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을 수상한 이랑의 무대

'2022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을 수상한 이랑의 무대 ⓒ KBS Joy

 
지난 1월 23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제31회 서울가요대상'이 열렸다. 'Next Level'의 에스파를 비롯해, 오마이걸, NCT 127 등 아이돌 그룹으로 가득 채워진 자리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이었다.

그 이름이 낯선 이들에게 소개하자면, 이랑은 독립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며, 여성 뮤지션이다. 2집 <신의 놀이>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발표한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2022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비롯해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현재 한국 인디 음악신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라고 보아도 좋겠다.

그러나 케이팝 시상식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분명히 생경한 체험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낯설어하는 모양새였다. 한 걸그룹 멤버가 현장에서 이랑을 만나 즐거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처럼 다른 세계관이 만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수상소감의 성격 역시 그 자리에서는 몹시 이질적이었다.

그는 "제 친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 약간 혁명가 같은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고, "부디 제가 이런 노래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랑은 자신의 대표곡 '늑대가 나타났다'를 불렀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가사 중에서.

 
 아티스트 이랑의 정규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

아티스트 이랑의 정규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 ⓒ 유어썸머

 
시대의 그늘을 노래하다

서늘하고 불온한 첼로 연주가 이랑의 독백과 어우러지면서 노래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불평등을 관통하는 노랫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랑 뒤에 선 수십여 명의 합창단은 수화를 통해 '차별금지법 지금'이라는 메시지를 네 차례 선보였다.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중 가요 시상식에서 이런 종류의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랑은 전위적이면서도, 확신에 찬 태도로 시대의 아픔을 힘주어 노래하고 있었다.

내가 이랑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찾아갔을 때였다. 그 유명한 '트로피 경매'의 순간을 직접 목도했다.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았던 이랑은 즉석에서 자신의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당시 이랑은 '지난달 수입이 42만 원이었다. 상금을 주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으니 트로피를 팔아야겠다"며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트로피는 50만 원에 낙찰되었다.) 상의 명예보다 앞서는 이야기는, 하루하루의 생존이 걸린 이야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랑은 꾸준히 시대의 그늘을 노래하는 뮤지션이었다. 이랑은 자본주의의 주변부로 밀려난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서 노래한다. 그가 전달하는 불편한 진실은 누군가에게 염세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랑의 노래는 연대와 굳건한 자매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언뜻 삶을 비관하는 것처럼 들리는 '환란의 세대'에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친구인 박강아름 감독을 언급한 '박강아름' 역시 여성의 삶 자체에 대한 두터운 연대를 선언한 곡이다. 결국 이랑이 부르고자 했던 것은 사랑 노래다.

"내가 하는 말은 다 죽어버리자 죽어버리자
멸망해버리자 하는 그런 것들 뿐인데
이게 사랑 노래라는 걸 내 친구들은 알겠지."
-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중에서.


물론 다른 곳에서 이런 사랑 노래를 듣기란 쉽지 않다. 이랑의 사랑 노래는 독특하다. 시대의 가혹함을 기록한 르포르타주이면서, 함께 살아내자는 격려이기도 하다. 화려한 메트로폴리스 서울. 그곳에는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죽을 퍼 담는' 빈자의 삶이 있다. 밤늦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가정 폭력과 성폭력의 생존자, 소수자도 살고 있다.

이랑은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그 존재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다양한 빛깔의 삶이 부대껴 사는 서울에서, 이랑은 이른바 '이단'을 위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는 들어야 할 이야기다. 이랑은 10년 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노래하고 있었던 뮤지션이다. 그러나 애써 첨언해야겠다. 이랑이 나타났다고.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환란의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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