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 드라마가 과연 재미있을까?"

지난 27일 새로 방영을 시작한 MBC 월화 드라마 <더 뱅커> 1회의 첫 장면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더 뱅커>의 첫 장면은 대한은행 공주 지점장인 노대호(김상중 분)가 지역 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총으로 멧돼지를 쏴서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멧돼지를 잡은 후 노대호는  지역 주민들에게 대한은행 공주 지점으로 와서 계좌를 하나씩 개설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사실 <더 뱅커>를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수많은 돈이 오가는 은행이라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골 논밭에서 멧돼지를 잡아가며 계좌 개설을 부탁하는 은행 지점장의 모습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뱅커>를 나도 모르게 끝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드라마 속 노대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가 버린 것이다. 

노대호는 부하 직원 서보걸(안우연 분)에게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하는 재미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분명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뻔한 이야기를 하는 도덕적 인물이라는 소리이니 드라마 주인공으로서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평면적 캐릭터라는 이야기다.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 MBC

 
분명 <더 뱅커> 1회를 끝까지 다 본 것은 주인공 노대호 때문인데 정작 그 주인공은 쉽게 매력을 느끼기 힘든 캐릭터라니, 무언가 이상했다. 주인공 매력에 빠지지 않은 상태로 드라마를 끝까지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고민 끝에 심지어는 가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동물의 일상을 별 생각 없이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끝까지 다 보게 되는 것처럼 노대호의 삶을 끝까지 바라본 것도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 

거기에 대한 힌트는 <더 뱅커> 3~4회에서 노대호가 신임 임원 축하 만찬장에서 이런 내용의 말을 할 때 찾을 수 있었다. 

"노대호 신임 감사입니다. 저는 폐점된 공주 지점장이었습니다. 공주 지점은 지역 분들이 사랑방 역할을 했고 지역 상인들에게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기도 했지요. 그런 은행이 사라진 겁니다. 폐점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은행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시는 여러 임원분들을 보고 과연 누가 은행이 어렵다고 생각을 할까요? 이런 비싼 와인을 드시는 여러 임원 분들은 지금 은행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들을 하고 계십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노대호라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인지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노대호가 회사 임원인 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묘하게도 그가 지점장으로 있던 공주 지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대호가 감사가 되기 전 대한은행은 공주 지점뿐만 아니라 실적이 좋지 않은 지점들 20%를 통폐합하는 조치를 취한다. 

노대호는 은행의 지점들 20%를 통폐합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만큼 대한은행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일 텐데 임원들은 그런 상황에서 비싼 밥을 먹는 것이 말이 되냐는 비판을 한 셈이었다. 만찬장의 모습을 보면서 별 생각이 없던 나도 노대호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번쩍 하는 느낌이 들었다.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 MBC

 
노대호와 달리 나는 고위 임원들이 은행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데도 비싼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직이나 집단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 조직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은 더욱더 책임감을 느끼고 솔선수범하여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노대호의 말처럼 비싼 술을 기울이며 신임 임원들을 축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제야 내가 노대호라는 인물에게 끌린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 지점 폐쇄로 자신의 처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가 고위 임원이 되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 그런데 노대호는 신이 나야 할 그 순간에도 은행 통폐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더 뱅커> 1~2회에도 노대호가 주변 사람들을 돕는 모습이 나온다. 앞서 이야기했든 동네 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멧돼지를 잡아주고, 은행에서 나온 아줌마의 가방을 훔쳐간 날치기 범을 잡아준다. 어디 그 뿐인가. 동네 주민들이 자살을 시도할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자 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해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MBC 드라마 <더 뱅커>의 한 장면 ⓒ MBC

 
그러나 <더 뱅커>에 나오는 노대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 그런 행동들이 모두 은행 영업을 위해 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임원 축하 만찬장에서 노대호가 한 말을 들으며 노대호가 한 일들이 오로지 은행 영업만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진심으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한 일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멧돼지를 잡고 날치기 범을 잡는 일은 드라마에서야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랬기에 단순히 은행 영업만을 위한 것이라면 쉽게 나설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 영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을 이해하기에, 그런 사람들을 위할 줄 알기에 나서서 그런 일들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 뱅커>를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4회까지 방영된 <더 뱅커>의 노대호가 사람을 먼저 위할 줄 아는 교과서적인 삶의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더 뱅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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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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