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6천, 7천 명을 넘나들고 있다(12월 23일 00시 기준 6919명). 그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남편의 항암으로 집과 근처 마트나 공원 산책 정도가 우리 행동반경의 전부였고 직장도 자차로 출퇴근을 해서 마음을 놓았었다.

코로나 생활 2년을 지나며 숫자가 올라도 몇 천 명의 그 어려운 경우의 수에 우리가 속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뉴스의 불안감만큼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남편의 발병 이전인 6백, 7백 명대를 오갈 때 더 신경 썼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심이 화를 불러온 것일까. 남편의 항암 9회 차를 앞두고 변수가 생겼다. 우리 가족은 모두 2차까지 접종했고 3차 접종을 예약해 놓은 중이었다. 그런데 암환자인 남편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고 이어 남은 가족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변이 바이러스인지 델타인지 오미크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코로나 양성이라는 문자만 도착했다.

항암 치료 받던 남편의 확진... 서둘러 선별검사소로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체크, 감기약과 소독제 등이 들어 있다.
▲ 건강관리세트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체크, 감기약과 소독제 등이 들어 있다.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항암 치료 후 퇴원할 때마다 열이나 두통 등의 증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연락해서 입원하든지 조치하라고 안내를 받았었다. 매번 퇴원할 때마다 받는 안내여서 열이 오르는 것은 특별히 주의 깊게 관찰했고 미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었다. 8회 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다음 주말부터 잠깐 산책을 나갔다 온 남편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 감기 증상에도 열이 높이 올랐지만, 이번 열은 좀 달랐다. 가족 모두 항암 치료의 부작용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치료를 받는 병원에도 연락을 취했다. 내원하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2주에 한 번씩 있는 병원살이도 지겨워하는 사람이라 해열제를 먹어도 되는지 물었고 집에서 견뎌 보겠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땀을 쭉 흘린 후에 열이 잠깐 떨어졌고 다시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먹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주말을 끼고 3일을 고생하고 더는 집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환자도 지켜보는 사람도 지칠 지점에 신기하게도 열이 더는 오르지 않았다. 가족 모두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의 열이 내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코로나 확진 판정은 새로운 시작을 가져왔다. 새벽 6시, 남편이 코로나 양성이라는 문자가 도착했고 가족들 모두 일제히 기상했다. 그제야 고열의 원인이 이해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각자의 증상을 진단했고 딸과 내게 있는 약간의 기침과 코막힘 증상이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 밀려왔다.

환자에 대한 걱정이 마무리되고 9회 차 항암치료를 위해, 끝을 보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것이었다. 새로운 국면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멈춰야 했고 당연히 가족들 모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이미 남편의 고열을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지켜보았기에 남편을 격리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항암 중이라 챙겨야 하는 약도 많았고 먹는 것도 여전히 힘들어해서 가족과 격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남편의 확진과 동시에 당연히 출근은 정지였다. 7시도 안 된 이른 시각이라 학년 담당 부장과 교감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문자로 알렸다. 일단 알겠다는 무거운 답변이 돌아왔다. 확진 소식을 전해 들은 담당 교사는 백번 양보해도 양성이면 큰일이라고 했다. 양성 판정이 나올 경우의 파장에 대해 빠르게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양성이 나오더라도 사정이라도 해서 음성으로 돌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학교에서 맡은 아이들과 같은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 마주친 학생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의 엄청난 문제와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양성 판정이 나온다면 등등의 문제들을 의논했다고 했고 빈자리를 해결할 후속 조치까지 긴박하게 얘기가 오갔다고 했다. 거기에 학기말 생기부를 마감해야 하는 때였다. 안 그래도 모두가 바쁜 정신없는 때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야 하는 상황까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검사 시작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대기 숫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서둘렀지만 확진자의 가족은 선별 검사소에서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방향을 돌려 선별 검사소에서 30~40분여를 기다린 끝에 검사를 완료했다. 결과는 남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날 새벽에나 도착할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니 머리 따로 몸 따로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를 100번 하기로 마음 먹었다
 
2021년은 코로나와 함께 집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 방역물품 2021년은 코로나와 함께 집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다음날 새벽, 나와 딸은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 판정 결과를 새벽에 알리자마자 일찍 회의가 소집되었다고 했다. 출근했던 날 마주친 모든 교사와 학생들이 등교 중지였고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실시간으로 전해오는 카톡과 문자에 온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학급 아이들에게도 등교하지 말고 코로나 검사를 받을 것을 단톡방을 통해 공지했다.

