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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걸스
 브레이브걸스
ⓒ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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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일 오후 4시 47분]

롤린이라는 하나의 '드라마'가 쓰여지기까지 

"롤린 롤린 롤린~ 롤린 롤린 롤리인~"

최근 아이돌 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역주행 신화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 곡은 2017년 처음 발매되었을 당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갑자기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화제의 영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적의 주인공인 브레이브걸스는 공중파 예능과 음악 방송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 멤버의 설명처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더이상 안 되겠다' 싶어 숙소에 짐까지 빼고 그룹 활동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롤린은 대체 어떻게 성공하게 된 걸까. 사실 그 이유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청량한 음악과 중독성 넘치는 안무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특히 군대에선 이미 인기가 많았다. 부대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인수인계' 해주는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으로 이미 유명세가 자자했다.

이 노래가 역주행 할 수 있었던 건, 브레이브걸스가 군부대에서 위문 공연을 한 영상들에 소위 '주접 댓글'(오버스러운 칭찬 댓글)들이 더해져, 유튜브 '대박'을 친 덕분이다. 

필자도 실제 롤린이 발매되었을 2017년, 군 복무 중이었다. 최근 롤린의 역주행을 보고 당시 후렴구에 맞춰 같이 춤추던 선임들에게 괜히 롤린 얘기를 꺼내며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롤린의 폭발적인 흥행은 어쩌면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고 앨범 표지마저 낯부끄러워 숨어들어야만 했던 명곡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청량한 음악이 주는 즐거움 외에도 매력적인 요소는 많았다. 이 역주행의 신호탄이 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VIDITOR)'의 공연 영상 속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열심이고 즐거워 보였다.

여기에 수많은 위문 공연에서 있었던 훈훈한 일화들까지 더해졌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 결국 주목받게 되었다. 어쩌면 가장 정석적인 방법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었다.
 
역주행의 신호탄이 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VIDITOR)'의 영상. 브레이브걸스의 공연에 열광하는 군인들과 그 밑에 달린 '주접댓글'.
 역주행의 신호탄이 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VIDITOR)"의 영상. 브레이브걸스의 공연에 열광하는 군인들과 그 밑에 달린 "주접댓글".
ⓒ 비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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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하다. 브레이브걸스는 최선을 다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던 주인공이 꾸준히 노력하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성공했다. 우리는 그들의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을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이 성공해가는 모습에 어쩐지 울컥해 응원하고 노래를 계속 듣는 건 우리도 이런 성장 드라마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성실이 곧 '미련함'이 되어버린 세상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이야기를 배워왔고 꿈꿔왔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더라도 꾸준히 나의 할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지금 하는 것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대기만성형 인간이다.'


브레이브걸스의 일화들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노력해왔고, 이제 빛을 발할 시간이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희망이 마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서 봉급을 모으면 무엇하나. 평생 봉급을 모아도 집 하나 마련할 수 있을지 의심만 커져간다.

지난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 거래 활동 계좌가 9일 기준 3924만 3554개로 집계되었다. 곧 4000만 개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봉급을 모아도 내 집 하나 마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으니 작은 희망에라도 걸어보겠다며 다들 주식판에 뛰어드는 것 아닐까. 그냥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조차 살 수 없으니.

그 와중에 이른바 'LH 사태'까지 발생했다. LH 직원들이 업무를 통해 파악한 정보를 이용해 사실상 투기를 했다는 의혹인데, 이로 인한 대중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성실은 곧 '미련함'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성실한 것은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안쓰러운 행동으로 여겨진다. 성실은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한탕 벌어 평생 먹고 살 돈만 번다면 도덕적 해이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는 세태인 듯하다. 마치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을 때 살짝 불편하지만, 곧 소화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순 없다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나온 브레이브걸스 멤버 유정. 그는 롤린이 역주행하기 직전까지, 그룹 활동을 정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나온 브레이브걸스 멤버 유정. 그는 롤린이 역주행하기 직전까지, 그룹 활동을 정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 근황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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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가장 괴리된 세상에서 아직도 그 드라마를, 신화를 꿈꾸고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그 결과로 성공해 기쁨을 기꺼이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우리는, 그런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반할 수밖에 없다.

브레이브걸스가 그들의 이름 그대로 용기 있고 멋진 사람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누구보다도 대단한 사람들이고, 성공했을 때 누구나 손뼉 치고 응원해주고 싶어질 만큼 최선을 다해 멋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리 대단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열광하는 이 기적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들처럼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노력했다면 최소한의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꼼수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힘든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지 않더라도, 누구든 '그 정도면 꽤 열심히 노력했네'라는 인정과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적당한 노력으로 많은 것을 바라는 도둑놈의 심보가 아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싶고, 그 대가만으로도 충분히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브레이브걸스의 흥행에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태그:#노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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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를 꿈꾸는 예비 저널리스트입니다. 차별 받고 소외된 자들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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