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가 '폭풍영입'으로 2020년 자유계약선수(FA) 시장 판도를 휩쓸었다. 현대모비스는 11일 국가대표 센터 장재석을 비롯하여 이현민, 김민구, 기승호까지 4명의 FA 선수를 한꺼번에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203cm의 장재석은 이대성과 함께 올시즌 FA 선수중 최대어로 꼽혔던 선수다. 지난 시즌까지 고양 오리온에서 활약했으며 2019-20시즌에는 42경기에 출전, 평균 8점에 4.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수비력과 기동력을 겸비하고 있어서 유재학 감독이 지향하는 시스템 농구에서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구-이현민-기승호는 주전급은 아니지만 벤치 자원으로써 공수의 다양성을 더해줄 수 있는 즉시전력감이다. '부활한 탕아' 김민구는 음주운전 사고로 몰락하기 전까지 허재의 후계자로 거론될 정도로 촉망받던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부상으로 운동능력을 잃은 이후에 특유의 농구센스로 프로무대에서 살아남았고, 지난 시즌에는 원주 DB에서 37경기에 출전해 평균 7득점 2.7리바운드 2.8어시스트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베테랑 가드 이현민은 지난 시즌까지 장재석과 오리온에서 함께 활약했고, 단신이지만 풍부한 경험과 노련한 경기운영 능력이 강점이다. 포워드 기승호는 파이팅과 수비력이 좋은 선수이지만 간간이 한 방을 터뜨리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로써 현대모비스는 15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터줏대감' 유재학 감독과의 재계약에 이어, 이적시장에서는 각 포지션에 걸쳐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전력보강에 성공하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모비스는 지난 시즌 큰 변화를 겪었다. 2018-19시즌 우승 주역이었던 라건아와 이대성을 전주 KCC와의 대형 트레이드로 떠나보냈고, 베테랑 양동근은 은퇴를 선언하며 자연스럽게 '리빌딩'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최고참이 된 함지훈을 중심으로 이종현, 김국찬, 전준범, 서명진 등 준수한 자원들은 많았지만 베테랑과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줄 '중견급' 선수들이 부족했다. 모비스가 이번 FA시장에서 전례없이 외부 영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이유다.

영입 4인방 중에서도 가장 의미있는 영입은 역시 장재석이다. 모비스가 장재석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비스에는 이미 함지훈과 이종현이라는 국내 정상급 토종빅맨 자원들이 있는데다 새 외국인 선수로 208cm의 NBA 출신 숀 롱까지 영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지훈은 벌써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노장이고, 이종현은 잦은 부상경력 때문에 내구성에 불안요소가 컸다. 장재석은 공격력이 다소 떨어지는 약점이 있지만 장신임에도 활동범위가 넓어서 수비적인 활용도가 높고 외국인 선수도 어느 정도 막아낼수 있다. 장재석이 수비와 스크린 등 궃은 일에서 제몫을 해주면 숀 롱의 수비부담을 덜고 더 공격적으로 활용하는게 가능해진다.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리바운드에서 38.7개로 10개 팀 중 7위에 그친 모비스로서는 다음 시즌 트윈타워 혹은 트리플 타워까지 활용한 고공농구가 가능해진다.

가드진 역시 양동근과 이대성의 공백을 메워줄 노련한 선수가 필요했다. 서명진, 김세창, 박경상, 김상규 등이 있었지만 풀타임을 맡기기에는 안정감이 떨어진다.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이현민의 리딩력과 김민구의 패싱센스-클러치 능력을 잘 활용하면 양동근의 빈 자리를 어느 정도 분담하는 것이 가능하다.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 부임 이후 무려 6회나 KBL 정상에 오르며 왕조를 구축하는 동안 리빌딩도 수차례나 거쳤다. 2020-21시즌을 준비하는 모비스의 리빌딩 상황을 보면 유재학 감독 부임 초기이자 첫 번째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2006-07시즌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당시만 해도 모비스는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였던 양동근과 외국인 선수 고 크리스 윌리엄스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스타플레이어가 없었지만,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각 포지션에서 적절한 분업화와 신구조화를 이룬 '시스템 농구'를 펼치는 팀이었다. 모비스 역사상 가장 전력이 뛰어났던 팀은 라건아-문태영 등을 앞세워 KBL 최초의 3연패를 기록했던 2013-2015년이나, 2018-19시즌이 꼽히지만 오히려 끈끈한 팀워크가 돋보이던 첫 우승 당시의 모비스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당시 모비스의 국내 선수진은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한 유망주들을 끌어모은 불안정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비스 시스템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제 역할을 다했다. 그토록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초창기 우승 시절 모비스의 구단 '샐러리캡'은 놀랍게도 항상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유재학 감독의 탁월한 선수단 구성 능력과 전술적 역량이 본격적으로 만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현재 모비스의 선수구성도 비슷하다. 양동근, 라건아, 이대성이 모두 떠난 현재 모비스 멤버 중 각 포지션에서 리그 최정상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함지훈은 은퇴가 머지않았고, 전준범, 이종현, 장재석, 김국찬 등은 재능은 있지만 장단점이 명확한 선수들이다. 특출한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는 대신, 개성과 장점이 뚜렷한 선수들의 조합으로 로테이션의 활용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엮어낼 유재학 감독의 역량, 양동근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리더가 누가 되느냐가 다음 시즌 모비스의 재건을 가늠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모비스의 리빌딩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당장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이상의 성적을 노릴 수 있는 강력한 대권후보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모비스 팬들에게는 왕조의 초석을 만들어가던 초창기 시절의 데자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울산현대모비스 장재석 유재학감독 프로농구F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