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 포스터

<빈센조> 포스터 ⓒ tvN

 
지난 주말 tvN 드라마 <빈센조>가 2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시청률 7.7%를 기록했던 드라마는 막판에 입소문을 타더니 마지막회는 자체 최고 기록 14.6%를 찍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당장 나만 해도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중반 이후에는 주말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사실 개인적으로 드라마 <빈센조>의 인기는 생각 외였다. 비록 인기 배우 송중기가 주연을 맡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분했던 이탈리아 갱조직 마피아는 우리 사회에서 낯설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우리 사회에서는 영화 <대부>의 소재쯤으로 인지하고 있는 마피아가 주인공인 <빈센조>. 그러나 드라마는 성황리에 끝났고 지금은 많은 이들이 시즌2를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왜 시청자들은 <빈센조>에 열광했을까?
 
현실성과 시의성
 
 바벨타워를 부수는 빈센조

바벨타워를 부수는 빈센조 ⓒ tvN

 
<빈센조>가 인기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드라마가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주인공인 마피아는 우리 사회에서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악의 세력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재건축, 재개발과 관련된 부동산 재벌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공권력과 정치권.
 
위 카르텔은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목도해왔던 적폐의 고리이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청산하지 못한 악습이기도 하다. 문제는 오히려 그 친숙함에서 오는 진부함이었는데, 부동산 비리와 정치권의 결탁은 워낙 많은 작품에서 다뤄진 소재기에 자칫하면 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센조>는 운이 좋게도 이 한계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와 함께 정치권의 부동산 비리가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드라마가 시의성을 띠게 된 것이다.
 
<빈센조>의 바벨타워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부산 엘시티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탐욕스러운 기업이 정치권과 검찰과의 유착을 통해 서민들을 쫓아내고 바벨타워를 짓는 과정이 현재까지 드러난 엘시티 비리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과연 부산의 자존심인 해운대에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층의 엘시티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엘시티는 해운대 조망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개인들과 그 전망을 상품화시켜 거래하고자 하는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그 과정에서 그릇된 이익을 추구했던 일부 정치권과 법조인들의 조직적인 비리의 표상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드라마는 빈센조의 대사를 통해 일본 야쿠자나 중국 삼합회도 아니고, 왜 하필 마피아를 주인공으로 했는지 대놓고 이야기한다.
 
"이 나라 전부 마피아 짓 한다는 거요. 법피아, 모피아, 메피아, 세피아, 학피아, 뭐가 이렇게 많은지."

"유능하면 부패해도 된다. 이게 대한민국 대표 트렌드에요... 부패하면 오직 자신한테만 유능하고 타인에게는 무능하게 되죠."
 
결국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마피아의 사회임을 고발한다. 진짜 마피아만 없을 뿐, 마피아보다 더한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극악하게 달려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어찌 이 드라마를 보며 현실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판 배트맨
 
 우리 사회의 마피아

우리 사회의 마피아 ⓒ tvN

 
<빈센조>가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악이 악을 응징한다는 점이다. 빈센조는 드라마에서 종종 자신이 악당임을 분명히 한다. 결코 자신이 정의롭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빈센조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록 악의 세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우리가 더 극악하다고 생각하는 악당들을 찾아내어 처결하기 때문이다. 그의 방식은 불법적이고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일면 정의롭다. 그는 어떤 이유로든 법질서가 닿지 않는 악당들을 처단하는 고담시티의 자경단, 배트맨과 같다.
  
그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려 보자.
 
"정의는 나약하고 공허하다. 이걸로는 그 어떤 악당도 이길 수 없다. 만약에 무자비한 정의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기꺼이 져 줄 용의가 있다. 악당 역시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런 세상은 불가능하기에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됐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 쓰레기를 안 치우면 쓰레기에 깔려 죽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날이 가면 갈수록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감정이 높아져만 간다. 법은 강자의 힘이요, 도덕은 강자의 핑계에 불과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과연 이런 현실 속에서 빈센조의 일갈에 시원해하지 않을 시청자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주인공
 
 <빈센조>의 주인공들

<빈센조>의 주인공들 ⓒ tvN

 
마지막으로 <빈센조>에 등장한 조연들의 활약 역시 인기의 요인이다. 이는 단순히 조연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다는 뜻이 아니다. <빈센조>에 등장하는 조연은 단순히 주인공을 돕는 역할을 넘어, 그 존재 자체가 드라마를 빛나게 한다. 조연 모두 각자의 배경과 스토리를 지니고 주인공과 대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작가의 전작인 <열혈사제>와 비슷하다. 악당과 고군분투하는 신부님을 돕기 위해 하나둘씩 정체를 드러내는 조연들. 중국집 배달원 쏭싹이 과거 태국 왕실 경호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환호했던가.
 
<빈센조>에서는 철거 대상인 금가프라자에서 항상 을의 위치에 있었던 조연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탁소 아저씨, 전당포 주인, 피아노 학원 선생님 등이 자신만의 스토리와 능력을 가지고 거악에 맞서 싸운다. 그들은 단순히 조연이 아니다. 모두가 스스로를 살고 있는 자신만의 주인공이며, 동시에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현실성과 시의성을 갖추고, 법이 차마 따라가지 못하는 정의를 구현하고,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빈센조>. 많은 이들이 시즌2를 기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빈센조가 마지막으로 읊조렸듯이 '악은 견고하며 광활'하기 때문이다. 악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빈센조만 있으면 된다. 돌아오라 빈센조!
빈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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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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