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시사기획 창'은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의혹에 이어 고 성우준 씨(가명) 사망사건을 통해 집배원 노동실태를 고발한다.

KBS 1TV '시사기획 창'은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의혹에 이어 고 성우준 씨(가명) 사망사건을 통해 집배원 노동실태를 고발한다. ⓒ KBS

 
"이게 벌써 몇 번째입니까? 하나도 빼지 말고 방송해줘요. 내 아들은 이렇게 죽었어요, 내 아들은!" 

경기도 가평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다 숨진 고 성우준씨(가명)의 어머니가 KBS 1TV '시사기획 창' 취재진 앞에서 절규했다. 

'시사기획 창'은 25일 방송에서 두 개의 이슈를 다뤘다. 하나는 윤석열 검찰총장 장모 최아무개씨 관련 의혹, 그리고 고 성우준씨의 사연이다. 

방송 전 관심은 첫 번째 이슈, 즉 윤 총장 장모 의혹에 쏠린 것 같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미 MBC '스트레이트'가 세 차례에 걸쳐 이 주제를 보도했기에, '시사기획 창'에서 추가로 새로운 무엇인가가 드러날 줄 알았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방송 내용은 기존 '스트레이트'가 제기한 의혹을 재탕(?)하는 데 그쳤다. 오히려 진짜 주목해야 할 사건은 집배원 고 성우준씨의 죽음이라는 판단이다.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고 성씨의 죽음을 재구성한다. 고 성씨가 숨지기 전 상황은 실로 암담하다. 고 성 씨는 가평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했다. 고인은 건강이 나쁘지 않았다. 보디빌딩을 좋아했고,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 하지만 고 성씨는 지난 해 8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 성씨는 월 평균 1551km의 거리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했다. 고 성씨의 담당구역 면적은 가평군 전체 면적의 20%인 30㎢, 배달한 우편물은 월 평균 1만7327건이었다. 고 성씨는 견디다 못해 근무거리 조정을 요청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졌지만, 거리는 오히려 월 평균 1233km에서 1660km로 되려 늘어났다. 

고 성씨는 근무원칙을 지키려 했다. 원칙을 지키다 보니 업무량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부하가 걸렸다. 한 번은 배달하다가 어깨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3개월을 쉬어야 했다. 이러자 동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빠진 자리를 동료들이 메꿔야했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 역시 업무강도가 살인적이다 보니, 고 성씨의 빈자리를 메꾸려면 추가로 업무가 과중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고 성씨는 정규직 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고 성씨가 당한 일은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집배원은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앞서 2019년 5월 숨진 공주우체국 집배원 고 이은장씨의 사례는 고 성씨 사례와 판박이다. 고 성씨와 마찬가지로 고 이씨는 건장했지만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숨졌다. 사인은 돌연사였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차이라면 고 성씨는 정규직 임용에서 탈락한 반면, 고 이 씨는 숨지기 전 우정 9급(집배) 공무원 경력 경쟁채용시험' 응시원서를 남겼다는 점뿐이다. 고 이씨가 남긴 응시원서는 영영 접수될 수 없었다. 
 
 지난 해 7월 민주노총 계열의 집배노조는 집배원 사망사고가 잇다르지 정규직 증원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지난 해 7월 민주노총 계열의 집배노조는 집배원 사망사고가 잇다르지 정규직 증원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 지유석

 
당시 민주노총 계열의 집배노조 충남지부는 "하루 배달한 우편물량은 이동거리가 많은 농촌지역임에도 하루 1200여건 정도로 집배원 평균물량(1000건)보다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퇴근 등록을 하고도 퇴근하지 못한 채 무료노동을 감내해야 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인 6월엔 당진우체국에서 또 집배원 고 강아무개씨가 숨졌다. 사인은 뇌출혈. 고 강씨는 2018년 7월 정규직으로 전환돼 일해 오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당시 기자는 당진우체국을 찾았는데, 고 강씨의 동료는 "숨지기 전날 강 씨를 마트에서 봤다. 간식을 사들고 환하게 웃었고 좋은 형님이었는데, 다음 날 그렇게 될 줄 몰랐다"며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불안해했다. 

집배원이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나온 적이 있었다. 2017년 8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아래 기획추진단)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 연간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임금노동자 평균노동시간 2052시간(2016년 기준)보다 693시간 더 길었다. 

과도한 노동은 집배원 돌연사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상반기 동안 9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사인은 과로 내지 안전사고였다. 안전사고도 과도한 노동에 따른 집중력 약화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배원도 있었다. 

집배원이 잇달아 숨지면서 한국노총 계열의 우정노조는 파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우정노조는 지난해 7월 우정사업본부와 ▲ 집배원 주 5일 근무 ▲ 7월 중 소포위탁배달원 750명 증원 ▲ 직종 전환을 통한 집배원 238명 증원 등 총 988명 증원에 합의하며 한 발 물러섰다. 

고 성씨가 숨진 시점은 합의한 내용을 발표한 이후다. 합의안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합의 이후에도 집배원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졌음은 합의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합의 이후 집배노조는 합의안에 토요택배가 빠졌고, 증원하기로 한 위탁배달원이 토요택배를 맡도록 한 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집배노조는 합의안 발표 직후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위탁택배원 비중 확대와 토요택배 유지는 우정사업본부의 중장기 계획"이라며 "이번 합의로 사용자는 기존에 추진하려던 계획을 우정노조와 합의해 더욱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집배노조는 그러면서 "집배원의 과로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행하게도 집배노조의 경고는 틀리지 않았다.
 
 지난 해 5월 공주우체국 비정규직 집배원 고 이은장 씨가 돌연사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자 고 이 씨의 어머니 구아무개 씨는 아들이 일하던 우체국을 찾아 통곡했다. 통곡하는 구 씨의 결을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켜줬다.

지난 해 5월 공주우체국 비정규직 집배원 고 이은장 씨가 돌연사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자 고 이 씨의 어머니 구아무개 씨는 아들이 일하던 우체국을 찾아 통곡했다. 통곡하는 구 씨의 결을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켜줬다. ⓒ 지유석

   
방송을 통해 고씨 어머니의 절규를 들으니 자꾸만 공주우체국 고 이은장 집배원이 떠오른다. 고 이은장 집배원의 어머니 구아무개씨는 아들이 일하던 우체국을 찾아 내내 통곡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통곡하는 구씨의 곁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지켰다) 

여기서 집배원의 죽음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어머니가 통곡할 것이다. 언제까지 집배원의 죽음이 이어져야 할까? 

우리 사회는 윤 총장 장모 의혹만큼이나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의 건강과 안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시사기획 창'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줬다. 
시사기획 창 가평우체국 집배노조 집배원 사망 공주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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