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기업 듀폰의 범죄행각을 고발한 <다크워터스>

거대기업 듀폰의 범죄행각을 고발한 <다크워터스> ⓒ 이수C&E

 
중대 범죄를 자행하는 기업에게 국가는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가?

거대기업이 사실상 국가 권력 위에 군림하며 정치 체제를 훼손하는, 이른바 '초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한 번쯤 던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벨벳 골드마인>의 토드 헤인즈가 연출하고 마크 러팔로, 앤 해서웨이가 출연한 2019년 작 <다크워터스>는 이 같은 의문에 답을 주는 영화다. 

영화는 거대 화학회사 듀폰이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고발한다. 듀폰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작은 마을인 파커스버그에 공장을 운영한다. 듀폰은 이곳 공장에서 테프론이란 소재를 개발해 막대한 이윤을 올린다. 듀폰이 테프론으로 거둬들이는 수익규모는 연간 10억 달러에 이른다. 

파커스버그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윌 테넌트(빌 캠프)는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자신이 키우는 젖소 190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의 농장은 듀폰사 소유 폐기물 처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윌 테넌트는 젖소의 떼죽음이 듀폰사 폐기물 처리장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고,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증거들을 모아 파커스버그 출신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에게 전해준 뒤,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호소한다. 

롭 빌럿은 처음엔 의아해 한다. 그러나 듀폰사가 건네 준 자료를 분석하면서, 테프론이 인체에 치명적인 독소임을 알았음에도 은폐하고 이를 폐기장에 매립한 사실을 밝혀낸다. 롭 빌럿은 이후 듀폰사에 맞서 지리한 법정 공방에 들어간다. 

먼저 마크 러팔로의 연기부터 칭찬하고 싶다. 확실히 러팔로의 연기는 마블의 '헐크' 캐릭터 보다는 롭 빌럿 같이 깊이 있는 내면연기가 필요한 역할에서 제대로 빛난다. 러팔로는 또 환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러팔로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나다니엘 리치의 탐사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아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영화 중간 중간 깜짝 출연하는 실제 인물들도 볼거리다. 

거대기업이 군림하는 세상, 각자도생만이 탈출구? 
 
 <다크워터스>에서 마크 러팔로는 롭 빌럿을 연기하면서 섬세한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다크워터스>에서 마크 러팔로는 롭 빌럿을 연기하면서 섬세한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 이수C&E


대게 거대기업의 범죄행위를 고발하는 영화는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가 악덕기업에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울 것이란 결말을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 <다크워터스>는 이 같은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듀폰과의 공방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롭 빌럿은 지쳐간다. 롭 빌럿이 일하는 '테프트' 로펌의 주요 고객은 유니온 카바이드, 3M 등 거대 화학회사다. 고객들이 듀폰을 상대로 싸우는 롭을 곱게 볼 리 없었다. 심지어 파트너 변호사들도 롭의 소송을 '한 탕' 하려는 시도로 폄하한다. 롭은 듀폰과 싸우면서 고객을 모두 잃는다. 이뿐만 아니다. 법무부는 듀폰에 대한 수사를 철회하고, 정부 관련 기관들은 롭을 향해선 과태료 명목으로 고지서를 보낸다. 

과학자로 꾸려진 실무그룹이 7년 간의 연구조사 끝에 듀폰의 테프론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결과를 내면서 롭에게 돌파구가 생기는 듯 했다. 하지만 듀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듀폰은 테프론의 유해성이 입증되기 무섭게 보상 합의안을 철회한다. 

이 영화의 가치는 이 지점에서 빛난다. 영화가 겨냥하는 기업은 듀폰이다. 그러나 기업범죄는 이제 일상이다. 듀폰 말고도 노동자를 병들게 하고,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이를 숨기고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는 거대기업은 비단 듀폰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기업활동을 감시·감독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범죄에 적극 제동을 걸기는커녕 가해기업 편을 들기 일쑤라는 점이다. 

듀폰이 합의를 철회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롭은 절망에 빠진다. 롭은 노기 가득한 어조로 아내에게 이렇게 외친다. 

"국가체계는 조작됐어. 국가가 우릴 보호해줄 것 같지만 거짓말이지. 우린 우리가 보호해야 해. 아무도 못해줘. 회사도 과학자들도 아니고 정부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 ! 중학교만 나온 농부가 나한테 그걸 말해줬어."

롭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한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듯하다. 듀폰 같은 거대기업, 혹은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자본이 미국 정부를 쥐고 흔든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러니 힘없는 이들에게 최선은 '각자도생'이다. 

그런데 <다크워터스>가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국가 시스템도 거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보인다. 관료 조직도, 사법부도 거대기업의 이윤논리에 포획되다시피 한 상태다. 그래서 재벌기업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지역사회 환경을 파괴해도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가 이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은 적이 별로 없다. 정치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어도 국회문턱을 넘기조차 힘들다. 
 
 <다크워터스>에서 변호사 롭 빌럿은 듀폰이 건네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듀폰이 범죄행위를 은폐했음을 발견한다.

<다크워터스>에서 변호사 롭 빌럿은 듀폰이 건네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듀폰이 범죄행위를 은폐했음을 발견한다. ⓒ 이수C&E

 
거대기업은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며 막대한 이득을 거둬들인다. 이들은 규제라는 제도적 경계선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노동자 임금이 상승하면 싼 임금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안전 관련 규정이 강화 되면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공장을 옮겨 돈을 번다는 말이다.  

이들을 막으려면 결국 국가기구가 나서야 한다. 국가기구가 나서서 이윤논리에 움직이는 기업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기구가 거대기업에 매수됐다면? 시민참여가 답이다. 시민이 행동에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야 국가의 신뢰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힘없는 이들의 각자도생을 막을 수 있다. 

이 영화 <다크워터스>는 바로 이런 점을 일깨워준다. 참으로 소중한 영화다. 
다크워터스 듀폰 마크 러팔로 파커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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