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의 동계올림픽 최고 기대 종목 쇼트트랙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한국은 남녀 1500m에서 황대헌과 최민정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 1000m와 3000m 계주,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총 5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한국은 대회 초반 중국의 황당한 편파판정 악재로 다소 불안하게 일정을 시작했지만 대회를 치를수록 뛰어난 기량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10명 중 9명이 메달을 목에 걸며 선전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최민정은 평창 올림픽 2관왕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3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전이경, 박승희와 함께 한국 쇼트트랙 역대 최다 메달 타이기록(5개)을 세웠다. 소치 올림픽과 평창올림픽에서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냈던 김아랑 역시 이번에도 3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쇼트트랙 역사상 최초로 3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이라는 '아랑전설'을 써내려 갔다.

한국 역시 이번 대회에서 곽윤기나 김아랑 같은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지만 쇼트트랙에서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부터 베이징 올림픽까지 무려 5연속 올림픽에 출전하며 스포츠 팬들을 감동시킨 선수들이 있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5000m 계주 우승으로 올림픽에서만 4번째 금메달을 챙긴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과 올림픽에서 무려 11개의 메달을 수확한 동계 올림픽의 살아있는 전설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가 그 주인공이다.

500m부터 1500m, 계주까지 모두 강한 아믈랭
 
 캐나다의 쇼트트랙 영웅 샤를 아믈랭(가운데)은 5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캐나다의 쇼트트랙 영웅 샤를 아믈랭(가운데)은 5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SBS 화면 캡처

 
1984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39세가 된 아믈랭은 중국대표팀의 기술코치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 1985년생)보다도 한 살 더 많은 노장 선수다. 2004-2005 시즌부터 시니어 국제무대에 등장한 아믈랭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통해 처음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량이 완전이 무르익지 못했던 아믈랭은 개인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단체전 은메달을 통해 올림픽 메달행진을 시작했다.

토리노 올림픽 이후 기량이 급성장한 아믈랭은 2010년 자국에서 열린 밴쿠버 올림픽에서 캐나다의 에이스로 큰 기대를 모았고 5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밴쿠버 올림픽까지만 해도 단거리에 강한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아믈랭은 올림픽 이후 1000m와 1500m 등 중장거리 종목에 힘을 쏟았고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1000m와 1500m에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아믈랭은 쇼트트랙 선수로는 적지 않은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도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1500m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아믈랭은 1000m 준준결승과 500m 예선에서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불운을 겪었고 캐나다의 절대강세종목이었던 5000m 계주에서도 동료 선수가 넘어지면서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당시 계주에서 넘어졌던 선수는 찰스 아믈랭의 친동생 프랑수아 아믈랭이었다.

다시 4년 후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2018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아믈랭은 1500m 결승과 1000m 준결승, 500m예선에서 나란히 실격을 당하면서 메달 기회를 날렸다. 아믈랭은 5000m 계주 동메달로 마지막 올림픽을 끝내는 듯했지만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2022년 베이징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아믈랭은 베이징올림픽 5000m 계주에서 4번 주자로 출전해 캐나다의 금메달에 기여하며 자신의 통산 4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통산 5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낸 아믈랭은 캐나다 남자 쇼트트랙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던 마크 가뇽(금3, 동2)을 뛰어넘어 캐나다의 역대 동계올림픽 최다메달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는 안현수, 이호석과 경쟁하다가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황대헌, 이준서와 경쟁한 아믈랭은 말이 필요없는 세계 쇼트트랙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토리노에서 시작한 올림픽, 밀라노에서 마감?
 
500m 결승에서 우승한 아리아나 폰타나  이탈리아 대표 아리아나 폰타나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 경기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 500m 결승에서 우승한 아리아나 폰타나 이탈리아 대표 아리아나 폰타나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 경기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0년대까지 세계 여자 쇼트트랙은 한국과 중국의 2파전이었다. 초반 치고 나가는 힘이 좋은 중국은 단거리에서 강세를 보였고 지구력과 협동심이 좋은 한국은 중장거리와 계주종목에 강했다. 가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선수들이 한국과 중국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한국과 중국의 '양강구도'는 굳건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여자 쇼트트랙의 양강구도에 균열을 일으킨 선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였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000m 계주에서 중국의 실격으로 이탈리아 여자 쇼트트랙에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폰타나는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도 이탈리아의 에이스로 출전해 5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폰타나는 4년 후 소치 올림픽에서도 500m 은메달, 1500m 동메달, 3000m 계주 동메달을 따내며 특정 종목이 아닌 전 종목에서 고르게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인정 받았다.

폰타나의 전성기는 그녀의 4번째 올림픽이었던 2018년 평창대회에서 찾아왔다. 폰타나는 평창올림픽에서 주종목 500m 금메달과 1000m 동메달, 그리고 3000m 계주에서는 중국과 캐나다의 실격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평창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모두 수집하며 역대 올림픽 쇼트트랙 최다메달 타이기록(8개)을 세웠다. 만 서른을 바라보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선수로서 최정점에 오른 것이다. 

폰타나는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은퇴를 하지 않고 2022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폰타나는 대회 첫날 혼성계주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자신의 올림픽 9번째 메달을 따냈고 500m에서도 네덜란드의 새로운 강자 쉬자너 스휠팅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폰타나는 대회 마지막날 1500m에서도 최민정에 이어 2위로 들어오며 올림픽에서 통산 11번째 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2026년이면 만 36세가 되는 데다가 올림픽에서 더 이상 이룰 것도 없는 폰타나가 6번째 올림픽에 도전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26년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올림픽 커리어를 시작한 폰타나가 2026년 밀라노에서 올림픽 커리어를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고 영광스런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폰타나는 이미 4년 후 밀라노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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