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예대상' 이경규, 여유 한가득 이경규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로서의 소감을 말하고 있다.

▲ 'KBS 연예대상' 이경규, 여유 한가득 이경규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로서의 소감을 말하고 있다. ⓒ KBS


방송 40년 경력의 베테랑 예능인 이경규는 올해도 정신없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KBS2 <개는 훌륭하다>와 <신상출시 편스토랑>을 비롯하여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2>에 출연중이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웹예능에도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져 카카오TV 오리지널 <찐경규>를 새롭게 시도하며 코로나19 시대에도 실내에서 야외까지종횡무진 활약했다.

이경규는 올해 지상파 방송3사의 연예대상에서 KBS의 강력한 대상후보로 거론됐다. 이경규는 지상파 3사 연예대상을 통합 7회나 수상했고 이중 6번이 친정인 MBC에서 받은 것이었다. KBS에서는 2010년 <남자의 자격>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지만 이후 지난 9년간은 후보로만 7번 지명되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올해의 경우, 그가 출연하는 <개는 훌륭하다>와 <편스토랑>이 모두 KBS 연예대상 '최고의 프로그램상' 후보에 오를만큼 호평을 받았다. 두 프로그램 모두 안정적인 인기로 자리잡기까지는 초창기부터 원년멤버로 활약해온 이경규의 공로가 컸던만큼 수상을 기대하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상은 결국 후배인 김숙에게 돌아갔다.

비록 대상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이경규로서는 수상보다도 끊임없는 도전을 통하여 더 값진 시청자들의 사랑과 존중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 촬영시간이 길거나 몸쓰는 것을 싫어하기로 유명한 방송 이미지와 달리, 올해 이경규가 출연했던 작품들은 반려견 솔루션-음식 경연-낚시 레저물같이 하나같이 거저먹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고도의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생고생' 프로그램들이었다.

심지어 젊은 세대 취향의 '숏폼' 예능에 도전한 <찐경규>에서는 60대의 나이에 매주 바뀌는 각종 황당한 미션들을 수행해야했다.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고, 편의점 알바를 뛰는가하면, 까마득한 후배 PD에게 당하는 야자타임, 인기 캐릭터인 펭수와 콜라보, 지나치게 높은 인지도 때문에 15분이면 끝났어야할 '칼퇴근'이 번번이 좌절되는 등 계속해서 시험에 드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산전수전 다겪은 예능 백전노장이 굳이 고생을 사서하면서 오히려 권위를 내려놓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호감을 느낀다.
 
'KBS 연예대상' 긴장되는 대상 후보들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인 김숙 코미디언, 김종민 방송인, 샘 해밍턴 방송인, 이경규 코미디언, 전현무 방송인이 대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 'KBS 연예대상' 긴장되는 대상 후보들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인 김숙 코미디언, 김종민 방송인, 샘 해밍턴 방송인, 이경규 코미디언, 전현무 방송인이 대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 KBS

 
물론 이경규가 처음부터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이미지로만 통했던 것은 아니다. 오랜 방송경력만큼이나 이경규의 전성기에도 많은 굴곡이 있었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은 이경규의 커리어에서 어쩌면 가장 큰 고비였다. 한때 그를 정상급 예능인으로 이끌었던 '몰래카메라'와 공격적인 버럭 개그가 가학성-갑질 논란에 휘말리며 비호감으로 전락했다.

한때 큰 성공을 맛본 사람들일수록 강한 자기확신에 빠지게 되면 매너리즘이라는 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불과 10여년전의 방송에서 비쳐진 이경규의 이미지는 예능의 '독재자'에 가까웠다. 이경규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하는 후배 연예인들의 일화가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에피소드로 등장할 정도였다. 자신의 기준에 따라 연예인들을 급수로 나누어 품평하는 경솔한 언행들, 심지어 편집에까지 개입하여 PD나 작가의 영역을 넘나드는 위험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성격때문에 실제로 동료 출연자나 제작진들과도 여러 번 불편한 사이가 된 일화들을 직접 인정한 바 있다.

이경규는 한때 한 방송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젊은 제작진들이 같이 일하기 싫어하는 연예인중 상위권으로 꼽히기도 했고, 그가 방송국에 나타나면 마주치기 싫어서 '사람들이 좌우로 홍해처럼 갈라지더라.'는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심지어 터줏대감으로 활약하던 MBC <일밤>에서 하차하고 출연작들이 줄줄이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할 무렵에는, 천하의 이경규도 그대로 한물간 연예인으로 전락하는 듯 했다.

2010년대 들어 이경규는 조금씩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후배들을 주눅들게 만들던 공포의 대상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당하고 망가지는 역할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첫 리얼버라이어티에 도전한 <남자의 자격>을 통하여 메인 MC에서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입장에서, 한명의 구성원으로 내려와 각기 다른 '팀플레이'와 자연스러운 리얼리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트렌드의 변화에 적응했다.
 
'KBS 연예대상' 이경규, 여유 한가득 이경규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로서의 소감을 말한 뒤 미소짓고 있다.

▲ 'KBS 연예대상' 이경규, 여유 한가득 이경규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후보로서의 소감을 말한 뒤 미소짓고 있다. ⓒ KBS

 
<마이리틀텔레비전>을 통해서는 온라인 예능의 특성과 젊은 세대의 '드립 문화'를 이해했고, <나를 돌아봐>에서 선배 조영남과 후배 박명수를 보필하는 헌신적인 매니저로서 '을의 입장'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끼줍쇼>에서는 야외 예능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법을 익혔다. 이제는 강형욱, 김국진, 박명수, 강호동, 이태곤, 이수근, 이영자, 이유리 등 자신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역공을 가하는 후배들과 자연스럽게 유쾌한 케미를 이끌어내는 경지를 터득했다.

또한 최근 이경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연인 이경규의 실제 취향이나 관심분야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경규는 연예계에서 소문난 진짜 애견인이자 낚시광이고, '꼬꼬면' 등을 직접 개발했을 정도로 요리와 요식업에도 일가견이 있다. <개는 훌륭하다>에서 반려견들을 둘러싼 일화에 진심으로 감정을 이입하는 순간들, <도시어부>에서 장시간 촬영도 마다하지 않고 낚시에 집착하거나, <펀스토랑>에서 새로운 음식 메뉴 개발을 위하여 아이디어를 짜내는 장면 등도 모두 꾸며내지않은 '진짜 이경규'에 가까운 모습들이다. 방송을 떠나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기에 진심을 다할수 있고, 공익성과 정보전달이라는 건강한 메시지까지 인정받고 있다.

영욕을 다 겪은 현역 최고참급 예능인으로서 이제는 힘들고 불편한 촬영은 적당히 피할 법도 하건만, 이경규는 여전히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디지털을 다루는데 미숙하고, 젊은 세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서투르고 어색한 모습도 웃음의 포인트로 만들어낼지언정 포기하지는 않는다. 트렌드를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한발 더 앞서나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시도한다. 환갑의 나이에도 여전히 이경규의 출연작이나 그가 맡고있는 캐릭터들은 이경규말고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소화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경규의 장수는 단지 예능 분야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한 분야에 정점을 찍어본 인물들이 세월이 흘러서도 꾸준히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경규는 40년 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끝내 방송계의 주류에서 밀려나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유연하게 변화를 받아들일줄도 아는 용기는 절대 아무나 가질수 없는 것이다. 이경규가 먼저 예능인들이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선례를 개척하게 후배들로 그를 모델로 따라갈수 있다. 시청자들이 여전히 이 올드하고 까칠해보이는 예능 노장이 만들어내는 웃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이경규 찐경규 도시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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