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배우 서지혜의 팬이라면 MBC 월화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한정판'과도 같은 작품일 것이다. 2002년 고교 시절에 연예계에 데뷔한 이래 18년 동안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누비며 꾸준하게 활동을 해왔지만 서지혜는 의외로 뒤늦게 빛을 발한 케이스에 가깝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한때는 '뛰어난 미모에도 생각보다 안뜨는 배우'를 언급할 때 단골로 거론되기도 했다.

사실 데뷔 초기에는 <여고괴담4>, <신돈> 등에서 히로인으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오히려 주연급이라기보다는 메인 여주인공을 받쳐주는 '2인자' 혹은 '짝사랑' 전문 캐릭터로 활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조연으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우월한 미모와 개성으로 오히려 진짜 여주인공의 존재감마저 압도하는 '시선 강탈 전문' 배우로 명성을 떨치기에 이르렀다.

손예진, 신세경, 김아중, 공효진 등 당대의 인기 여배우들과 나란히 세워놔도 연기력이나 존재감에서 모두 밀리지 않는 서지혜의 매력을 지켜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항상 짝사랑 전문이나 팜므파탈 역할만 맡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평가가 많았다.

<펀치>의 아군과 적군을 넘나드는 포커페이스 여검사 최연진, <질투의 화신>의 걸크러시 욕쟁이 아나운서 홍혜원, <흑기사>의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샤론, <사랑의 불시착>의 평양발 팩트 폭격기 서단 등은 모두 이른바 서지혜표 '다크 히로인' 연기의 정석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여성팬들에게는 도도하고 세련된 패셔니스타에 어디서나 할 말은 다 하는 우월한 걸크러시 매력으로, 남성팬들에게는 비련의 짝사랑에 홀로 가슴아파하며 동정심을 자극하는 반전 매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메인 여주인공으로 돌아온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그동안 본의아니게 억눌려왔던 서지혜의 '로코퀸'으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한풀이하는 무대에 가깝다. 서지혜가 맡은 우도희는 남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주인공이고, 정말 드물게 특별한 배경이나 비정상적인 사연이 없는 '일반인'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다.

술에 취해서 남주인공 앞에서 혀짧은 소리로 애교를 떤다거나, 트로트를 구성지게 열창하고 욕설까지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등 전작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서지혜의 '망가지는 연기'를 마음껏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장된 코믹연기만이 아니라, 송승헌이 연기하는 김해경과 썸을 타는 과정에서의 미묘한 설렘이나 케미를 표현할 때 드러나는 잔잔한 멜로감성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서지혜는 이러한 전형적인 로코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맡겨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매 에피소드마다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다만 서지혜만 돋보인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식사'를 매개로 두 남녀가 서로의 연애사와 일상을 주고받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식사란 사람에게 단지 한끼 배를 채우는 과정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수많은 사회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소통과 교류의 시간이다. 또한 음식에 대한 취향은 개인의 솔직한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홀로족이 늘어나면서 혼술혼밥 문화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에 '디너메이트'라는 명칭처럼 '누군가와 저녁을 함께 한다'는 행위는, 각기 다른 성향의 두 남녀가 지극히 사적인 취향과 추억까지 공유하며 마음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사건에 의존한 로맨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을법한 일상의 경험과 공감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 <저녁 같이 드실래요>의 가장 차별화된 매력포인트였다.

이번 드라마는 원작 웹툰과 비교하여 등장인물들의 직업과 배경, 성격 등이 모두 크게 바뀌었다. 남주인공 해경을 '음식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의사(원작은 출판사 직원), 도희를 온라인 컨텐츠 제작사의 PD(원작은 회사원) 등으로 설정한 것은 작품의 특성상 '음식 로맨스'라는 설정과 원할한 극적 전개를 위하여 어느 정도 각색이 필요했다고 이해하더라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은 디너메이트라는 원작의 기본설정만 제외하면 오히려 갈수록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물의 전형적인 설정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구성을 따르고 있다. 제주도에서 바람피는 남친에게 배신당한 도희가 이 장면을 목격한 해경과 첫 인연을 맺게되는 과정에서부터, 오랫동안 서로의 실명과 직업을 모르고 온라인 상에서 티격태격하는 설정, 각각 전남친-전여친의 등장으로 얽히고섥힌 4각관계가 형성되는 구도에 이르기까지, 이미 기존 로코물에서 여러번은 봤음직한 이야기 전개들이 그대로 재탕되고 있다.

그나마 초반부에는 서지혜의 발랄한 코믹연기와 남주인공 송승헌과의 비주얼 케미, 다양한 음식 먹방과 드라마 패러디의 향연 등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며 이야기의 매력을 유지했지만, 중반부에 접어든 현재는 차별하된 장점이 거의 희석된 상태다.

도희와 해경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디너메이트'라는 설정이 무의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이나 먹방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들었다. 주인공들의 직업을 정신과 의사와 컨텐츠 제작PD로 굳이 설정해 놓고도 이들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장면의 묘사는 지나치게 가볍다 보니 극중인물로서의 공감대보다는 배우 송승헌-서지혜의 외모적인 매력에 의지하는 면이 더 커보인다.

또한 원작과 달리 극단적으로 '뻔뻔한 진상 전여친'-'음흉한 스토커 전남친'으로 설정된 진노을(손나은)과 정재혁(이지훈)은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갑툭튀 캐릭터에다가 등장할 때마다 발랄한 극분위기와 맞지 않는 설정으로 스토리에 위화감만 제공한다. 남아영(예지원)과 키에누(박호산)의 애매한 썸, 해경의 어머니 이문정(전국향)의 사연, 감초 역할로 투입된 도희의 직장동료들 등 조연들의 이야기는 극전개상 큰 매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서사의 진전도 너무 느리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방송 초반 5~6%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중반 이후로는 3%대로 정체된 상태다. 원작 웹툰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매력포인트나, 여주인공 서지혜가 '로코 인생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완성도다.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저녁 같이 드실래요>가 진부함의 한계를 극복하는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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