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같은 의료인은 늘 좋은 의료인이 되기 위해 고민을 합니다만, 저 자신도 역시 환자로 혹은 보호자로 다른 병원에 가야 할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어떤 환자인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환자란 의사에게 친절하거나 의사가 무조건 반기는 환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환자를 말합니다. 간혹 병이 안 나아서 오래오래 매출을 올려주는 환자가 병원에서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면 물론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의사 입장에서도 자기 진단과 처방에 의해 환자의 병이 치유가 되어야 직업 만족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환자만큼이나 의사도 간절하게 환자의 질환이 호전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환자는 의사와 함께 '치료'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이 되는 것입니다. 의사의 역할과 환자의 역할을 각자가 잘 맡아서 했을 때 프로젝트는 가장 효율적으로 진행이 되고 완성도도 높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환자가 될까요?
병이 커지기 전에 의사를 만나요
첫째로는 병을 키우지 말고 초기에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중국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이미 병이 된 것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병이 들기 전에 치료하는 것'을 최고의 의사라고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좋은 환자란 병이 든 다음에 열심히 치료받는 환자보다 병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불편함을 의사와 상담하고 진단 검사를 받아서 조기에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다 낫겠지'라고 생각을 해서 초기에 병을 키우는 일이 많지요. 또 많은 경우에 자연적으로 호전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자연적으로 호전될 것을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고 괜한 일을 한 건 아닙니다. 의사의 치료와 처방에 의해 조금 더 빨리 호전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다음에 같은 증상이 또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발했을 경우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큰 수확이기 때문입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는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큰 병의 전조증상과 유사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진료의뢰서를 써드리는데, 그럴 때마다 환자분들은 현재 증상이 심각하지 않으니 무시를 하시거나, 혹은 너무 심각하게 겁을 먹고 걱정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큰 병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기 위해서 검사 받아보시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검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괜찮다는 결과를 들고 와서 간혹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괜히 비싼 검사 했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래도 이제 혹시 큰 병 아닐까 하는 걱정 하나는 덜었잖아요. 그게 제일 좋은 약이에요"라고 말하면 납득을 하시지요.
간혹 큰 병도 아닌데 병원에 가면 과잉진료를 당할까봐 많이 걱정들을 하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가장 큰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과잉진료가 무서워서 병을 키우는 것은 택시 요금 바가지 쓰기 무서워 걸어서 가다가 기차 시간 놓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둘째로는 자기 증상을 정확히 알고 병원에 가시는 겁니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학교에서 건강 관련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아서 그런지 증상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팔도 사투리를 다 알아들어야 하고, 스무고개처럼 환자분의 증상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습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듣고 숨겨진 질환을 잘 찾아내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나팔관에 문제가 있대요"라고 말하는 40대 남자 환자의 말을 듣고도 '달팽이관'으로 잘 알아듣고 어지럼증이 있는지 물어야 하고, "전립선이 있어서요"라고 말하는 70대 여자 환자의 말을 듣고도 '요실금'으로 알아듣고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명확한 문제들은 오히려 쉬운 예고, 오히려 '어깨가 아파요'라고 하는 한마디를 던지고 침묵하는 환자는 쉽게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로는 목이 끝나는 부분에서 팔이 시작되는 부분까지를 다 어깨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조금 더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겠지요. 팔을 어떻게 움직일 때 어깨의 어느 부분이 아픈지, 어깨 관절 부위가 아픈지 등 위의 어깨가 아픈지, 그리고 통증의 양상은 어떤지. 찌르는 것처럼 아픈지 멍든 것처럼 아픈지 혹은 전기가 오는 것처럼 아픈지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감기에 걸렸어요"라고 말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두통 발열 기침 가래 콧물 복통 설사 가려움증 어지럼증 등등 여러 가지를 다 확인해야 정확한 진단 처방이 가능할 것입니다. 기관지염, 알러지성비염, 부비동염, 축농증, 폐렴, 심지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까지 대부분의 환자는 다 '감기'라고 느끼고 오시니까요. 그러니 병원에 가셔서 "감기예요"라는 말 보다는 "이틀 전부터 열은 없이 기침을 자주 하는데 콧물이나 가래는 나오지 않고 밤에 좀 더 심해요"라고 상담을 하면 의사가 훨씬 더 정확하게 처방을 내릴 수 있겠죠.
병원엔 가족과 함께 가세요
셋째로는 병의 이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어서 어떻게 변해왔고, 이에 대해서 어디서 어떤 치료를 받았었는지, 과거에 관련된 질환을 앓았던 적은 있는지 등을 알고 있다면 최고의 환자입니다. 필요하다면 지금까지 약 복용 기록이나 음식 섭취 기록, 배변이나 수면시간 혹은 통증 발발 기록 등을 가지고 가보세요. 병원에서 VIP(귀빈)를 넘어 동료 의사 대접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진료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스무고개 중의 하나가 바로 병력인데요.
"언제부터 아팠어요?"
"꽤 됐어요."
"일주일 넘었어요?"
"아유. 한참 됐죠."
"1년 넘었어요?"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죠."
"몇 달 된거네요, 그럼."
"한 6개월 넘었지요."
6개월에서 1년 사이 그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치료에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결국 알아내기는 했지만, 대략적으로 "몇 달 됐어요"라고만 하셨어도 상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겠죠. 병원에 가시면 대략적으로라도 얼마나 되었는지 꼭 파악하고 말씀해 주세요.
넷째로 처음 병원에 가실 때는 가족과 함께 가시는 게 좋습니다. 의외로 자신의 상태나 생활 패턴에 대해 스스로는 잘 모를 때가 많거든요. 어머님과 함께 가거나 부부가 같이 가시는 게 가장 좋은데, 본인은 소화가 잘 된다고 말하지만 옆에 앉은 부인이 "잘 되긴 뭐가 잘 돼, 밖에서만 먹으면 허구 헌 날 속 불편하다고 활명수 찾으면서"라고 훌륭한 도움을 주실 때가 아주 많거든요. 그리고 의사의 조언을 들은 것도 가족이 같이 기억을 해주시면 훨씬 좋지요. 일상에서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면 일상을 함께 하는 가족의 도움이 필수적이니까요.
다섯째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의사의 처방과 권고를 꼭 지키세요. 학교에 다니기만 하고 공부를 안하면 성적이 오를 리가 없듯이, 병원에 다니기만 하고 약도 안 먹고 운동도 안하면 병이 나을 리가 없겠지요. 처음에 말했듯이 치료는 환자와 의사의 팀 프로젝트입니다. 의사가 진단과 시술, 처방은 해줄 수 있어도 약을 먹여주고 운동을 시켜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은 환자의 몫이 되고, 치료라는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동료 한의사들과 늘 하는 얘기가, 진짜 명의는 신비로운 의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환자가 꾸준히 침을 맞고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의사라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의사는 늘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환자도 스스로 좋은 환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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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판교 한성주한의원 원장. 첨단의 전통의학을 꿈꾸는 판교의 한의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