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인공지능(AI) 기술이 최근 방송가의 새로운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엠넷 <다시 한번>을 통해 고 터틀맨(거북이), 김현식의 목소리를 복원하며 화제를 모았던 AI 기술이 이번엔 고 김광석을 2021년으로 소환했다. 29일, SBS 신년 특집 기획으로 마련된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하 'AI vs 인간') 첫 번째 편에선 '모창'을 소재로 인간과 AI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졌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AI 개발 업체 연구진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AI 역시 학습에 따른 성장이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학습이 반복되면 반복될 수록 그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지금의 음성 구현 AI는 단 10분이면 10만회의 학습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아이유가 부르는 '야생화', 한국말 하는 프레디 머큐리​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 AI vs 인간 >의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연구진은 가수 고 김광석의 생전 목소리를 활용해 '보고싶다'(김범수 원곡)를 재현하는가 하면 아이유가 부르는 박효신의 대표곡 '야생화'를 들려준다.

이를 접한 출연진과 관객들은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어 정인이 부른 '오르막길'을 고 프레디 머큐리(Queen)가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구현해낸다. 외국인이 한국 말을 할 때 나오는 특유의 억양까지 담으면서 앞서 엠넷 <다시 한번> 때 이상의 충격이 전해졌다.

이날 ​이러한 AI 모창 가수를 상대할 인간 가수는 뮤지컬 디바 옥주현이었다.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살린 소리로 많은 뮤지컬 팬들을 사로 잡은 장본인임을 감안하면 패널로 출연한 김이나 작사가, 황광희 등은 아무리 빼어난 기술이 접목된 AI라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옥주현 본인 역시 "감정선까진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제작진이 맛보기로 옥주현 목소리를 활용한 '흰수염고래'(윤도현 원곡)을 들려주면서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핑클 멤버인 성유리와 옥주현 팬클럽으로 채워진 관객 중 절반이 AI의 목소리가 옥주현과 흡사하다는 반응을 내놓으면서 이어 벌어질 대결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옥주현 본인조차도 "안 비슷한 포인트가 없다"고 감탄할 만큼 AI는 인간의 숨쉬는 습관까지 정확히 파악해 완벽하게 표현했다. 

'히든싱어' 방식으로 치른 옥주현과 AI 맞대결​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이날 대결은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치러졌다. 바로 JTBC <히든싱어>와 동일하게 각자 커튼 뒤 방에서 번갈아 노래를 하고 후렴구는 함께 소화한다. 청중 평가단은 그들의 노래를 듣고 1번과 2번방 중 어디에 인간 가수(옥주현)가 있는지를 선택하면 된다. 타 방송사 프로그램 형식을 차용한 점은 살짝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 아니 인간과 AI의 목소리를 구별해내기 위해선 가장 적절한 대결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1번과 2번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장의 청중은 물론 집에서 TV로 시청하던 이들도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귀를 쫑끗 세우고 들어도 단번에 차이를 알아내기 힘들 만큼, 옥주현과 AI는 저마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야생화'를 멋지게 불렀다. 이어진 투표 결과는 45 대 8로, 1번이 우세한 걸로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옥주현이 그 방에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공개홀엔 긴장감이 계속 감돌았다. 드디어 문이 열리면서 결과가 공개되었다. 한동안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곳곳에서 당혹스러워 했지만, 이내 옥주현이 얼굴을 내밀면서 현장에 자리한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로 그를 맞았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곡의 전반부에선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후반부 들어서는 인간과 AI의 차이를 감지한 시청자들의 지적이 인터넷 상에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옥주현은 "정말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발음의 디테일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감정과 발음 안 공간감은 구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라고 소감을 표시했다.  

​이번 대결에서 AI 목소리를 어렵게나가 감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사를 표현하는 능력의 차이를 많은 사람들이 인지했기 때문이다. '인간' 옥주현은 가사의 세밀한 내용까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맞춘 가창을 한데 반해 이 부분(텍스트 문장 이해력)에 대한 고려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지금의 음성 합성 AI로선 뮤지컬 디바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첨단 AI 기술, 혹시라도 안좋은 의도로 쓰인다면?​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지난 29일 방영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한 장면. ⓒ SBS

 
한편 이날 방송 말미엔 옥주현과 고 김광석이 함께 '편지'(김광진 원곡) 듀엣 무대를 선사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지난해 <다시 한번>과 비교하면 김현식 목소리 복원에 비해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해당 가수의 녹음 시점에 비례한 결과로 보인다.

1980년대 인물인 김현식에 비해선 90년대 녹음물이 많은 김광석은 다소 양호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때마침 올해 1월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시점이기에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겐 반가운 선물이 되어줬다. 

​하지만 방송을 지켜본 일부 시청자들은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 AI vs 인간 > 패널로 출연한 황광희는 "한편으론 무서워지는 거예요. 보이스피싱 있잖아요. 만약 AI가 나쁜 마음으로 사용된다면 그런 문제가 걱정이 되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MC 전현무와 김이나 역시 공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그런 문제에 대해선 우리 역시 크게 고민하고 있다.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 오남용 여부를 판별하는 AI도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외국에선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쓰는 AI 연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과연 AI가 만들어낸 이러한 결과물을 창작, 예술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김상욱 교수는 모나리자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했다. 

"수많은 복제 모나리자 그림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똑같이 복제한다고 해도 진품은 분명 존재하고 진짜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걱정은 남는다. 인공 지능에 의해 만들어진 뉴스 앵커도 실제 TV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입체 영상 구현, 텍스트 문장 인식, 음성 합성 등 모든 기술이 하나로 합쳐진 AI 물체는 어느 순간 탄생할 것이다. 나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곤 하지만 이를 어기는 누군가가 등장한다면 그때의 파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 AI vs 인간 >은 첨단 기술이 가져다줄 긍부정 효과의 의미와 함께 고민거리도 한가득 안겨줬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AI 인공지능 김광석 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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