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 ㈜더쿱


제목부터 시의적절해 보인다. 상황이나 사연이 어쨌든 한국에서도 혼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늘고 있고,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첫 장편 영화를 선보인 홍성은 감독 또한 화두가 그것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청춘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다움, 관계에 대한 이야기랄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콜센터 베테랑 직원 진아(공승연)가 신입 직원 수진(정다은),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이웃(서현우)을 만나게 되며 겪는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살다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으면서 모종의 깨우침을 얻는 식이다. 

사적 이야기로부터 받은 자극

청춘 세대의 자취, 독립생활이 소재긴 하지만 특정 세대의 감성만 다루고 있진 않아 보인다. 홍성은 감독은 "TV에서 우연히 본 50대 남성의 고독사 다큐멘터리가 계기였다"고 시작점을 짚었다. 이미 한참 감독 또한 자취를 하던 때였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예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가족이 절 사랑하는 걸 알지만 같이 사는 건 답답하고, 결혼 또한 다 큰 성인들에게 함께 살도록 법적으로 묶는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더라. 다른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다가 고독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나도 모르게 엄청 눈물이 났다. 그래서 의심해봤다. 혼자 사는 게 나랑 맞는 건가? 불안감이 있더라. 친구들끼리 만나면 70살 넘어서 다들 혼자라면 같이 모여서 살자는 이야길 하고 있더라. 이것 또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인공 진아는 감독의 개성과 고민이 반영된 캐릭터다. 무표정으로 능숙하게 고객을 상대하는 진아는 혼자 밥을 먹고, 이웃들과 쉽게 말을 섞지 않는다. 자칫 밉상으로 보일까 감독은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오래 봐도 밉게 보이지 않는 배우가 필요했고, 목소리 톤 또한 전형적인 콜센터 직원답게 차분함이 필요했다. 공승연 배우가 낙점됐다. 공교롭게 감독과 배우 모두 첫 장편 영화로 의기투합하게 됐다. 

"시나리오상 진아가 비호감으로 보인다는 평이 많았는데 전 비호감으로 비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홀로 이야기를 끌어가기에 보는 맛이 있었으면 했다. 공승연 배우를 만났을 때 그 가능성을 봤다. 드라마에선 발랄하고 귀엽게 나왔는데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둘 다 영화가 처음이니 으쌰! 해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웃음).

진아는 20대 중반의 제 모습과 비슷하다. 인간관계 고민이 많았고, 당시 회사원이었는데 사회생활에서 상처받고 괴로운 일을 겪곤 하잖나. 결국, 아무에게도 영향받지 말자, 1인분만 하자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금이 가기 시작하더라. 알고 보니 제 태도로 저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더라. 날 보호한답시고 말이다. 혼자 잘 사는 건 뭘까 계속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다큐라든가, 사적 이야기에 어떤 자극을 받아온 것 같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관련 이미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관련 이미지. ⓒ 한국영화아카데미

 
제대로 작별하기

서서히 변화를 겪는 인물이기에 진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중요했다. 오래전 외도로 집을 나갔다가 엄마의 죽음 이후 돌아온 아빠라든가, 마냥 해맑은 신입 직원 수진,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이웃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복도식 아파트 등이 그렇다. "아파트는 촬영 섭외가 참 힘들더라. 그래서 수원까지 가서 촬영해야 했다"며 홍 감독이 뒷이야기를 전했다.

"알고 보니 그 수원 아파트는 공승연 배우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더라. 인연이다 싶었지. 촬영 전까지 공 배우와 만나서 서너 시간씩 사담을 나눴다. 진아에 대한 궁금증을 마구 쏟아내시더라(웃음). 정다은 배우 역할의 수진인 오디션을 엄청 봤다. 좋은 배우들이 많이 오셨는데 느낌이 애매하더라. 스무살의 앳된 느낌을 원했다. 그러다가 촬영 감독님이 예전에 같이 작업했다며 정다은 배우를 추천해주셔서 만나 보니 딱이더라. 그땐 정다은 배우가 열아홉이었는데 마침 그도 성인 연기를 해보고 싶어 하던 때였다.

수진의 터전은 춘천이다. 모든 지방 사람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수진은 언젠가 서울에서 살고싶은 판타지가 있는 인물이라고 설정했다. 드라마 보며 사투리도 고치고, 성인이 되자마자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친구로 말이다. 제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이후 수능을 보고 대학으로 가곤 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더라. 그러다 첫 사회 경험에서 진아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거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 ㈜더쿱

 
영화에서 진아는 서툰 관계 맺음으로 수진에게 상처를 준다.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냉소적으로 대하다가 결국 일을 관두게 하는데 이를 통해 감독은 제대로 된 작별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별인사라는 건 이별하더라도 서로 여전히 연결돼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저 또한 누군가랑 이별할 때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게 마음에 남더라, 서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건가 싶어 허무하기도 했다. 진아 또한 그랬다. 이별하는 건 무(無)로 돌아가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수진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거지. 

하지만 이별하더라도 그 사람은 내 마음에 남아서 영향을 주잖나. 헤어짐은 무가 아니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잘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저 또한 반드시 비혼으로 산다, 아니면 결혼한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제가 만날 사람, 관계에서 결론 날 것이라 생각한다."


공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오래전부터 품어 왔던 영화감독이란 일이 정말 꿈인지 도피인지 알고 싶었다던 홍성은 감독은 퇴사 후 한국영화아카데미 행을 택했다. 첫 장편으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급지원상과 배우상을 받았다. "매번 관객으로 갔던 영화젠데 상을 주셔서 많은 위안이 됐다"고 홍 감독은 말했다.

"처음엔 제 스스로 감독이라 말하는 게 민망하고 부끄럽더라. 영화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정도로 소개하고 그랬다. 이번 상으로 너도 감독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중학생 때부터 장래 희망란에 영화감독을 적고는 했다. 어른들은 일단 수능 보고 나중에 해도 된다, 돈 좀 벌고 그 다음에 해도 된다고들 하셨다. 근데 나중이 언제지? 서른 중반인가, 아니면 마흔을 넘기면? 이게 어린 시절 허세였는지 정말로 하고 싶은 건지 헷갈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것 같아서 해보겠다고 한 거지.  
결심하고 (영화 아카데미) 등록금 모으느라 2년이 더 걸렸다. 적어도 지금 감독을 시작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다음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시작하면서 예전에 느꼈던 것과 다른 세상을 본 것이고 엄청 성장했기에 되돌리고 싶지 않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 ⓒ ㈜더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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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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