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세계 동시 공개된 비틀스의 'Let It Be' 슈퍼 디럭스 버전 (왼쪽). 기존 표지에 비해 채도를 살짝 낮춘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지난 15일 전세계 동시 공개된 비틀스의 'Let It Be' 슈퍼 디럭스 버전 (왼쪽). 기존 표지에 비해 채도를 살짝 낮춘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설명이 필요 없는 밴드 비틀스(The Beatles). 그들이 남긴 마지막 정규 음반 < Let It Be >가 51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 15일 전세계 동시 공개된 < Let It Be > 슈퍼 디럭스 버전은 1970년 5월 공개되었던 동명의 음반 모든 곡을 비롯해서 다양한 미공개 버전 등 무려 5장(5CD  또는 4LP+1EP)의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된 재발매 버전이다.  

공식 해체 선언 한 달이 지난 후 공개된, 마치 유작과도 마찬가지였던 이 음반은 그해 'Let It Be'와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 2곡의 빌보드 1위곡을 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바 있다. (수록곡 'Get Back' 역시 1위를 차지했지만 이는 음반 발매 1년 전인 1969년 5월에 이뤄진 일이다, 기자 말)  

​이번 < Let It Be > 재발매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는 11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6시간짜리 3부작 다큐멘터리 영화 <비틀스 : 겟 백>의 사운드트랙이나 다름 없는 역할을 맡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일명 < Get Back > 음반이 디럭스 버전을 통해 처음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때문이다.  당초 비틀스의 < Let It Be >는 이 제목이 아니라 < Get Back >이라는 이름을 달고 1969년 초반 발표될 예정이었다.  

​1968년 2장짜리 구성의 <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가 평단과 대중들의 극찬 속에 싱글 히트곡 하나 없이도 전 세계 인기 차트를 휩쓸 만큼 비틀스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뜨거운 창작 열기와 더불어 멤버 사이의 감정의 골 또한 더욱 깊어지면서 팀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에 돌입했던 그들은 예전처럼 라이브를 해보자는 폴 매카트니의 제안 속에 1969년 1월 영국 트위크넘 필름 스튜디오에 집결했다.  

정식 발표 무산된 음반 < Get Back >​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 Walt Disney Studios

 
여기서 잠깐. 비틀스 하면 흔히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언급할 만큼 그들과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 장소 대신 영화 촬영 스튜디오라니? 녹음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보자는 기획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상 관련 장비는 요즘 대비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기에 기존 음반 녹음실의 협소한 규모를 감안하면 설치부터 쉽지 않아 아예 전문 촬영장을 준비해둔 것이다. 하지만 찬바람 몰아치는 영화 촬영소 공간의 냉기와 1월의 혹한기가 맞물리면서 멤버들 사이 불화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특히 폴과 조지 해리슨, 존 레논을 둘러싼 갈등은 프로젝트의 중단을 초래했고 결국 중단된 녹음 작업은 기존 애비로드 스튜디오로 이동 후 재개키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일 중 하나는 바로 애플 빌딩 옥상에서 거행된 'Get Back' 기습 라이브였다. <비긴 어게인> 같은 음악 영화 및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를 오마주해서 공연을 벌일 만큼 비틀스의 이러한 기획은 나름 좋은 결과물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스튜디오 녹음 내용에 대해선 멤버들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 Get Back > 음반의 완성은 점점 수렁에 빠져들었다.  

​유명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 글린 존스(롤링 스톤스, 이글스, 더 후 담당)의 손을 거쳐 2개의 마스터가 만들어졌지만 모두 발매 직전 퇴짜를 맞고 말았다.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으면서 폴은 기존에 자신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새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고 결과적으로 비틀스는 마지막 공식 녹음인 < Abbey Road > 작업 체제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뒤늦게 시작된 < Abbey Road >가 그해 9월 발매된 데 반해 미완성 < Get Back >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새롭게 영입된 프로듀서 필 스펙터(1939~2021)의 손을 거쳐서야 < Let It Be >라는 새로운 제목의 음반으로 되살아 날 수 있었다.

스펙터 작업물에 불만 많던 폴... 훗날 날것 그대로 재발매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 Walt Disney Studios

 
< Let It Be >는 기존 비틀스의 작품들과는 제법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곡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제5의 멤버'로도 불리운 조력자 빌리 프레스턴(키보드)의 가세에 힘입어 건반 연주가 강화된 측면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2개의 빌보드 1위곡에서 알 수 있듯이 필 스펙터의 손을 거치면서 수십차례의 오버 더빙 같은 각종 녹음 기법이 총동원되었고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등이 대거 삽입되면서 당초 폴이 구상했던 거칠고 투박한 록큰롤 사운드와는 전혀 다른 완성품으로 탄생되었다. 

