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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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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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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군집 생활은 정치를 동반하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 질문이 정치에 관한 질문이라는 것을 나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깨달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은 행복 추구의 과정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결국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이 평범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유시민은 네 개의 답을 내놓는다.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solidarity).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해야 한다. 따라서 일에서 보람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하기 어렵다.

놀이가 없다면 행복할 수 없다. 내 친구와 같이 일이 너무 즐겁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에게는 일이 곧 놀이라서 그렇다. 저자 유시민이 말하듯, 크라잉넛은 놀이를 직업으로 삼았고, 그렇게 해서 행복에 성큼 다가섰다. 행복으로 가는 열쇠 네 개 중에 두 개가 동시에 해결되니 당연한 이야기다.

사랑이란 본능이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자기 혼자만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미 반쪽짜리 행복이다. 많은 신경학자들이 밝혀냈듯, 인간의 뇌는 사회성이라는 기능에 대단히 큰 몫을 할당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유대 없이 행복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연대를 사랑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유시민은 연대를 별개로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오랫동안 생존 경쟁을 벌인 유전자는 가장 최근에 연대와 협력이라는 전략을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유전자를 일정 부분 공유하는 혈연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타인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전략은, 적어도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에 거스르는 행위다. 유시민은 이것을 진보주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이라고 부른다.

진보주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이 더 있다. 첫째는 체제론적 접근법이다. 간단히 말해 시장경제는 역사가 척결할 대상이고, 사회주의로 이동하는 것이 진보라는 생각이다. 유시민은 이에 대해 사회주의가 올바른 대안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것은, 스탈린과 고르바초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사상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철학적 접근법이다. 이에 따르면 진보는 불합리한 제도와 물질적 결핍,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비정규직 철폐도 진보지만 새로운 과학기술 연구도 진보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포괄하는 대상이 너무 넓은 나머지 현실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한다. 내 생각에도 진보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19세기에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진보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냥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할 뿐, 진보에 대한 세 가지 관점에 대해서 서열을 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짝 소개하고 지나가는 다른 관점과는 달리, 생물학적 접근법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을 채운다. 추천이라는 것이 뭐 별다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미식가에게 맛있게 먹은 음식이 무어냐고 물어봤을 때 그가 어떤 음식을 말한다면, 그것은 단지 사실을 말하는 문장을 벗어난다.

이타성의 탄생

이타주의는 생물 집단의 선택일까, 유전자의 선택일까? 진화과학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꽤 오랫동안 설전을 벌여 왔는데, 결국 유전자 진영이 승리를 거두었다. 생물 개체에게 손해가 되는 행동이 어떤 경우에 유전자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해밀턴의 법칙은 깔끔하게 설명한다. 생물체는 유전자가 프로그램한 명령에 따라, 이런 행동을 받아들인다.

유전자 진영의 진화과학자 홀데인(Haldane)은 "나는 두 명의 형제나 8명의 사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라는 유명한 농담을 남겼다. 형제는 나와 50%의 유전자 풀을 공유한다. 따라서 두 명 이상의 형제를 살리는 대가로 내가 죽는다면, 유전자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이것이 겉으로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이기적 유전자가 허용하는 기제다.

유전적 근연도, 즉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이타적 동기는 반복 게임에 대처하는 생존 전략과 관련 있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해서 굶주리는 개체에게 피를 나눠주는 습성이 있다. 배부른 상태에서 먹이를 조금 양보하는 것은 사소한 손해지만, 나중에 굶어 죽게 된 상태에서 먹이를 조금 얻어먹는 것은 효용이 대단히 크다. 따라서 사냥에 성공한 흡혈박쥐는 나중을 생각해 피를 나눈다.

그렇다면 '먹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 당연히 나온다. 그러나 반복되는 게임에서 '받은 대로 돌려주는(tit for tat)' 전략이 최선의 전략임을 액슬로드가 이미 증명한 바 있다. 배반자는 장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한편, 유시민은 이타적 행위라는 독특한 현상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위가 진화의 결과로 발생하는 원리는 이렇다. 생물이 처하는 환경은 늘 바뀐다. 어제 성공한 전략이 오늘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시도,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는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는 인간에게 '일반 지능'을 선물했다. 즉,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틀이 아닌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 진보적인 것이고, 일반 지능이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위를 유도한다면, 일반 지능과 진보성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책에 소개된 '사바나-IQ 상호작용 가설'에 따르면, 지능이 낮은 개인은 지능이 높은 개인보다 조상들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진화적으로 새로운 존재와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실증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IQ가 높은 청소년일수록 진보 성향이 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이 강한 사람은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에 비해 청소년기 IQ가 평균 11점 높았다고 한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능의 영향은, 성이나 인종보다도 두 배나 강력했다.

유시민은 말한다. 이타적 본성과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자신은 '연대'라고 부른다고. 그리고 이 연대야말로, 일, 놀이, 사랑과 함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공감은 본능이다

아직도 제대로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처음 들었을 때부터 '역지사지'라는 말을 정말 좋아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는 것, 그것은 공감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공감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상상력이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이 책은 뜬금없어 보이는 곳에서 통계를 인용한다. 2011년 한 해 동안, 약 26만 명이 사망했다. 열 중 일곱은 병원이나 요양 병원에서, 두 명은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았고, 한 명은 집도 병원도 아닌 곳에서 숨을 거뒀다. 저자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픈 사연이 많은 죽음일 거라고.

직업 만족도를 조사한 통계도 나온다. 대표적 직업 760개를 주관적 만족도에 따라 순위 매긴 것이다. 초등학교 교장이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성우, 상담전문가, 신부 등이 이었다. 순위표의 바닥에는 목재 가공, 플라스틱 제품 조립, 노점, 단열 시공, 서빙, 청소 등이 자리했다.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하는 사람에게는 고된 일이라고 유시민은 덧붙인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통계에 한마디를 덧붙이는 유시민의 글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사랑과 연대가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대의 출발점은 공감이다. 공감이 없는 사랑이라면 조건이 맞는 두 사람이 그저 이기적으로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익집단이 사랑으로 결합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이기적 결합일 뿐이다.

사랑이든 연대든, 표현이 뭐가 중요한가 싶다. 공감하고, 그렇게 느낀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고 연대다. 그런 공감이 없다면 거울 뉴런을 포함한 사회적 뇌가 대뇌피질을 뒤덮고 있을 이유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라면, 공감하자. 진보든 보수든, 이름표는 나중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생각의길(2013)


태그:#잡식성 책사냥꾼,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 #이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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