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 내내 긴장감이 흘렀지만 끝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UFC 미들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는 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파라다이스의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UFC 248 메인이벤트 미들급 타이틀전에서 도전자 요엘 로메로를 전원일치 판정으로 꺾고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서로를 극도로 경계한 아데산야와 로메로는 5라운드 25분이 흐르는 동안 제대로 된 격돌 없이 시간을 보냈고 결국 경기는 관중들의 야유 속에 챔피언 아데산야의 찜찜한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UFC248을 현장에서 관람한 관중들은 결코 티켓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메인이벤트로 열린 여성 스트로급 타이틀전에서 나온 UFC 여성부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엄청난 난타전 끝에 도전자 요안나 예드제칙을 2-1 판정으로 꺾고 1차 방어에 성공한 중국인 챔피언 장웨일리는 이제 스트로급의 확실한 1인자로 인정 받게 됐다.
 
 장웨일리는 전 챔피언 예드제칙과의 치열한 난타전 끝에 스트로급 타이틀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장웨일리는 전 챔피언 예드제칙과의 치열한 난타전 끝에 스트로급 타이틀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 UFC 트위터 화면 캡처

 
예드제칙-나마유나스-안드리지-장웨일리로 이어진 스트로급 챔피언 계보

지난 2012년 신설한 UFC 여성 밴텀급은 '암바 여제' 론다 로우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UFC에서는 2013년 여성 스트로급의 신설을 발표하고 여성 격투 단체 인빅타 FC로부터 스트로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리고 UFC 스트로급은 2014년 TUF의 20번째 시즌을 통해 스트로급의 초대 챔피언을 가리는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여기서 카를라 에스파르자는 로즈 나마유나스를 서브미션으로 꺾고 UFC 스트로급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토너먼트 16강부터 4전 전승으로 챔피언에 오른 에스파르자의 시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1차 방어전에서 4개 단체의 무예타이 및 킥복싱 챔피언에 올랐던 '타격의 달인' 예드제칙을 만났기 때문이다. 예드제칙은 차원이 다른 타격으로 에스파르자를 요리했고 충격을 받은 에스파르자는 2라운드를 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밴텀급의 로우지가 유도로 체급을 제패했다면 예드제칙은 뛰어난 타격으로 스트로급을 가볍게 정복했다.

스트로급에서 예드제칙의 독재시대는 약 1000일 가까이 이어졌다. 제시카 페네,발레리 르투르노, 클라우디아 가델라, 카롤리나 코발키에비츠, 제시카 안드라데 등 스트로급의 쟁쟁한 선수들이 예드제칙에게 도전장을 던졌지만 아무도 예드제칙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영원할 거 같았던 예드제칙의 시대는 6차 방어전에서 꾸준히 성장한 나마유나스를 만나 허무하게 저물고 말았다.

예드제칙은 1라운드 3분3초 만에 나마유나스의 펀치에 맞고 KO로 무너지며 965일 동안 지켰던 스트로급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예드제칙은 2018년 4월에 열린 재대결에서도 나마유나스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설욕에 실패했다. 하지만 나마유나스 역시 작년 5월 브라질에서 열린 안드라데와의 2차 방어전에서 2라운드 중반 프로레슬링의 파일 드라이버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슬램 공격을 당하면서 그대로 실신 KO패를 당했다.

스트로급의 양강이었던 예드제칙과 나마유나스가 차례로 무너지면서 새 챔피언 안드라데는 적당한 상대가 없었다. 스트로급 랭킹 6위 장웨일리가 안드라데의 1차 방어전 상대로 낙점된 이유다. 하지만 장웨일리는 경기 시작 42초 만에 니킥과 엘보우, 펀치 연타를 묶어 안드라데를 무너트리고 스트로급 5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동아시아의 그 어떤 선수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UFC 챔피언'이라는 높은 산을 장웨일리가 역대 최초로 오른 것이다.

미국 관중들 기립 박수 이끌어낸 중국인 챔피언의 명승부

스트로급 타이틀을 따낼 때까지는 격투팬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장웨일리는 22전 21승 1패 17피니시(10KO, 7서브미션)라는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선수다. 유일한 패배는 2013년 프로 데뷔전에서 당한 것이다. 장웨일리는 데뷔전 패 후 2017년 6월 판정승을 따낼 때까지 무려 11경기 연속 피니시 승리(7KO, 4서브미션)를 따내기도 했다. 타격도 뛰어나지만 주짓수 퍼플벨트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서브미션에도 능하다.

격투기 데뷔 후 중국, 일본, 태국 등에서 활약했던 장웨일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장웨일리는 지난 2017년7월 TOP FC(현 TFC) 15에서 '뮬란'서예담과 TFC 스트로급 타이틀틀을 걸고 격돌한 적이 있다. 당시 장웨일리는 1라운드 중반 서예담의 암바에 걸려 고전했지만 힘으로 버텨낸 후 타격에서 우위를 보이며 서예담을 KO로 꺾고 TFC 스트로급 챔피언에 등극했다(장웨일리는 2018년 5월 UFC와 계약하면서 타이틀을 반납했다). 

장웨일리는 UFC 진출 후에도 다니엘 테일러, 제시카 아귈라, 테시아 토레스를 차례로 꺾고 3연승을 내달리며 스트로급 랭킹 6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작년 8월 중국 선전에서 열린 UFN 157 대회의 메인이벤터에 낙점돼 안드라데와 스트로급 타이틀전을 벌였다. 물론 당시만 해도 중국대회에서 중국 파이터를 밀어주기 위한 구색 맞추기용 타이틀전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장웨일리는 42초 KO승으로 챔피언에 등극하며 격투 팬들을 놀라게 했다.

8일 열린 예드제칙과의 1차 방어전에서도 장웨일리는 언더독(약자)이었다. 하지만 장웨일리는 킥복싱 4개 단체 챔피언 출신의 예드제칙을 상대로 전혀 위축되지 않고 5라운드 25분 내내 정면승부를 펼치며 그야말로 '혈전'을 벌였다. 그 결과 장웨일리는 타격 종합에서 169-187로 예드제칙에게 근소하게 뒤졌지만 머리와 얼굴 쪽 타격에서 104-75로 앞섰다. 결국 장웨일리는 예드제칙을 2-1 판정으로 꺾고 극적으로 챔피언 벨트를 지킬 수 있었다.

사실 UFC 여성 디비전 경기는 초창기의 론다 로우지나 크리스 사이보그, 아만다 누네즈 같은 절대 강자가 있으면 상대가 지레 겁을 먹고 소극적인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장웨일리와 예드제칙의 혈전은 여성부에서도 그 어떤 남자부 경기 못지 않은 명승부가 나올 수 있음을 증명했다.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T-모바일 아레나를 메운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두 선수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낸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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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48 여성 스트로급 타이틀전 장웨일리 요안나 예드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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