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최근 드라마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25일 SBS 월화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4.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의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뽀블리' 박보영을 전면에 내세웠던 tvN도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영혼을 소생시키는 구슬을 통해 부활한 두 남녀가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쫓는 반전 비주얼 판타지 드라마 <어비스>는 최종회 시청률 2.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로 막을 내렸다.

고세연 역의 박보영과 오영철 역의 이성재를 제외하면, 캐릭터들이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답답한 전개와 허무한 결말 역시 많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그럼에도 tvN은 <어비스>의 아쉬운 성적을 딛고 새 드라마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1일 첫 방송되는 새 월화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는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인해 환경부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석 역의 지진희, 무소속 국회의원 오영석 역의 이준혁, 전직 비서실장 한주승 역의 허준호가 중심이 될 <지정생존자>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인권변호사이자 박무진의 아내 최강연을 연기하는 배우 김규리가 그 주인공이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표현 때문에...
 
 전국230만 관객을 모은 <미인도>를 끝으로 김규리는 오랜 기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국230만 관객을 모은 <미인도>를 끝으로 김규리는 오랜 기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 CJ엔터테인먼트


2009년까지 김민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김규리는 1997년 패션잡지 모델로 데뷔했다. 이어 그는 1999년 KBS 2TV 드라마 <학교1>에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여학생 박나리 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1999년 영화 <가족의 탄생>을 만든 김태용 감독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만든 민규동 감독이 공동연출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주인공 민아를 연기하며 백상예술대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김규리는 2002년 김현주, 김지호, 소지섭, 한재석 등이 출연한 SBS 주말드라마 <유리구두>에서 우승희를 연기해 SBS 연기대상 조연상을 받았다. 같은 해 가을에는 MBC 월화드라마 <현정아 사랑해>에 출연해 9살 연상의 감우성과 사랑스런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싱했다. 이로써 김규리는 연기자 데뷔 4년 만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신인상을 수상하며 전도유망한 20대 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김규리가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있었던 '청산가리 사건'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극에 달했을 때, 김규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채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논란은 일파만파 퍼졌고, 일각에서는 '청산가리'라는 표현을 강조해 김규리를 맹비난했다.

그해 11월에는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단행한 영화 <미인도>를 통해 전국 230만 관객을 모으며 자신의 첫 영화 흥행작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김규리는 <미인도>를 끝으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솔직 당당한 인권변호사 겸 대통령 권한대행 배우자 연기
 
 김규리는 지난 2017년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김규리는 지난 2017년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의 인터뷰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 ⓒ SBS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청산가리' 발언 논란 이후에도 '제주해군기지' 건설 당시 반대 의견을 밝히는 등 김규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이명박 정권이 만든 82명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문성근, 권해효, 문소리 등 여러 배우들과 함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 TF팀은 SBS에 압력을 넣어 김규리를 SBS 드라마에 캐스팅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실제로 김규리는 2003년 <선녀와 나무꾼> 이후 2016년 <우리 갑순이>에 출연할 때까지 무려 13년 동안 SBS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했다. 2009년 개명 후에도 이렇다 할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던 김규리는 2011년 MBC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즌1 준우승을 계기로 시즌2, 3에서 MC를 맡기도 했던 김규리는 2014년 MBC 드라마 <앙큼한 돌싱녀>와 영화 <또 하나의 약속>, 2016년 <우리 갑순이>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늘려 나갔다. 지난 2월부터는 tbs의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방송되는 신설 프로그램 <김규리의 퐁당퐁당>의 DJ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김규리는 < 60일, 지정생존자 >를 통해 인권변호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배우자로 돌아온다.

김규리는 <지정생존자>에서 승리를 위해 변칙적인 수단도 거침 없이 사용하는 솔직하고 당당한 인권변호사 최강연을 연기한다. 남편 박무진(지진희 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배우자와 변호사, 그리고 사춘기 아들의 엄마 역할까지 소화해야 하는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다. 김규리가 입체적인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주목된다.

김규리가 시끄럽고 어수선하던 그 시절, 다른 연예인들처럼 침묵했다면 더욱 편안하고 화려한 배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김규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했고 그 대가로 10년 가까이 힘든 시절을 보냈다. 김규리가 <지정생존자>를 선택한 것은 단지 연기에 대한 목마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김규리는 최강연의 거침 없고 당찬 면모에서 예전의 자신과 닮은 점을 발견했던 게 아닐까.
 
 tvN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tvN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 tvN

김규리 60일,지정생존자 광우병 파동 청산가리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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