조심스럽게 선생님이 확진이냐고 물어오는 학생도 있었다. 아빠 직장에서 밀접 접촉자라면 퇴근해야 한다고 하며. 그렇다고 답하는데 까닭 모를 수치심이 몰려왔다. 전화를 걸어오는 학부모도 있었다. 본인과 남편, 다른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학교에서 코로나 상황이 발생하면 나 역시 전문가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모두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출근하거나 등교할 수 있다는 말을 차마 못 했다. 동생 학교로 전화를 걸어 확실한 답을 받아 보시라고 했더니 짜증과 한숨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암 환자가 있어 외식도, 외출도, 모임도 갖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옮겨졌을 것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따져볼 기회도 없이 코로나 확진은 온전히 내 책임이 되어버렸다. 직장을 오가는 나로 인한 것일 수도, 어쩌다 산책하는 남편이나 엄마를 대신해 장보기를 책임지는 딸일 수도 있었겠지만, 면역력이 약한 남편에게 가장 먼저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코로나 확진이 부끄러울 일인가, 불쾌한 한숨과 모든 원망의 목소리를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인가 싶었다. 속이 상했다. 그럼에도 여럿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에 죄송하다고 했다. e알리미로 가정통신문이 발송되었고 학교로 걸려오는 수많은 민원에 학교가 온통 난리라고 담당교사는 말했다.

다시 죄송하다고 했다. 화끈하게 죄송하다는 말을 100번은 너끈히 하자고 생각했다. 쉽게 뱉을 말은 아니지만 아낄 말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수고의 마음을 풀 수 있다면.

아이들의 코로나 검사와 결과를 확인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전화와 톡으로 아이들에게 부탁하듯 검사받기를 주문했고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다. 교사들의 검사와 결과가 확인되는 과정도 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있지만 없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방인처럼 지켜만 보고 있을 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단톡방에서 나가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결과는 모두가 음성이었다. 음성이 나오고 나서야 모두들 웃음 표시를 주고받으며 여유를 갖는 모습이었고 그중 한둘은 나의 안부를 따로 물어오기도 했다.

보건소 담당자, 역학 조사관과 담당 의료인의 차례로 전화가 왔다. 누군지 모르는 관계자들의 전화도 둘째 날까지는 계속 이어졌다. 확진자가 많아도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소리를 키워 놓고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았다. 물론 학교에서도 무시로 전화가 걸려왔고, 학급 아이들과도 단톡방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재택 격리다. 2021년은 코로나와 함께 집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2022년의 시작도 마찬가지고. 남편의 항암 치료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순서대로 도착한 구호 물품과 건강관리 물품으로 연말의 식사를 챙기면 될 것이고 그도 부족하면 내키지는 않지만 배달앱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격리 기간 중 딸의 생일도 있어 조촐하지만 우리만의 축하도 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열체크와 산소포화도 등도 생활치료센터 앱을 통해 착실히 보고할 것이고. 그런 와중에도 생기부 마감을 위해 업무도 계속될 것 같다.

이틀이 지나니 집이 좁다는 것을, 아니 더 비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삼일이 지나니 먹기만 하면 체기가 왔다. 끼니는 습관처럼 챙기는 데 움직임은 없으니 소화에 문제가 있었다. 바깥공기도 그리웠다. 집에 오면 바람이 들어올 틈이 없이 문을 닫는 것이 일이었는데 지금은 환기도 환기지만 수시로 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는다. 찬 공기가 나를 바깥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분리수거할 것들과 쓰레기도 쌓이고 있다. 쓰레기는 격리 해제가 되고 나서 소독을 하고 내어 놓아야 한다고 보건소에서 알려주는 방역 수칙에 적혀 있었다. 겨울이라서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딸은 방역 위반 사례 등 관련 기사를 수시로 가족 톡방에 올려놓았다.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보다 엄격하고 철저하게 자신과 가족을 관리하고 있다.

누군가가 고맙게도 죄송할 일도 죄송할 것도 없다고, 그런 말 하지 말고 몸 관리만 잘 하라며 위로를 건넸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울컥했다. 그럼에도 삼사십 번쯤은 저절로 죄송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래저래 속상하고 죄송한 해를 코로나와 함께 마무리하고 있다.

태그:#코로나 확진, #확진자 가족, #항암, #부끄러움
댓글1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