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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오는 7일 서울 청와대에 닿는 것을 목표로 여러 시민들과 함께 '희망뚜벅이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편집자말]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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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 낭독 유튜브를 꾸리고 있다. 그날 아침에 김진숙 지도님께 메시지를 보낸 건 그 때문이었다. "<소금꽃나무>의 일부를 낭독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싶어요." 흔쾌한 허락을 듣고 심상하게 짧은 안부를 나누었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가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암 투병 중이었다. 정년을 하루 남기고 있었다. 출발할 때 일행은 그를 포함해 겨우 세 명이었다. 놀라웠지만 그답다고 생각했다. 비장하지 않게, 그러나 온 존재를 걸고. 멀리서 지켜본 그의 행보는 늘 그랬다. 

직업과 직업병이 합쳐져서인지 나는 사람을 그가 쓴 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교나 맞춤법이 기준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힘을 내면에 가진 사람이더라는 단단한 믿음이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은 확실히 있다. 믿음은 그의 글을 읽으며 더 강해졌다. 

그가 글을 써서 다행이다

내가 그를, 아니 그의 글을 처음 본 것이 트위터였는지 아니면 어느 기사에 인용된 글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알게 된 뒤 그 글을 쓴 사람이구나 탄성이 나왔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 뒤부터 그의 글은 유난히 눈에 걸렸다.

겨우 140자밖에 들어가지 않는 트위터의 작은 화면에서도 존재감은 명료했다. 찰싹찰싹 잔물결이 치듯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리트윗으로 서로에게 쪽지를 건네듯 글을 건넸다. 희망버스를, 거기에 탄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잔물결이었다. 그 물결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영도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마음 졸이며 뛰는 내내, 85호 크레인 공중에 있는 작은 방을 생각했다. 그 안에서 그는 내게 고양이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이웃처럼 친근하게 저녁 메뉴에 참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를 보며 흔연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그를 자주 생각했고 가끔 울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공중의 작은 방에 한 사람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사히 땅을 밟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그때는 입 밖에 내서 말할 수도 없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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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사히 땅을 밟고 난 몇 년 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분이 내게 주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그 책이 <소금꽃나무>였다.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 숨 막히는 밀도로 꾹꾹 쓰여 있으면서도 문득 헤실헤실 부드럽게 굽이치는 그런 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또 울었다. 울다가 가끔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가 글을 써서 다행이다. 그 글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내 세상은 그 덕분에 한 바닥쯤 넓어졌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겹을 갖게 되었다. 가끔은 그의 책에 등장한 아주머니처럼 그가 힘든 싸움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어디 먼 디로 가가 안 보고 살모 고마 이자 삐고 살아진다"고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의 싸움에 정년이 있으면 좋겠다. "할 만큼 했다"고 툭, 내려놓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자의 오지랖으로. 

전각을 배우던 어느 날, 돌 하나를 얻어 새로 새길만한 걸 찾다가 내 책의 한 문장을 옮겨 적었다. 삐뚤빼뚤 새긴 주제에 자랑이랍시고 올린 전각 사진을 보고 그가 갖고 싶다고 했다. 뭔가 욕심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 그가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게 고맙고 신기해서 얼른 싸서 보냈다. 몇 년 전 얘기다. 

그가 세 명으로 시작해 수십, 수백 명과 함께 걷고 있는 길을 생각하며 그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혼자 걸어갔던 시간들이 내가 된다." 지금 혼자 걷고 있지 않지만 혼자여도 걸을 사람인 그에게 어울리는 문장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걸으며 각자의 '나'가 되고, 그 '나'들이 모여 우리가 되는 것을 보고 있다. "내가 혼자 걸어갔던 시간들이 내가 된다"는 문장을 받은 그가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시간들이 우리가 된다"는 문장을 몸으로 밀며 돌려준다. 파죽지세로. 파죽지세로 그가 온다. 

태그:#김진숙, #소금꽃나무, #김진숙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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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칼럼니스트. 책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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