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밥정>포스터

영화 <밥정>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 없듯, 쓸모없는 식재료도 없다. 못먹는 풀이라고 생각하던 잡초, 이끼, 나뭇가지도 임지호 셰프의 손에 들어가면 음식으로 환골탈태. 마치 마법을 부린 듯 진수성찬이 차려진다.

다양한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임지호 셰프와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의 박혜령 감독이 만났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 <밥정>엔 아름다운 한국의 산과 들, 바다, 사계절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있다. 자연에 순응하고 욕심내지 않는 임셰프의 철학,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학적 관점까지 모두 들어있다. 낳아 주신 어머니, 길러 주신 어머니, 길 위에서 만난 어머니께 올리는 정성 어린 음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전국을 떠돌며 얻은 재료로 밥하는 세프
 
 영화 <밥정> 스틸컷

영화 <밥정>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임지호 셰프의 이름 앞에는 '방랑식객'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 어릴 적 정체성을 찾아 참 많이도 떠돌아다녔다.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들었던 혼란을 요리로 승화했다. 떠돌면서 이곳저곳에서 배운 요리 실력으로 생계를 잇고 요리사란 직업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요리사가 되었다. 소위 성공한 셰프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세상을 등지고 묵묵히 걷는다. 계절 따라 전국에서 구한 자연 식재료로 밥을 해드리고 정을 나눈다. 한 해 두해 그리움과 사랑이 쌓여 임셰프만의 요리 철학을 완성해 갔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10년 전 우연히 지리산에서 만난 김순규 할머니를 세 번째 어머니로 모시기로 한 후다. 아이같이 맑은 얼굴로 "예쁘다"를 연발하며 서로를 쓰다듬기 바쁜 두 사람은 모습은 누가 아이고 누가 부모인지 헷갈릴 정도다. 주름투성이인 할머니의 작고 굽은 등은 아이처럼 가냘프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로 애틋함을 더하던 때, 임 셰프는 뜻밖의 비보를 듣는다. 한 달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한다.

영화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환된다. 카메라는 지리산 골짜기 집에서 혼자 3일에 걸쳐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임셰프를 쫓는다. 김순규 할머니를 위해 쪽잠을 자가며 만든 108 접시는 음식으로 올리는 사모곡이며, 일종의 행위예술처럼 보인다. 그 이상의 예술 작품이라 할만하다. 만든 음식을 할머니의 자식들과 나누며 고마움을 대신한다. 때로는 혈연으로 맺은 사이보다 더 진하고 깊은 관계가 있는 법이다.
 
 영화 <밥정> 스틸컷

영화 <밥정>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그가 전하고 싶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음식에 담아 전파한다.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맛과 멋, 향기와 식감이 전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도 온전히 배부르게 먹어치우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유독 '밥'에 대한 말을 자주 한다. 밥정은 한국인의 DNA에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다. 밥은 끼니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밥 먹었냐", "밥 한 끼 하자"라는 말은 안부를 묻거나 인사말로 갈음한다. 그래서 밥심으로 일하고 따뜻한 밥상으로 감동받는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해준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푸근하다.

밥으로 나누는 정은 한국인의 오랜 정서 중 하나이다. 밥 짓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온전히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동할 때 가능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처럼 70억이 넘는 인구 중 얼굴 맞대고 밥 먹는 사람은 전생의 무슨 인연이었을까 곱씹게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조미료 없이 천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은 듯 담백하고 정화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어머니가 꾹꾹 눌러 담은 밥 한 공기의 온기처럼 오래도록 식을 줄 모를 따뜻한 정서가 남는다. 무엇보다 신기한 점은 '세상에 이런 것도 먹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식재료로 진귀한 음식이 만들어질 때다.

사뭇 자연이 주는 선물, 재료 각각의 의미,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러닝타임 동안 흠뻑 빠져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면 오늘 끼니를 함께한 사람을 떠 올리며 기억을 곱씹어 간직해 봐도 좋겠다. 매일 먹는 삼시 세끼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되새기길 바란다.
밥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