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 포스터

<약장수>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인터넷 문화는 그들만의 놀이가 아닌 새로운 대세를 만들어 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배우 김응수와 김영철이다. 영화 <타짜>와 드라마 <야인시대>로 최근 화제가 된 두 중년 배우는 인터넷 '놀이 문화'의 일환으로 떠올랐다가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현재는 CF계가 주목하는 배우들로 자리 잡았다. 최근 이런 놀이문화로 떠오른 작품이 있다. 2015년 개봉 당시 4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으지 못했던 영화 <약장수>다.
 
이 작품에 대해, 결말 부분에서 일범(김인권)이 마을회관에서 잔혹하게 노인들을 죽인다는 말이 유머처럼 떠돈다(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이유는 분홍가발을 쓰고 새하얀 분칠을 한 포스터 속 일범의 얼굴이 <조커>의 아서/조커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조커처럼 이 영화 역시 그런 학살을 보여준다는 농담(?)과 '코리안 조커'라는 별칭은 인터넷 문화 특유의 유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코리안 조커'라는 별칭을 얻은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울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쉽게 해결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길 꺼려한다. 이 영화는 그런 두 가지 대상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는 자식들에게 소외받는 노인들이고 두 번째는 그런 노인들을 이용해 먹는 약장수들이다.
  
 <약장수> 스틸컷

<약장수> 스틸컷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대리운전, 일용직 등을 전전하는 일범은 아픈 딸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신용불량자라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다. 진상 고객 때문에 대리운전에서도 해고당한 일범은 친구에 의해 어머니들에게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떴다방' 즉, 약장사 일을 제안 받는다. 아무리 딸이 아파도 남에게 사기를 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범이지만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결정한다.
 
점장 철중은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는 말을 한다. 이곳에 오는 어머니들은 무료로 주는 선물과 재미있게 놀아주는 철중을 비롯한 '떴다방' 식구들 때문에 찾는 것도 있지만, 가정에서 소외되어 외로움을 느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키워준 자식들은 부모를 찾아오지 않는다. 어릴 적 놀아줬던 부모의 은혜를 잊은 채 생활비를 주며 혼자 살아줬으면 한다. 그래서 철중은 최선을 다해 어머니들과 놀아주라 말한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던 일범은 거액의 보너스를 철중에게 받자 최선을 다해 어머니들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그런 일범 앞에 검사인 아들을 두었지만 홀로 외롭게 지내는 옥님이 회원으로 찾아온다. 옥님을 극진히 모시며 고객과 손님이 아닌 아들과 어머니로 우정을 쌓아가는 두 사람. 하지만 일범은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직원들은 사기를 쳐서 물건을 파는데, 만약 손님이 그 물건을 반품하면 그 책임은 물건을 판 직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약장수> 스틸컷

<약장수> 스틸컷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다른 어머니가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월급에서 값을 떼이게 생긴 일범은 옥님에게 애원한 끝에 반강제로 물건을 판다. 하지만 옥님에게는 그 물건 값을 지불할 돈이 없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니고 일범은 아이가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돈이 필요해지지만 철중은 물건 값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월급을 줄 수 없다 말한다. 이에 인범은 철중이 그런 것처럼 잔혹하게 옥님을 몰아칠 생각을 한다.
 
작품 속 일범은 <조커>의 아서 플렉과 같은 감정 변화를 겪는다. 두 사람 다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꿈이 있다. 아서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고 일범은 어머니들을 즐겁게 해드리면서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고담시 때문에 아서의 꿈이 무너진 것처럼 일범의 꿈 역시 어머니들에게 물건을 사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떴다방'의 시스템 때문에 무너진다.
 
사람은 누구나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분배는 공정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으로 내몬다. 누군가는 나쁜 방식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가 그 대상이 된다. 이 영화에서는 바로 소외된 노인들이다. 노인 빈곤율이 압도적인 세계 1위에 달하는 현실에서, 노인들은 결국 또 한 번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할 문제를 겪게 된다.
  
 <약장수> 스틸컷

<약장수> 스틸컷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노인 소외와 '떴다방'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다. 자식들은 "'떴다방'에 가지말라"고 말하지만, 노인들이 '떴다방'에 가게 되는 근원적인 문제인 고독과 단절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국 "속는 노인이 바보"라는 말로 그들을 매도할 뿐이다. 괴롭힘 당하는 고등학생을 구할 만큼 정의감에 불탔던 일범은 이런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나서지 못한다.
 
그는 철중에게 자신들의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도, 그만두겠다는 말도 내뱉지 못한다. '코리안 조커'에게는 고담 시를 뒤엎는 조커의 힘과 같은 광기가 없다. 당장 월급을 받지 못하면 위태로운 가족과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그는 변함없이 슬픈 얼굴 위에 웃음이란 가면을 쓰고 '떴다방'에 나선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약장수>는 <조커>같은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슬픔을 품고 살아가지만 웃음을 팔아야만 되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인범이 파는 약은 행복과 웃음이다. 어머님들은 제품이 아닌 그것을 사기 위해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한다. 감정조차 돈을 내야만 받을 수 있는 영화 속 모습은 그 어떤 작품 속의 폭력과 살인보다 잔인한 현실을 그려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약장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