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곳 미국에서 주말마다 산을 찾아 다니며 가벼운 하이킹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특별히 멋진 곳을 만날 때가 있다. 산길 곳곳 시냇물이 흐르고 폭포도 있고, 등산로 따라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갖가지 새들이 지저귀는 곳. 간혹 야생 사슴이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곳을 만나면 모든 감각들이 호강을 하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등산로는 정말 재미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변화가 없는 주위 풍경. 길 옆의 나무도 고만고만한 잡목과 덤불들만 가득하고, 그 흔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덤덤한 길도 있다. 

그 길이 그랬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한적하고 여유롭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만 찾는 곳이었다. 유일하게 이 등산로에서 눈에 띄는 건, 윗부분이 잘려 나무 밑동만 남아 있는 고목 그루터기였다.

살아 있었다면 꽤 덩치가 큰 아름드리 나무였을 듯 하지만 지금은 길옆에 자리잡고 있는 죽은 고목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 등산로에선 유일하게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 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곤 했었다.

죽은 고목 나무에 생긴 놀라운 변화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또 이곳을 찾았던 어느 주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죽은 고목이 동화 속 요정의 집으로 변신해 있었다. 고목의 가운데, 텅 빈 공간을 중심으로 누군가 나뭇가지와 나뭇잎, 털실같은 재료로 소꼽놀이 하듯 작은 인형의 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던 죽은 고목에 누군가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얹어 놓으니 마치 동화 속 요정의 집처럼 보인다.
▲ 요정의 집으로 변신한 나무 그루터기  아무도 보아주지 않던 죽은 고목에 누군가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얹어 놓으니 마치 동화 속 요정의 집처럼 보인다.
ⓒ 김상대

관련사진보기

     
마치 절벽 위의 집을 상상해 만든 것처럼 나무 껍질로 출입문도 만들어 놓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잇대어 층층이 올라 갈 수 있게 사다리도 놓여 있다. 집 앞 공터에는 나무 조각과 작은 돌 조각들을 이용해 모닥불 터까지 만들어져 있는데 그럴싸해 보인다. 고목 끄트머리에 털실과 나뭇잎으로 만든 그네는 마치 절벽 끝에 매달린 그네처럼 근사하다.

어릴 적 동화책에 나올 법한 요정들의 나라가 그려진다. 어디선가 나뭇잎 모자를 둘러쓰고 녹색 옷을 입은 요정들이 나타나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그네를 즐기는 상상을 해본다.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동심의 세계를 헤매고 있다가 문득 든 생각…
 
나뭇잎 모자를 쓰고 녹색 옷을 입은 요정이 나타나 그네를 타는 상상을 해본다.
▲ 나뭇잎과 털실로 만든 그네  나뭇잎 모자를 쓰고 녹색 옷을 입은 요정이 나타나 그네를 타는 상상을 해본다.
ⓒ 김상대

관련사진보기

 
죽은 나무 위에 나뭇가지 몇 개, 나뭇잎 몇 개, 돌멩이 몇을 얹어 놓은 것뿐인데 이렇게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니... 매번 생각없이 지나치던 죽은 고목이 요정의 나라가 된 순간!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살아가는 매일 매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는 막막함에 어깨가 축 늘어지고 한숨이 새어 나올 때도 있다. 그런 날들에 고목 위 작은 나뭇가지와 잎사귀같은 무언가를 얹을 수 있다면... 거기에서 어떤 작은 의미라도 찾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무언가가 되면서 세상이 한결 다르게 보일 것이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어떤 의미를 더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는 놀라운 순간이 펼쳐지지 않을까?
▲ 나뭇가지 몇개를 얹으니 죽어 있던 고목(좌)에서 요정의 집(우) 으로 바뀐 모습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어떤 의미를 더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는 놀라운 순간이 펼쳐지지 않을까?
ⓒ 김상대

관련사진보기


인간은 가장 큰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의미를 찾았다면 지옥에 있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보다 무서운 것이 삶에 대한 절망이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이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그곳에서 나가 꼭 해야 할 삶의 숙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일 수도 있고, 내버려진 집 정원을 가꿔야 된다는 한결 가벼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또 찾고 있다면... 아무리 힘든 시간 속에 있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고목같은 우리 삶 속에 작은 나뭇잎 하나라도 얹을 수 있으면 좋겠다.

태그:#고목, #요정의 집 , #의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없는 들판까지 온갖 나무며 풀이며 새들이며 동물들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는 순간 등, 항상 보이는 자연이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