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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동시에 우리는 세 식구가 됐다. 나와 남편 그리고 남편의 고양이인 반냐. 평소 동물을 좋아하던 나는 반냐와의 생활을 고대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혼시절 나를 가장 애먹인 건 빨래도, 요리도 아닌 고양이 털 알레르기였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사람이 그렇게 줄기차게, 쉬지 않고 재채기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몰랐다. 반냐를 껴안고 한바탕 애정공세를 퍼붓고 나면 어김없이 콧물이 흐르고 연신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레르기의 정도가 극심하지는 않아서 두드러기나 호흡곤란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다. 
 
휴지 없이는 생활이 안 된다.
 휴지 없이는 생활이 안 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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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은근히 고양이 한 마리를 더 입양하고 싶어 했다. 그는 "우리가 둘 다 출근하고 나면 반냐가 얼마나 적적하겠느냐"며 온갖 말로 나를 유혹했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남편이 둘째 이야기를 들먹일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 역시 남편 못지않게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고양이 털 알레르기 때문에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해 11월, 둘째 고양이를 집에 들인 건 나였다. 당시 우리는 제주에 살고 있었는데 애월읍에 갈 때마다 마주치던 줄무늬 길고양이가 있었다. 자꾸 나만 보면 내 발치에 발라당 드러눕는 녀석이었다. 나는 어느새 애월에 갈 때마다 '발라당 고양이'를 찾게 되었고, 어느 날 기름 둥둥 뜬 구정물을 찹찹 마시는 녀석의 모습에 이성을 잃고 집으로 들였다.

'임시 보호만 할 거니까 괜찮다'고 되뇌면서 나는 녀석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그냥 애월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눈만 마주치면 발라당 하는 녀석에게 정이 들자 도저히 입양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애월은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됐다. 나는 8년째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알레르기와 함께 살고 있다.
 
처음 애월을 만난 날, 아무 경계 없이 발라당 드러눕는 게 신기해서 찍은 사진이다.
 처음 애월을 만난 날, 아무 경계 없이 발라당 드러눕는 게 신기해서 찍은 사진이다.
ⓒ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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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가 심하지 않기는 해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 보유자인 내가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룰이 필요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혹여나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몇 가지를 공개한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와 함께 사는 법

먼저 나와 고양이 사이의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침대가 있는 안방은 고양이 출입 금지 구역이다. 잘 때도 알레르기에 시달릴 수는 없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고양이와 함께 잠들고 깨는 기쁨은 누리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에 고양이들에게 충분히 애정을 쏟기로 했다. 나는 안방 외의 공간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놀고 교감한다. 다만 이 방법은 고양이와 공간적 분리가 가능한 상황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안방에는 들이지 못하지만, 집의 다른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애정을 주려 노력한다
 안방에는 들이지 못하지만, 집의 다른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애정을 주려 노력한다
ⓒ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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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는 몸의 컨디션에 따라 증상을 달리한다. 몸 상태가 괜찮은 날이면 별다른 일 없이 생활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발작처럼 재채기가 터지곤 한다. 프리랜서인 나는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데, 알레르기가 도질 것 같으면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향한다.

알레르기 약을 상비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내 경험상 알레르기가 도지면 억지로 참기보다는 약을 먹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됐다.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지면 순식간에 고통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혹시라도 모를 일을 대비해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더라도 약은 꼭 구비해두는 편이 좋다.

또 고양이 돌봄 노동을 구분해서 하는 방법도 있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고양이들의 물과 밥을 챙기고 양치질을 시키는 일을 맡았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없는 남편은 목욕을 시키고 화장실을 치우는 일을 전담한다.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어로 말려주는 과정에서 고양이 털이 풀풀 허공에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는 일 역시 입자 고운 모래가 허공에 날리면서 알레르기를 도지게 해 남편이 하게 됐다.

한 가지 더, 나는 잠옷과 실내복을 구분해서 입는다. 고양이를 껴안던 옷차림으로 침대에 들지 않는다. 고양이 털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빠지고 옷에 잘 달라붙는다. 밤이 되면 나는 고양이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네고 안방에 들어와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코를 훌쩍이며 잠들지 않기 위해서 이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

그래도 망설여진다면 임시보호부터 천천히
 
고양이 털 알레르기는 사람마다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가능하다면 입양 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는 사람마다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가능하다면 입양 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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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레르기가 극심한 경우에는 위의 모든 방법들로도 효과가 없거나 미미할 수 있다. 혹시라도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지만 알레르기로 망설여진다면, 먼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추천한다.

또 '임시 보호'라는 방법도 있다. 임시 보호는 입양처가 정해지지 않은 동물을 말 그대로, 임시로 맡아주는 일종의 봉사다. 고양이 카페나 커뮤니티에는 임보처(임시 보호처)를 구한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혼자 생존하기 힘들 정도로 어린 고양이, 다친 고양이, 영역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고양이들이 주로 구조되어 임보자(임시 보호자)를 기다린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의심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입양하는 것보다는 임시 보호를 추천한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돈과 품이 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고양이 털갈이 시기가 오면 먹는 밥이 다 털로 가나 싶을 정도로 온 집에 털이 흩날리는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투명한 고양이의 눈동자에서 우주를 발견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남편이 자꾸 셋째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하지만 내 알레르기의 마지노선은 고양이 두 마리다. 셋째는 없다. 아마도...

태그:#알레르기, #고양이, #입양, #임시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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