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한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한 장면 ⓒ tvN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

영화 <인턴>에서 노익장 인턴 벤이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줄스에게 전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원작자는 바로 프로이트이다. 이 명언을 투철하게 실천했던 사람을 며칠 전 전시회에서 만났다. 91년의 전 생애 동안 그의 그림 만큼이나 끊임없는 여성 편력으로 유명하신 분,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고 있는 피카소의 전시회, 그곳 벽면에는 '나는 평생 사랑만 했다. 사랑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는 피카소의 말이 쓰여있다. 그리고 그 말처럼 피카소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여러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피카소가 사랑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미술관을 달라 그 안을 채울 것이다"는 말처럼, 그는 생을 다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말년에 도자기 작업에 충실했던 피카소, 그가 죽은 후 그의 작업실에 남은 도자기만 3000여 점이었다. 일에 대한 그의 성실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누구나 피카소처럼 될 수 있을까.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그건 당연하게도 쉽지 않다. 일도 쉽지 않고, 사랑도 쉽지 않다.

시즌2로 돌아온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잔잔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화제작이 되었다. 하고 싶은 걸 더는 미루며 살고 싶지 않다는 친구 석형(김대명 분)이의 말에 따라, 바쁜 의사들이 다시 악기를 잡고 밴드를 하는 모습은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한 병원에 모여 일하고, 함께 좋아하는 음악도 하는 판타지같은 삶도 만만치는 않다. 그들은 저마다 '사랑하고 일하는' 삶의 여정에서 흔들린다.
 
8일 방송된 4회에서는 흉부외과 교수 김준완(정경호 분)의 이야기가 어른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시즌1에서 그는 이익준(조정석 분)의 여동생 익순(곽선영 분)과 사랑에 빠져 친구들 몰래 열렬히 연애를 했다. 어떤 상황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가 익순에게 고백을 하고, "우리 사귀어요"라는 답을 받고 병원 복도에서 아이처럼 팔짝거리던 모습은 준완의 사랑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익순의 군 부대가 있는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원거리 연애를 해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시즌1 마지막에 익순은 학업에 대한 열의로 영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시즌2, 익순과 준완의 사랑은 휴대폰을 타고 흐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통화는 언제나 준완의 걱정과 우려, 익순의 일방적인 자기 이야기로 채워졌다. 준완이 보낸 커플링이 반송된 것이 마치 복선이기라도 한 것처럼, 준완은 익순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공감을 일방적으로 보내기만 한다. 게다가 흉부외과 과장이 된 준완의 일상은 더없이 바쁘기만 하다. 당직, 수술 그리고 비상상황이 이어진 와중에 김준완은 점점 더 말라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익순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익순이 늘 얘기했던 친한 친구가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준완은 혼자 고민한다. 그런 준완을 우려하던 익준은 익순이 준완의 애인인 줄도 모르고 익순과의 통화에서 준완의 여자친구가 이기적이라고 전하고, 그 얘기를 들은 익순은 고민 끝에 준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익순과의 장거리 연애도 힘들었던 준완에게 이별 통보는 밥 한술 뜨기도 힘든 고통이 된다.
 
평범한 남자의 실연사? 아니 멋진 의사 선생님 준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한 장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한 장면 ⓒ tvN

 
여기까지는 평범한 한 남자의 실연사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 평범한 연애사에 반전을 꾀한다. 레지던트 도재학(정문성 분)은 SNS를 잘 모르는 준완을 놀린다. 그리곤 멀리 있는 여친을 위해 준완의 사진을 대신 올려주기까지 한다. SNS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라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도재학에게 도움의 손길을 청하자, 재학과 시청자는 준완이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동정을 알리기 위한 것일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준완이 재학에게 도움을 청했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보호자 한 명 없이 홀로 중환자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전신마비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방송분 내내 익순에 대한 준완의 노심초사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준완의 모든 촉각이 익순에게 향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준완은 이별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의사 김준완으로서 SNS를 활용한다. 그리고 그의 그런 선택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일으킨다. 

그 감동의 요체는 무얼까? 실연한 상황에도 삶의 중심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어른다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일도 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은 일도, 사랑도 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휘청이며 살아가는게 우리의 인생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말한다. 삶이 늘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삶의 현장에 발을 딛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삶의 성실성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준완이었기에 실연의 아픔 속에서도 의사로서 본연의 의무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시즌2에서도 다섯 친구들은 치열하게 일을 한다. 그들은 수술하고, 환자들을 보고, 응급 상황에 달려간다. 그리고 그 틈새의 시간에 사랑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밴드도 하고, 좋은 일도 한다. 사는 게 어쩌면 그게 다 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치열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시인 오사디 히로시가 말하는 성실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가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적어도 오늘,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준완은 사랑의 아픔 속에서도 의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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