다. 특별한 전개상 변형이 없이 내내 그렇다. 가게 문을 열고 수십 년간 반복해온 일과를 수행한다. 간간히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게 문이 열린다. 손님들이 찾아온다.
 
아마 이 영화를 혹여나 찾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그 손님들 때문일 테다. 기타를 구입하러 혹은 수선을 의뢰하러 들어오는 이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별다른 설명 없이 뜬다. 얼른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한다. 오 마이 갓! 위키피디아에 줄줄이 항목이 나온다. 다들 경력과 내공이 만만찮다. 그래미상 수상자나 명예의 전당급 뮤지션들이 매일매일 이곳을 찾는다. 얼굴은 생소하지만 찾아보니 이름은 들었을 레전드 급 뮤지션의 밴드 동료나 세션들인 경우는 기본이다. 이 가게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기타 좀 손봐달라며 어디선가 봄직한 얼굴이 불쑥 들어온다. 짐 자무쉬다. 그리고 패티 스미스와 밥 딜런과 루 리드의 동료들. 대체 이 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인장은 뭐하는 사람인가. 머리가 점점 '아스트랄'해진다.
 
3_뉴욕의 역사를 기타에 압축하는 '장인'
 
"뉴욕 42번가 기타샵"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뉴욕 42번가 기타샵"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릭 켈리는 기타를 만든다. 그는 오십 년째 (루 리드가 애용하던 것을 포함해) 수많은 뮤지션들의 기타를 만들어 왔다. 물론 그가 만든 기타는 세계적 유명세를 얻거나 양산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는 이들만 안다. 하지만 그 기타들은 명품 브랜드 기타들의 디자인이나 특성을 조합했을 뿐인데도 특별한 소리를 낸다. 물론 디자인도 한 몫을 한다. 릭 켈리가 수작업으로 틀을 잡고 견습생 신디가 전공을 살려 '한 땀 한 땀' 외장 마무리를 해내는 오직 One and Only 작업물이 들어찬 가게 안 풍경은 낙원상가에 진입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기타 키드들에겐 꿈의 궁전처럼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아직 비밀은 더 있다. 이곳의 기타들은 전부 진정한 뉴욕 산이다. 릭 켈리는 도시의 곳곳에서 재건축 소식을 접하면 출동한다. 그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철거과정에서 버려지거나 폐자재로 처분될 무더기 속에서 오래된 나무들을 구해온다. 이제는 멸종된 수목들,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재목들을 골라내는 감식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렵게 구해온 목재들의 출처와 유래가 구술사 그 자체인 마냥 손님들과 즐겁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하나둘 언급된다. 뉴욕 도시역사의 당당한 일부이자 사라져가는 과거의 기억들이다.
 
그 특별한 원재료를 가공해 만든 기타에다 그는 '명품'이라 취급되는 부류라면 희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과시적으로 각인하는 넘버링 대신에 기타 바디의 원 출처를 기입한다. 뉴욕의 곳곳에서 사라지는 추억들이 그의 기타 어느 구석에는 기록되는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그저 음악사의 작은 외전으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도시공간의 사회학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낸다.
 
고유한 커스텀 기타의 특별한 소리는 오직 그 예민한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귀로만 구분할 수 있다. 영화는 그게 피나는 무공수련의 기예 차원이 아니라 엄밀한 도시고고학적 기획에 기반 둔 것임을 천명한다. 릭 켈리라는 장인은 어느 순간에 관객들의 시선을 통해 역사가이자 철학자로 변신한다. 그는 신품 브랜드 기타라면 리콜 되고 남을 바디의 고유한 흠을 기타의 인장처럼 그 재료의 기원을 설명하며 보존한다. 그의 철학과 가치에 공명하는 이들만이 그 창조물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릭 켈리는 42번가의 '방망이 깎는 노인'인 셈이다. (다만 그는 매우 친절하다) 특히 1854년에 시작했던 뉴욕 최초의 선술집 자리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기타가 기억에 남는다. 장난삼아 릭이 붙인 이름도 술꾼들의 맥주에 절은 바디~ 이런 식이다. 영화 내내 이런 유머가 넘실거린다.
 
