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발생한 반혁명집단에 의한 국가, 민족, 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불러온 내란이다.

1981년 중국공산당 11기 6중 전회의 역사결의에 등장한 문화대혁명(1966~1976)(이하 문혁)에 대한 평가다. 이는 곧 중국인들의 뇌리에 박힌 문혁에 대한 집단 기억이 되었다. 현재의 건재를 위해 자신들의 과거 잘못에 철두철미할 수 없는 중국공산당은 이 정도 선에서 극단적 계급투쟁의 오류, 좌파적 오류가 불러온 엄청난 재난을 수습하고자 했다.

영화 <원 세컨드>는 중국인들이 지닌 집단 기억에 '1초'의 작은 균열을 내고자 한다. 그 균열은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이 전작인 <인생>, <산사나무 아래>, <5일의 마중>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작업이기도 하다. 왜 장이머우는 문혁의 아픈 기억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는 것일까?

1950년생인 장이머우는 16세에서 26세 가장 민감한 시기 문혁을 겪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국민당 군수참모장이었고, 우파로 몰려 아내와 아이들이라도 지키기 위해 이혼했다. 큰아버지는 대만으로 망명했으니 문혁 시기 우파 출신으로 직간접적인 핍박과 수난, 정신적으로 큰 억압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시간은 가끔 아픔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른다. 문혁의 상흔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그래도 다 같이 평등했던 기억으로 미화, 재생되기도 한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거에 날려버린 새로운 문화대혁명이 필요하다는 급진적 신좌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최근 청소년 게임 금지, 교과 관련 학원 영업 금지 등 시진핑주석의 잇단 강경 조치들은 사회주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문화대혁명의 재림을 떠올리게 한다.
 
장이머우감독의 영화 <원 세컨드> 철저히 배제되었던 그 개인의 사연을 꺼내기 위해 ‘1초’를 설정한다.

▲ 장이머우감독의 영화 <원 세컨드> 철저히 배제되었던 그 개인의 사연을 꺼내기 위해 ‘1초’를 설정한다. ⓒ 김대오

 
장이머우의 최신작 <원 세컨드>는 사막에 묻힌 딸의 필름처럼 이제는 재생할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 재생한다. 그때의 참혹했던 현실이 현재에 유전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집단의 기억만이 아닌 개인의 기억, 개인의 가치 또한 그곳에 자리해야 한다고 집단 기억에 '1초'의 균열을 낸다.
 
사막을 걷는 사내

영화는 사막에서 시작해 사막에서 끝난다. 사막은 당연히 고단했던 문혁 시절에 대한 메타포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내는 우파 지식인으로 노동개조를 당해 6년 동안 집단농장에서 일하다가 탈출했다. 이유는 영화 앞부분에 상영되는 22호 뉴스 영상에 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다.

딸은 우파의 딱지를 떼기 위해 밀가루공장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한다. 검열에서 삭제되어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그 딸은 결국 차에 치어 죽는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그 아래 깔린 개인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하듯 영화는 그 장면을 살려내지 못하고 돌아간다.
 
사막 위에 사내와 소녀 광활하고 황량한 시대에 대비되는 미약한 인간의 모습이 롱테이크로 비춰진다.

▲ 사막 위에 사내와 소녀 광활하고 황량한 시대에 대비되는 미약한 인간의 모습이 롱테이크로 비춰진다. ⓒ 百度

 
 
'영화' 밖의 세 사람

영화 필름이 극장까지 배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 소녀가 필름을 훔치고, 사내는 그걸 어떻게든 극장에 전달하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필름은 극장에 전달되지만 장애가 있는 상영 기사의 아들이 도중에 필름을 떨어뜨려 필름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엉클어지고 만다.

영화가 간절한 사람들은 상영 기사의 지도하에 필름을 물을 끓여 만든 증류수로 세척하고 부채로 말려서 결국 '구출작전'에 성공해 극장에 모여 앉는다. 정신이 이상한 한 지도자가 망가뜨려 놓은 시대의 필름을 인민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문혁에 대한 우화이자 풍자가 아닐 수 없다.
 
영화 필름을 세척해 말리는 사람들 엉클어지고 망가진 시대를 인민들의 헌신이 가까스로 구해내는 우화로 읽힌다.

