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에 열리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와의 경기를 끝으로 2020-2021 V리그 여자부 전반기 일정이 모두 끝난다. 흥국생명이 '여제' 김연경과 '핑크폭격기' 이재영으로 구성된 토종 쌍포를 앞세워 유일하게 승점 30점을 넘긴 가운데 2위 GS칼텍스 KIXX(25점)부터 5위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17점)까지 승점 8점 차이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후반기 순위 경쟁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10월 말부터 11월까지 6연패를 당했던 도로공사는 12월 들어 3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타다가 최근 3경기 연속 풀세트 패배를 당하며 중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물론 3연패라는 최근 전적은 분명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지만 6경기 연속 승점을 따냈다는 사실은 대단히 고무적이다(비록 이재영과 이다영이 동시에 빠진 경기였지만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흥국생명을 상대로 승점 3점을 따낸 유일한 팀이다).

도로공사는 우려했던 외국인 선수 켈시 페인이 28일 현재 득점 4위(367점), 공격성공률 7위(38.29%)를 달리며 외국인 선수로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클러치박' 박정아도 3라운드 5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22.6득점을 퍼부으며 멋지게 부활했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이번 시즌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따로 있다.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 은퇴 후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리베로로 활약하고 있는 임명옥 리베로의 존재 덕분이다.

두 번의 우승과 수비상 수상 후 도로공사로 트레이드
 
 임명옥은 2015년 김해란과의 트레이드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임명옥은 2015년 김해란과의 트레이드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 한국배구연맹

 
리베로는 꼭 작은 선수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은 선수들이 리베로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리베로 포지션의 선수들은 대체로 신장이 작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김연견(현대건설),한다혜(GS칼텍스,이상 164cm), 도수빈, 박상미(이상 흥국생명, 이상 166cm), 오지영(KGC인삼공사,170cm) 등 각 구단의 리베로들은 대부분 170cm 이하의 작은 신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로공사의 주전 리베로 임명옥은 신장 175cm로 리베로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큰 신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임명옥이 공격수 출신이기 때문이다. 마산제일여고 출신의 윙스파이커 임명옥은 프로 출범 후 첫 드래프트였던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혜원(은퇴)과 황연주(현대건설)에 이어 전체 3순위로 KT&G 아리엘스(현 인삼공사)에 지명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임명옥은 2006-2007 시즌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KT&G의 윙스파이커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여자부에도 외국인 선수 제도가 정착되면서 국내 선수들이 대거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7년에는 이연주라는 대형 신인이 입단했다. 입지가 좁아진 임명옥은 수비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2007-2008 시즌부터 리베로로 변신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임명옥의 변신을 주목하는 배구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임명옥의 적응 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임명옥은 리베로 전향 첫 시즌부터 디그(세트당 5.28개)와 리시브(62.1%) 부문에서 각각 2위에 오르며 국가대표 터줏대감 김해란, 남지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트당 4.73개의 디그와 2.75개의 리시브로 수비 부문(디그+리시브)에서 1위(7.48개)에 오른 2010-2011 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수비상을 차지했고 2010년과 2012년에는 인삼공사의 챔프전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하지만 임명옥은 뛰어난 실력과 활약에 비해 배구팬들로부터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마다 '경험'에서 밀리며 번번이 대표팀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결국 임명옥은 지난 2015년 5월 김해란과의 1:1트레이드를 통해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당시에도 대부분의 배구팬들은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 김해란을 내준 도로공사가 '손해 본 장사'를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리시브-디그-수비 1위 질주하는 리그 최고의 리베로
 
 임명옥 리베로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50% 이상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리베로다.

임명옥 리베로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50% 이상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리베로다. ⓒ 한국배구연맹

 
임명옥은 도로공사 이적 후에도 팀 성적과는 상관 없이 꾸준한 활약으로 수비에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2016-2017 시즌에는 도로공사가 최하위로 밀려 났음에도 세트당 평균 6.28개의 디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도로공사가 FA시장에서 토종거포 박정아를 영입하면서 임명옥의 선수생활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도로공사의 김종민 감독은 박정아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박정아의 서브 리시브를 면제해 주는 '2인 리시브 체제'를 도입했다. 넓은 코트를 임명옥 리베로와 문정원에게 맡기는 작전으로 두 선수의 수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그리고 임명옥은 2017-2018 시즌 53.61%의 리시브 효율과 세트당 5.88개의 디그를 기록하며 도로공사를 프로 출범 후 첫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임명옥은 도로공사 이적 후 네 시즌 동안 한지현(IBK기업은행 알토스)과 나현정, 오지영(인삼공사) 등에 밀려 한 번도 리베로 부문 BEST7에 선정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대표팀에서도 리그에서도 2인자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던 임명옥 리베로는 지난 시즌 26경기에 출전해 51.94%의 리시브 효율과 세트당 평균 6.36개의 디그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리베로 부문 BEST7에 선정됐다.

이번 시즌에도 도로공사는 중·하위권을 맴돌고있지만 이와 별개로 임명옥 리베로의 활약은 '군계일학'이다. 54.96%의 리시브 효율과 세트당 5.74개의 디그를 기록하고 있는 임명옥 리베로는 수비 부문에서도 세트당 9.10개로 오지영(7.29개)과 신연경(기업은행,7.03개)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시즌 리시브 효율 50%를 넘기고 있는 선수는 리그에서 임명옥 한 명 밖에 없다.

임명옥은 이번 시즌 박정아(5억8000만원)와 배유나(2억6500만 원)에 이어 팀 내에서 3번째로 높은 연봉(2억4000만 원, 이상 옵션 포함)을 받는다. 하지만 임명옥의 보장 연봉은 지난 시즌과 같은 1억8000만 원에 불과(?)하다. 임명옥 리베로가 도로공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하면 보장연봉 1억8000만원은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임명옥이 도로공사 수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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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임명옥 리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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