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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번길에서 만난 성산일출봉
▲ 성산일출봉 올레1번길에서 만난 성산일출봉
ⓒ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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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늘 가족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래서 나만 따로 무언가를 즐긴다던가,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으러 간다던가, 회사 업무가 아닌 주말이나, 휴일에 나만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별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만의 시간에 대한 필요성을 몰랐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주변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핑계를 만들고, 가끔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특별히 비웃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러운 것 또한 없었다. 내겐 무엇보다 가족과의 시간이 가장 소중했고, 가장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로 출장길을 나서야 할 일이 생겼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출장 가는 곳이 제주도라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내겐 출장지가 제주도라고 해서 특별할 것까진 없었다. 그렇게 출장 전날 준비를 하던 중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여벌 옷을 챙기고, 들고 가는 나머지 짐도 간소하게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이른 아침 출장길을 나서면서도 캐주얼화나 구두 대신 걷기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특별히 어떤 목적을 갖고서 준비한 옷과 운동화는 아니었다. 이렇게 출발한 1박 2일간의 제주 출장길은 생각지도 않게 하루 만에 일이 마무리됐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에는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미리 예약해놓은 숙박과 비행기 편을 핑계로 처음 예정대로 이틀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여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준비해온 여벌의 옷과 운동화를 보며 올레길 한 코스를 걷기로 결심했다.

처음 나서는 혼자만의 길이 걱정됐지만 이미 선 결심을 포기하기에는 고민했던 시간과 설레기 시작한 마음을 접기엔 이미 늦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움직일 생각에 일찍 잠을 청해봤지만 혼자 갈 두려움 때문인지, 출장길 일탈을 맛볼 설렘 때문인지 쉬이 잠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늦게까지 뒤척이다 평소와 비슷한 시각에 잠이 들었다.

맞춰놓은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져 계획보다 조금은 이른 시간에 몸을 움직였고, 서둘러 아침을 먹고 선택한 길은 올레 7번 길이었다. 평일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7번 길 초입에서는 초행인 데다가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마음도 아니었다. 사람도 없어서 아주 조금은 후회 비슷한 감정이 발을 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올레길을 느끼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자 금세 씻겨져 내려갔다. 너무도 벅찬 풍경과 길 위에서의 자유로움에 흠뻑 빠져 걷는 데만 집중하게 됐다. 눈으로 들어오는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이어진 예쁜 숲길이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고, 오롯이 나와 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단지 여벌의 옷, 걷기 편한 운동화, 간소했던 나의 짐과 혼자 걸어보고 싶었던 마음만으로도 내게는 평생을 잊지 못할 혼자만의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줬다. 앞으로 인생에서 또 하나의 기회를 준 것 같았다. 그게 혼자만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 벅찼던 감동과 자유를 일 년에 한 번, 내게 주는 선물로 해마다 제주도를 찾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여행작가인 카트린 지타는 자신의 첫 번째 책인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라고 했다. 여행은 여행하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런 여행의 가치는 단순히 아름다운 곳에서 여행을 즐기는 것이 끝이 아니다.

특히 혼자 여행을 떠난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생에서의 성장을 경험하기도, 또 다른 자신을 알아가기도 한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가는 여행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며 새로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함께 가는 여행만큼이나 혼자 가는 여행도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하는 여행과는 다르게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계획하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을 생각할 시간은 일상에서는 쉽게 오지 않는다. 늘 겪던 일상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고,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모든 걸 계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혼자 여행을 하면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성장이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여행 중에 배낭을 잃어버린 여행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여행자는 터미널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던 중에 옆에 두었던 배낭을 누군가가 들고 가 버렸고, 다행히 돈이 든 지갑과 여권은 메고 있던 보조가방에 있어서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보통은 여기서 여행이 중단될 텐데 여행에 필요한 대부분을 잃어버린 여행자는 짐을 잃어버린 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 여행 중이었고,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세면도구, 속옷, 바지와 티셔츠 한벌)만을 구매한 채로 아직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책의 저자는 이 여행자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여행에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더라고요'가 전부였다. 배낭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이것도,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다녔는데 없어지고 나니 없는 대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읽고 나서 난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인생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갖추고 부족함 없이 살면 좋지만 막상 없어도 불편할 뿐 살아진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배낭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짐 없이 홀가분하게 여행 다니듯 삶의 무게에서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떠날 마음이 든다면 아주 조금의 여벌의 옷과 운동화, 여행 여비와 여유 있는 마음만 있으면 여행은 언제나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


태그:#혼자하는여행, #여행, #배움, #삶,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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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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