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으로 열렸던 2019년 7회 순천만세게동물영화제 기자회견 모습

지난해 마지막으로 열렸던 2019년 7회 순천만세게동물영화제 기자회견 모습 ⓒ 순천만동물영화제

 
지난 2013년 시작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가 올해 폐지됐다. 그동안 8월 말에 개최해 왔으나 올해는 개최되지 않았는데, 한 해 쉬는 게 아니라 아예 없어진 것이다.

2018~2019년까지 2년 간 총감독을 맡았던 박정숙 감독은 "시의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12월 31일 계약 만료 이후 구체적인 폐지 이유에 대해서듣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순천시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영화제를 개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여파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영화인들이 아닌 공무원들의 주도했던 영화제라는 점 또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순천만동물영화제는 2013년 이후 상설 사무국도 만들어지지 않은데다, 집행위원장(총감독)과 프로그래머를 단기 계약직 형태로 선발해 운영해 '영화인들을 소모폼처럼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허석 순천시장은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영화제 상설 사무국 구성 등과 관련해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파악해서 올해 영화제가 끝난 후 적극적으로 고민하겠다"라고 밝혔으나 폐지로 결정난 것이다.
 
순천만동물영화제는 집행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가 거의 매해 바뀌다시피하면서 영화제의 특성과 정체성이 희석됐고 7회를 개최하는 내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순천시는 영화제 개최로 '순천만 국가정원'을 홍보함과 동시에 동물 애호가들이 지역을 많이 찾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 형식으로 영화제를 진행하다보니 동물과 관련된 부대행사가 많아지면서 주객이 전도돼 결국 7회만에 문을 닫게 됐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영화제의 한계 
 
 지난 7월 23일~27일까지 열린 1회 합천수려한영화제

지난 7월 23일~27일까지 열린 1회 합천수려한영화제 ⓒ 합천수려한영화제


국내에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개최되고 있으나 소멸하는 영화제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들이 영화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빚어지는 일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청소년 영화제가 2018년 3회 행사를 끝으로 사라진 것도 영화인들에게 주도적인 역할이 맡겨지지 않았던 것의 영향이 큰 걸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23일~27일까지 열린 제1회 합천수려한영화제를 향한 일각의 우려 또한 '순천만동물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합천영화제는 영진위 지원 1천만 원을 포함해 1억 원의 예산으로 처음 개최된 단편영화제였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장마기간 폭우가 겹치다보니 700여 명만  영화제를 찾는 등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흥행 성적보다 더욱 우려를 사는 부분은 지속성이다. 합천에는 합천영상테마파크 스튜디오 외에 영화적 기반이 없다는 점, 상시적으로 영화제를 준비할 만한 사무국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우려를 더 키운다. 

흥행 실패 등 일각의 우려에 대해 합천군 한 관계자는 "폭우와 코로나 때문에 흥행이 안 됐는데, 시기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라며 "문화담당 공무원이 영화제에 대한 외부강의를 듣고 지역에서도 영화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 준비라 외부에서 집행위원장을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실무진을 외부에서 채용하면서 일종의 아웃소싱 영화제로 개최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한 "군수님이 관심을 갖고 있고 기본적으로 내년에도 할 계획이라 기존 집행위원장에게 다시 맡기지 않겠나"라며 "다만 "실무자들이 업무를 오래 맡아 다른 자리로 인사이동 가능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존재한다. 영화인들이 중심이 돼 지역에서 작은 토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경우다. 지난 8월 21일~23일까지 열린 '제7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는 전체 예산이 영진위 지원 포함 2천만 원 수준의 아주 작은 영화제였다.
 
작은 영화제임에도 목포 영화제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영화인들이 스스로 독립영화관을 만들고 꾸준히 기반을 닦았기에 더욱 주목됐다. 

처음 영화제를 개최할 때는 사비를 털어야 했고 장소도 이곳 저곳으로 옮기면서 진행해야 했다. 그러다 지난 5회 때 처음으로 목포시에서 100만 원을 조금 웃도는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6회 때부터 영진위 지원을 받게 되면서 힘을 얻게 됐다.
 
올해 영화제가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독립영화인들의 오랜기간 꾸준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행정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올해는 국내 영화인들을 초청해 팸투어를 진행하는 등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지난 8월 21일~23일까지 열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식 모습

지난 8월 21일~23일까지 열린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식 모습 ⓒ 성하훈



집행위원장인 정성우 감독은 "지난해 대비 2배 정도 관객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관객 수가 파격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고 3일 동안 연인원 250명 정도의 수준이지만, 새로운 관객들이 많았다는 점은 지난 7년 동안 펼쳐온 활동이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었다. 
 
목포 사례는 씨네마테크 활동을 통해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개최하고 극장을 만드는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강릉과도 비슷하다. 지역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활동이 영화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목포의 문제는 이들의 열정과 의지에 비해 지원이 약하다는 점이다. 영진위 지원은 국비 확보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목포시 외에 전라남도의 지원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 만큼은 매우 뜨겁다. 지원에 아랑곳없이 영화제 슬로건으로 '우리는 계속하겠습니다', '해야 할 일'을 내세웠는데, 이는 이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자체들이 1회성 이벤트 형식의 영화제에 관심 두기보다는, 지역에서 꾸준하게 영화 기반을 갖추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뒷받침해 줄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합천수려한영화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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