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 이야기> 포스터

영화 <집 이야기>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집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안내하는 '문'이다."
 
박제범 감독의 '집'에 대한 정의는 영화 <집 이야기>가 지닌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견한 한국 영화로 주목받는 이 작품은 집을 구하러 다니는 딸과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옛집을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오래 묵은 갈등과 따뜻한 정을 담아낸 영화이다.
 
기자인 은서(이유영 분)는 새로 살 집을 보러 다니지만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 계약을 망설인다. 원래 살던 집이 계약이 만료된 은서는 한동안 아버지 진철(강신일 분)의 집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오래 전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는 예전에 살던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오래된 단독주택에 여전히 살고 있다. 열쇠공인 진철은 옛집으로 돌아온 딸에게 무뚝뚝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딸을 위해 새로 수건을 사고 복숭아 김치를 담는 진철의 모습은 딱딱하고 말수가 적은 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딸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조금만 갈등상황이 발생하면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에 이내 은서는 실망을 느낀다. 이런 딸과 아버지의 갈등은 집과 열쇠라는 두 가지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표현된다.
  
 <집 이야기> 스틸컷

<집 이야기>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안정적인 직업을 지닌 은서에게 집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그녀가 선뜻 계약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서가 원하는 집은 오래 머물 수 있는, 그래서 추억이란 걸 그 공간에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추억을 담을 수 있는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집값과 직장 문제 또는 자식들의 교육 문제로 매번 주인이 바뀌는 공간이 아파트이다.
 
반면 아버지가 지내는 단독주택에는 추억이 서려 있다. 옛 물건이 그대로 놓여있는 은서의 방은 이를 의미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 존재를 의미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건 시간의 흐름과 멀어진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진철은 열쇠를 만들고 문을 따는 데는 최고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현대식 도어락은 다루지 못한다. 그가 도어락을 열지 못하는 모습은 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집 이야기> 스틸컷

<집 이야기>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진철은 항상 그 자리에만 머무르는 인물이기에 성장하는 딸들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남의 집 문은 잘 열어주는 그이지만 막상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식과 아내의 마음의 문은 열지 못했다. 집과 열쇠는 은서와 진철의 갈등을 상징한다. 은서는 진철의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진철이 은서나 다른 가족들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고 집 앞을 서성인다.
 
집이 있지만 가족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아버지와 옛 추억과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있지만 그 추억을 간직할 집이 없는 은서의 모습은 슬픔과 함께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애틋한 감정을 준다. 특히 진철 역의 강신일은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가끔은 별 거 아닌 일로 고집을 부리고 소리를 질러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초라한 외형과 나약한 내면을 지닌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현실 부녀의 모습은 끈끈한 정과 예기치 못한 웃음으로 가슴 따뜻한 공감을 자아낸다. 이 공감은 부녀의 모습과 함께 집이 지닌 상징성에서 비롯된다. 현대사회에서 부동산은 중요한 문제이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을 만큼 사회적인 화두다. 누구나 집을 지니고 있지만 몸의 안락함과 마음의 평안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영화에서의 집은 그 자체만으로 고난과 역경, 안락과 평화의 소재가 되곤 한다. '내 집 마련'이 사회적인 목표가 되어버린 방향성을 짚는 영화들도 많았다. <소공녀>, <우리 집> 등 집을 소재로 한 다양성영화가 호평을 들은 것처럼 <집 이야기>는 또 다른 집에 관한 이야기로 깊은 감흥을 준다. 집이 지닌 추억과 애정을 부녀간의 관계로 풀어내며 마음 한 구석을 녹이는 드라마를 선사한다.
 
<집 이야기>는 수도 없이 이사를 반복하는 현대인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애정과 이해의 상실을 발견한다. 낡은 진철의 집에서 오래 묵은 서로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 두 부녀의 모습은 치유와 회복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집이란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안내하는 문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진정한 '집'으로 들어가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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