4_취향과 직업의 공동체를 꿈꾸며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여기까지면 노포 장인과 같이 늙어가는 손님들의 회고담으로 끝날 테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 더해 견습생 신디의 사연을 한 겹 더 두텁게 걸쳐놓는다. 미술학도였지만 누구나 생에서 겪을 법한 진로와 장래를 둘러싼 방황 중이던 그녀는 몇 년 전 발견한 릭의 기타샵에서 길을 찾는다. 중세의 장인-도제 관계처럼 신디는 릭에게 하나씩 배우며 자신의 기타를 만든다. 릭의 클래식한 디자인에 신디의 감각이 더해지면서 카민 스트리트의 기타는 더욱 특별해진다.
 
하지만 손님들 중 일부는 그녀의 존재가 가져온 작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거부하곤 한다. 자신들이 인정하는 '장인' 릭이 아니라 문신과 염색 잔뜩 한 젊은 여성이 기타를 만든다는 게 낯선 것이다. 록은 마초의 전유물이라는 일각의 편견은 여전히 잔존해 있음을 바람결에 확인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신디는 그런 부정적 시선을 돌파하려는 결의에 가득 차 있다.
 
신디는 젊은 세대답게 SNS에 능숙하다.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가게의 새 콜렉션에 '좋아요'가 늘어나면 신디는 릭에게 자랑스럽게 보이지만 릭은 그저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뿐이다. 반세기의 격차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사제관계에는 큰 문제가 없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걸로 족하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소통과 해법 은 역시나 전 지구적인 화두이긴 한 것 같다.
 
5_피할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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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42번가 기타샵"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이제 마지막 지점이 남았다. 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다. 세계 어느 대도시건 공통인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다. 가게 안에서 사람들은 일상의 안부와 함께 옆 건물이 거액에 팔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매수액은 아마 릭 켈리가 평생 구경도 못해봤을 금액이다. 그는 평소 가게 손님인 음악인들과 기타를 향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 '가난'이 운명처럼 깃들었다고 자조하며 웃곤 했었지만 유독 그 순간들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리고 평소 출입하던 손님들과 달리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이가 가게에 들어온다. 이 낯선이방인은 바로 공인중개사다. 그는 릭과 덕담을 나누며 자신을 소개한다. 기타를 치는 친구들이 무척 좋아하겠다며 공인중개사는 옆 건물 이야기를 알고 있냐고 묻는다. 대화는 우호적이지만 관객은 어떤 징후를 자연스럽게 느낄 게다. 그가 짧은 방문을 마치고 나간 뒤 릭의 시선, 그리고 카메라는 유독 길게 바깥풍경을 조명한다.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감정이 실린 순간이다.
 
그리고 영화 속 일주일이 지난다. 릭이 가게 입구로 잠깐 나와 휴식을 취한다. 평범한 어느 하루의 일상. 하지만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옆 건물 공사소리다. 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릭 켈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별 개의치 않아 보이지만 그의 일주일을 함께했던 관객들은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어떤 비가의 찰나다.
 
<뉴욕 42번가 기타샵>은 영화가 담고 있는 기타샵 가게 안 소우주를 닮은꼴이다. 뉴욕의 유서 깊은 노포와 장인의 이야기라 더 특별하게 보이는 건 분명하지만, 이 공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사실 접하거나 스치곤 하는 숱한 사례들의 특별한 예시일 뿐이다. 그렇기에 비단 음악영화 애호가뿐만 아니라 도시공간을 다룬 작품을 찾는 이들, 인디문화에 공명하는 이들 모두에게 각자의 의미로 다가갈 작품이라 자신한다. 그저 이 영화가 온전하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할 뿐이다.
 
<작품정보>
 
뉴욕 42번가 기타샵 Carmine Street Guitars
2018|캐나다|다큐멘터리
2022. 2. 22. 개봉|80분|전체관람가
감독 론 만
출연 릭 켈리, 신디 휼레지, 도로시 켈리, 그리고 짐 자무쉬와 수많은 뮤지션들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뉴욕 42번가 기타샵"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뉴욕 42번가 기타샵"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영화사 진진

뉴욕 42번가 기타샵 론 만 짐 자무쉬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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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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