존 레논이 부른 'Across The Universe'는 일부러 재생 속도를 느리게 해서 음을 인위적으로 1키 가량 낮추는 작업도 병행된다. 폭주에 가까웠던 스펙터의 작업에 불만을 품었던 폴은 아예 음반 발매 자체를 반대하기도 했지만 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몇몇 곡들의 경우, 싱글 버전은 기존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1926~2016)이 작업을 했다. 그 결과 'Let It Be'는 앨범 버전과 싱글 버전의 기타 솔로 연주 및 코러스 등이 전혀 다르게 담겨져 있다, 기자 말]

33년이 지난 2003년이 되서야 프로듀서 폴 힉스(콜드플레이, 엘리옷 스미스 담당) 등의 도움을 받아 < Let It Be > 세션 당시 녹음된 테이프 중 자신이 구상했던 방향에 가장 잘 맞는 판본들을 따로 모으고 리믹스한 < Let It Be...Naked >를 발매하면서 1969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는 이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여졌다. 그런데 오랜 기간 < Get Back > 버전의 발매를 학수고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2017년 <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2018년 < The Beatles >, 2019년 < Abbey Road >에 이어 < Let It Be > 또한 슈퍼 디럭스 버전 재발매로 기대에 부응하기에 이른다. 이번 작업 역시 조지 마틴의 아들이자 비틀스 재발매 전담 프로듀서인 자일스 마틴이 참여하면서 큰 힘을 보탰다. 

​비틀스 마니아로선 가장 주목할 만한 글린 존스 믹스 < Get Back > LP 버전(4번 디스크)은 곡의 순서도 대거 변경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준에선 데모곡에 가까울 만큼 투박함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 Let It Be...Naked >가 철저히 폴 매카트니 개인적인 취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 < Get Back >은 기존 롤링 스톤스, 더 후와의 록큰롤 작업에 가까울 만큼 훨씬 직관적이면서 간결함을 담았다. 마치 인공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고 천연 조미료로만 끓인 찌개에 비유해도 좋을 만큼 담백한 풍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I'm Ready'(팻츠 도미노 원곡), 'Save The Last Dance For Me' (드리프터스 원곡). 'Don't Let Me Down'으로 이어지는 록큰롤 메들리, 기존 오케스트라 연주와 웅장한 코러스를 모두 제거한 'The Long and Winding Road', 오리지널 < Get Back >에선 제외되었지만 5번 디스크 < Let It Be EP >를 통해 역시 글린 존스에 의해 원래 재생 속도로 복구된 'Across The Universe' 등의 곡들은 날것에 가까운 비틀스 후반기를 가장 함축적으로 녹여낸다.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신작 <비틀스 : 겟 백>은 어떤 작품?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6시간 3부작으로 제작되었다.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식 예고편의 한 장면.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6시간 3부작으로 제작되었다. ⓒ Walt Disney Studios

 
그런데 여기서 떠오를 만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 발매 50주년에 맞춰서 낼 것이지 왜 1년이나 늦춰 나온 것일까? 이는 영화 <비틀스 : 겟 백>의 개봉 지연과 관련되어 있다. 당초 1970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렛 잇 비>의 재편집 버전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제작 및 배급사 디즈니 측은 2020년 극장 개봉을 계획했었지만 코로나19 악화로 인해 이를 전면 보류, 결국 해를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6시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고려해 극장 개봉 대신 자사의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11월 25일 전 세계 공개로 변경되었다. 이렇다보니 음반 < Let It Be > 디럭스 버전 재발매 역시 올해로 늦어지게 된 것이다.   

​영화 <렛 잇 비>는 1971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사운드트랙상을 받았던 작품이지만 그동안 디지털 영상물로는 공개된 적이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과거 VHS와 레이저디스크 형식으로 소량 유통되었을 뿐 정식 재발매가 오랜 기간 이뤄지지 않었는데 거장 피터 잭슨의 손을 거쳐 미공개 촬영본 등을 대거 활용해 아예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다음달 한국 서비스가 이뤄지는 디즈니 플러스의 첫 번째 화제작은 <비틀스 : 겟 백>이 될 공산이 커졌다. 

​비록 < Let It Be >는 혼돈의 시간을 맞이했던 비틀스 후기의 시대적 영향 탓에 여타 걸작 음반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기도 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팝 역사상 최강 4인조가 만들어낸 명곡들은 평가에 구애 받지 않고 여전히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지니면서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로 남아 있다. 이번 < Let It Be > 재발매 및 영화 <비틀스 : 겟 백> 공개는 그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다.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포스터

11월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비틀스 : 겟 백' 포스터 ⓒ Walt Disney Studios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입니다.
비틀스 렛잇비 겟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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