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의 과거 개인사 논란 상황에서 방송의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MBC 연애 관찰예능 <부러우면 지는거다>(이하 부럽지)에 출연중이던 김유진 PD가 과거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 커플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부럽지>에서 김유진 PD는 결혼을 앞두고 예비남편인 이원일 셰프와 함께 고정출연해왔다.

지난 2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럽지> 연예인 닮은꼴 예비신부 피디는 집단폭행 가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봐도 김유진 PD를 지목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었다.

글쓴이는 2008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김유진 PD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애써 잊고 살았고 이제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이 사람을 TV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얼마나 더 자주 봐야 할지 참을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게시물에 댓글로 역시 김유진 PD에게 학창시절 폭행을 당했다는 또다른 추가 피해자까지 등장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 글의 내용은 온라인과 SNS 상으로 일파만파로 퍼졌고, 김유진 PD는 물론 연인인 이원일 셰프에게까지 불똥이 튀며 누리꾼의 비난이 쏟아졌다.

여론의 질타가 빗발치자 결국 이원일 셰프와 김유진 PD는 개인 SNS에 자필로 쓴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두 사람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현재 동반 출연 중인 <부럽지>에서 자진 하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부럽지> 제작진도 두 사람의 하차를 공식화 하며 다시보기를 비롯한 기존 촬영분 모두 편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김유진의 '학폭 논란'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사과와 하차에도 불구하고 성난 여론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원일셰프와 김유진 PD 모두 사과문에 공통적으로 '사실 여부를 떠나'라는 표현을 썼고 이를 두고 사과에 진정성이 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가해자 시점'에서나 할 수 있는 변명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누리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이러한 민감한 사건일수록 '팩트 체크'가 가장 중요하다. 만일 학폭논란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과할 이유가 없고, 사실이라면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없이 잘못을 깨끗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단순히 방송 하차로 세간의 관심을 잠시 피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학교 폭력 논란의 구체적인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다시 '출연자 검증'에 실패한 방송 제작진도 덩달아 질타를 받고 있다. <부럽지>는 제목처럼 유명 연예인이나 셀럽들의 알콩달콩한 '실제 연애'를 보여주며 부러움을 자아내는 것을 프로그램의 매력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출연자가 다름아닌 학폭 논란 가해자라는 의혹에 휩싸였다는 것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에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MBC는 불과 얼마 전 부동산 예능 <구해줘 홈즈>에 의뢰인으로 출연했던 일반인 남녀 커플이 '불륜관계'라는 폭로가 온라인에서 제기되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구해줘 홈즈> 제작진은 결국 해당 커플의 출연 분량을 편집하고, 문제가 된 예고편 영상도 삭제했다. 제작진은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 컨셉 특성상 의뢰인이 찾는 매물은 다각도로 검증하지만, 비연예인인 출연자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부럽지>에 출연했던 이원일-김유진 커플도 비연예인 출연자이지만, 문제는 김유진 PD의 경우, MBC 예능프로그램 연출에도 관여했던 '방송인'이라는 사실이다. 김유진 PD는 MBC 인기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 스텝으로 참여했고 기획 회의나 방송을 편집하는 모습 등이 <부럽지>에서 그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MBC 측은 이에 대하여 김유진 PD가 사내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이고, 지난 1월 결혼준비로 <전참시>를 떠난 상태라며 뒤늦게 선을 그었지만, 출연자 검증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오늘날에는 방송의 검증만 피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SNS와 모바일, 유튜브 등이 일상화되고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가 난립하는 시대에, 개인의 과거사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질 수 없다. 

채널A 연예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3>은 첫 방송을 앞둔 시점부터 출연자들의 과거 학교폭력, 왕따, 갑질 등에 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며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출연자 검증 문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제작진은 이러한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해명을 내놓으며 방송을 강행했지만 <하트시그널>은 이전 시즌만큼의 화제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 함께 출연했던 개그맨 이승윤의 매니저는 과거 채무 및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며 결국 동반 하차했다. 자연에 은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는 성추행 가해자가 버젓이 출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과거에는 직업 연예인들이 폭로 논란의 주된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자발적으로 방송에 출하거나 유명세를 누리는 비연예인들에게까지도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대중들은 학교폭력, 왕따 등 과거의 행적 자체도 실망스럽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가책을 느끼고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이들이 시간이 흘렀다고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까지 출연하며 유명세를 누리려는 행각에 더욱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인데 정작 가해자의 머릿속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거나'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정도로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일정한 기준과 제한이 있는 법적 처벌에 비해, 한번 노출된 과거행적으로 인한 여론의 낙인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SNS 시대에 과거를 망각해버린 가해자들이 치러야 할 가장 '혹독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부러우면지는거다 출연자학폭논란 일반인출연자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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