▲ 영화 필름을 세척해 말리는 사람들 엉클어지고 망가진 시대를 인민들의 헌신이 가까스로 구해내는 우화로 읽힌다. ⓒ 百度

 
영화는 집단 기억, 이데올로기의 살포 현장이다. 이 영화 밖에 있는 세 사람은 영화를 보지 않기에 이 집단 기억 밖에 머물 수 있다. 최소한 저마다에게 닥친 불행에 맞서기 위해 몸부림친다. 동생에게 영화 필름으로 전등갓을 만들어주려는 소녀, 딸이 나오는 뉴스를 기다리는 사내, 그리고 영화를 상영하는 기사가 그들이다.

세 명의 공통점은 철저하게 불행한 문혁의 희생자들이라는 데 있다. 소녀는 문혁의 풍파 속에서 부모를 잃었고, 사내는 우파로 몰려 노동개조 중이고 딸을 잃었으며, 기사는 아들이 어릴 적에 필름 세척제를 마셔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정작 소중한 것은 사라지고

딸이 나오는 '1초'를 수백 번이고 보고 싶어 하는 사내에게 영화 기사는 필름을 이어서 계속 보게 해주고 몰래 보안대에 신고한다. 그래도 사내가 측은했던지 딸이 나오는 필름을 잘라 작별의 선물로 종이에 싸서 건넨다. 자신이 걸어왔던 사막을 사내는 보안대 사람들에게 붙잡혀 끌려간다. 소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한다. 보안대 직원 한 명이 사내의 주머니에 있던 딸이 나온 필름을 꺼내 사막에 버려버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녀는 그곳으로 달려가 바람에 날려 온 필름을 감싼 종이만을 찾아 보관한다.

영화의 배경은 1975년이다. 2년이 지나고 문혁이 끝난 1977년, 사내는 노동개조에서 풀려나 딸의 필름을 찾으러 소녀를 만난다. 그러나 소녀가 건네주는 건 필름을 감싸고 있던 의미 없는 종이뿐이다. 사내와 소녀는 당시 필름이 떨어진 곳에 뛰어가 보지만, 그곳엔 황량한 모래만 바람에 날린다.

사내는 자신의 발밑 모래를 발로 헤쳐 보다가 넘어진다. 허탈하게 웃는다. 어디서 그 잃어버린 딸이 담긴 필름을, 시대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딸을, 훌쩍 떠나버린 자신의 삶의 일부를, 껍데기만 간직하고 정작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그 시대를 다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모래에 묻힌 필름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 10년의 시간이 사막에 묻힌다.

▲ 모래에 묻힌 필름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 10년의 시간이 사막에 묻힌다. ⓒ 百度

 
영화 <원 세컨드>의 플롯 구성은 단순하다. 엉클어질 대로 엉클어진 시대의 혼란을 엉클어진 필름으로 단순화하고 그 시대의 그늘을 저마다의 절박함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다.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을 걸어가는 사내와 소녀의 롱테이크 장면은 문혁의 거친 시대를 걸어가는 민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만 소녀가 동생의 전등갓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훔치는 설정은 다소 인위적인 측면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1초는 너무 짧아, 충분치가 않아(一秒鍾太短,不够)!"

사내가 딸이 나오는 장면을 보고 한 말이다. 단 1초도 개인에게 내주지 않았던 시대, 문혁 10년 역사에 개인은 없었다. 영화 <원 세컨드>는 철저히 배제되었던 그 개인의 사연을 꺼내기 위해 '1초'를 설정한 것이다. 아예 없는 것을 얘기할 수 없기에 '1초'를 내걸고 그 '1초'로 대변되는, 증발해버린 개인을 말하려는 것이다.

역사와 시대가 '1'이고 개인은 '0'이던 그 집단 기억의 시대에 개인의 '1초'를 통해 균열을 내려는 것이다. 그 균열에 물이, 씨앗이 흘러들어 더 큰 공간이 생기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황량한 집단 기억의 자리, '0'이었던 개인의 기억이 '원 세컨드'를 딛고 더 크게 증식하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증발해버린 개인의 기억을 찾아서 집단 기억의 사막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찾아갈 수 있을까.

▲ 증발해버린 개인의 기억을 찾아서 집단 기억의 사막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찾아갈 수 있을까. ⓒ 百度

 
원 세컨드 장이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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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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