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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통과되었지만, 그 전날인 23일 온라인게임을 통해 알게 된 여성이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남을 거절하자 그와 여동생, 어머니까지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최대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인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처벌받게 될 뿐이다. 스토킹으로 인한 범죄는 최대 징역 5년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9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법이 제정된 이후인 4월 18일에도 스토킹 범죄는 발생하였다. 직장동료의 집을 찾아가 귀가하던 직장동료를 잔인하게 공격한 사건이다. 범인은 다음날 바로 잡혔고 현재 구속상태에 있지만, 이 또한 '경범죄'로 끝나고 만다. 이렇듯 스토킹은 벌금 10만 원 이하의 경범죄로 취급받아왔으나 실제 범죄의 내용은 살인 등 중대범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3년 312건, 2015년 363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으로 스토킹 범죄는 증가추세에 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의 2020년 분석에 따르면 살인, 방화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의 경우, 50%가 전/현 배우자(13.5%) 또는 전/현 애인(36.5%)이며, 직장 관계자가 12.3%, 동네 사람 및 지인이 5.9%, 학교 관련자가 3.6%, 의료기관 및 수사기관이 0.9%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음의 사례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김홍일 사건은 2012년 울산에서 발생한 것으로 주택에 침입해 자매를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언니를 따라다니고 집착했던 그는 "이별 통보에 분노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대낮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도 피해자가 이별을 요구하자 협박과 위협을 일삼다가 끝내는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2019년 윗집에 사는 미성년자를 따라다니며 그 가족에게도 욕설과 위협을 일삼았지만, 경찰은 '사소한 시비'라며 돌아갔고 피해자 가족이 협박 증거 영상을 제출한 후에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신고 후 약 한 달 뒤, 여성 5명을 살해했다. 또한, 2020년 5월에는 식당을 운영해 온 60대 여성이 40대 남자 손님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3개월 동안 100여 통이 넘는 전화와 문자를 발송했고, 사건 전날 식당에서 행패를 부리는 가해자를 신고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풀려난 가해자는 피해자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다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

이 사건들의 공통성은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는 점이다. 미리 동선을 파악하고, 협박과 위협을 통해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범죄 도구를 준비하고,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살해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위의 사례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찰의 초동대응이 둔감했다는 점이다. 가정폭력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토킹 또한 친밀한 관계의 치정사건쯤으로 치부되어 버리기 쉽고, 이로 인해 막을 수 있었던 강력범죄의 초동대응에 실패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스토킹을 경범죄로만 다스려온 법체계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폭력에 둔감한지를 알게 하는 지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여자의 NO는 YES!"라는 왜곡된 남녀관계에 대한 통념 역시 이러한 범죄를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 아니 조장하는 역할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왜곡되고 폭력적인 남녀관계의 결과물인 것이다.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여성의 거부를 불쾌하게 여기는 문화와 정서는 여성이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이 없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인형이거나 물건으로 대상화하는 관점에서 발현된다. 이들에게 여성은 성적 판타지를 실현할 대상/물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물건은 자신의 소유일 뿐이다. 여성에 대한 모든 범죄나 폭력이 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관점에서 비롯되지만,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해는 여성의 생사여탈권을 남성이 가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와 제도에서 비롯된다.

스토킹법이 처음 발의된 것은 1999년이다. 그러나 22년 만에야 제정이 되었다. 그 22년 동안 앞의 사례처럼 수많은 흉악범죄가 발생했다. 그러나 드러나지 못한 사건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지난해 스토킹 범죄는 4500여 건이지만 이 중에 10%만이 처벌되었고, 약 90%에 해당하는 사건은 현장에서 종료되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경찰 스스로 경미한 사건으로 판단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킹은 피해자의 의사나 경찰의 판단과 무관하게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범죄이다. 그러므로 현행법안에 남아있는 '반 의사 불벌죄' 조항을 폐기하고, 오히려 스토킹 범죄의 초기대응과 처벌을 강력히 할 필요가 있다.

늦었지만 '스토킹 범죄 처벌법'의 제정을 환영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법이 제정되었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종류의 범죄의 심각성에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만큼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역으로 보여 주고 있다. 법은 항상 현실보다 한발 늦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실효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사법당국의 실천이 강조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신하영옥님은 여성활동가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스토킹 범죄 처벌법, #스토킹, #여성폭력, #스토킹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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