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32개국의 뜨거웠던 조별리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시작된 16강 토너먼트는 단판 승부의 묘미를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여느 월드컵과 다를 바 없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거리는 '세대교체'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6강에서 탈락하며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 도전기를 마무리해 지난 10년 간의 활약을 끝마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반면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브라질의 네이마르,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등의 젊은 선수들은 자신의 가치를 월드컵에서 증명하며 '메날두' 다음 세대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있다.

 2018년 6월 30일 러시아 소치 피슈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 16강 경기에 출전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18년 6월 30일 러시아 소치 피슈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 16강 경기에 출전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연합뉴스/EPA


그러나 그 누구도 이번 월드컵에서 이 사나이보다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 이는 없다. 이번 월드컵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전술의 여파는 러시아 월드컵 중심부를 관통한다. 메시가 눈물을 흘렸고 마라도나가 여러 가지 기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자국 팬들은 폭행 구설수에 비난을 받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 남자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고 있다. 이번 월드컵의 실질적인 주인공.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래 ATM)의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의 이야기다.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이 지배하는 월드컵

월드컵에 참여하지 않은 시메오네 감독을 두고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이상한 말장난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펼쳐진 경기들을 꾸준히 지켜본 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2011년 말미 무너지는 ATM의 감독으로 새롭게 부임한 시메오네는 클럽의 유래없는 성공을 단시간에 만들어냈다. 부임 첫 시즌에 팀의 성공적인 리그 잔류와 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이끌어 낸 시메오네는 이듬해에는 지역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아래 레알)를 꺾고 스페인 국왕컵을 들어 올렸다. 이어지는 시즌에서는 스페인의 거함 FC 바르셀로나(아래 바르사)와 레알을 모조리 물리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40년 만에 ATM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도 일궈냈다.

시메오네의 무기는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일(一)자 형태로 라인을 구축하는 4-4-2 포메이션이었다. 과거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대유행했다가 점차 자리를 잃었던 4-4-2 포메이션은 시메오네를 만나 부활했다. 시메오네가 창조한 현대적인 4-4-2 포메이션의 주요 골자는 단단한 수비 이후에 날카로운 한 방으로 경기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선수비-후역습 전략은 약팀의 오래된 전략이지만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은 이전과 '디테일'이 달랐다. 일단 시메오네 감독은 두 줄 수비를 넘어 최전방에 배치된 두 명의 공격수에게도 수비적인 임무를 부여했다. 공격수까지 수비에 가담하는 '세 줄 수비'의 촘촘함은 정밀한 축구의 선두주자 바르사도 뚫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은 공격력도 탁월했다. 과거 4-4-2 포메이션에서 공격은 빠른 측면 미드필더와 빅&스몰 공격수의 압도적인 개인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공격진의 개인 기량과 롱패스에 의존했기에 기복이 컸다.

시메오네의 공격 방식은 달랐다. 측면 미드필더에 아르다 투란과 코케와 같은 중앙 지향적인 미드필더를 기용해 풀백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도모했다. 후방에서 나오는 목적없는 긴 패스보다는 측면에서의 빠르고 계획적인 짧은 패스로 상대의 수비 라인을 허물었다. 다득점은 쉽지 않았지만 확률 높은 공격 패턴을 가미한 결과 한 경기에 1~2골을 꾸준히 넣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한 다수의 국가가 시메오네가 창조한 4-4-2 포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팀이 우루과이다. 현재 8강까지 도달한 우루과이는 시메오네의 ATM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하고 있다.

 우루과이의 에딘 카바니가 6월 25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예선전, 개최국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

우루과이의 에딘 카바니가 6월 25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A조 예선전, 개최국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하고 기뻐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EPA


일단 우루과이는 ATM과 비슷하게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수비시에는 일자 형태로 세 줄 수비 라인을 형성한다. 마침 우루과이는 시메오네의 역작인 디에고 고딘-호세 히메네스 중앙 수비수 조합을 보유하고 있다. 최전방 투톱 에딘손 카바니와 루이스 수아레스까지 수비에 성실히 가담하는 우루과이는 이번 월드컵 4경기에서 단 1실점의 짠물 수비를 자랑한다.

역습 형태도 매우 유사하다. ATM보다는 롱패스 비중이 높지만 공간이 생기면 측면에서 짧은 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찾는다. 측면에서 발생한 약간의 틈을 파고들어 패널티 박스 안에서 위력적인 투톱이 공격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ATM의 공격 패턴과 쏙 닮았다. 심지어 A조 조별리그 1차전 이집트와 경기에서처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세트피스 한 방으로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도 ATM과 비슷하다.

스위스를 꺾고 16년 만에 8강행 고지를 밟은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노골적인 4-4-2 포메이션이다. 공격수 마르쿠스 베리와 올라 토이보넨도 수비에 적극 가담한다. 에밀 포르스베리라는 속도감 있는 미드필더의 존재감은 ATM과 차이가 있지만, 결국 스웨덴도 세트피스와 공격수들의 결정력에 공격을 의존하고 있다.

이외에도 시메오네식 4-4-2 포메이션을 차용한 팀은 무수히 많다. 신태용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도 수비적인 4-4-2 전형으로 독일을 잡는 쾌거를 이뤄냈다. 4-4-2 포메이션으로 유로 2016 챔피언이 되었던 포르투갈도 '동화 같은 팀' 아이슬란드도 시메오네의 덕을 봤다. 4-2-3-1 포메이션의 멕시코와 독일도 수비시에는 4-4-2 포메이션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월드컵에 참가한 대부분의 팀이 수비 상황에서는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수비 강화에 나설 정도였다. '시메오네 월드컵'이라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을 수준이다.

이변을 만드는 4-4-2 포메이션

시메오네식 4-4-2 포메이션의 최대 장점은 역시 선수 개개인 능력의 부족함을 전술로 메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일자 형태의 4-4-2 포메이션은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하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 중 위치가 애매한 선수가 없다. 10명 모두 확고한 자신의 자리가 있다. 포메이션의 복잡성이 없기에 4-4-2 포메이션 아래에서 선수들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명확한 역할을 소화하면 된다.

과거 유행했던 스페인식 4-3-3 포메이션는 다재다능한 최전방 공격수, 천재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안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공수 양면에 능한 풀백 등 특별한 선수들이 다수 필요했다. 그러나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은 자신의 포지션에서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선수와 '에이스' 1~2명 만 있으면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이런 커다란 장점은 ATM과 같은 상대적인 약팀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마찬가지다. 단판 승부인 월드컵에서 심리적으로 불리한 쪽은 언제나 강팀이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강팀과 달리 약팀은 월드컵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성공이다. 무실점이 기본 모토인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을 상대로 강팀은 쫓기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0-0 승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급해지는 쪽은 강팀이다. 그 순간 상대적 약팀에게 한 방을 얻어 맞기까지 하면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월드컵이란 특수성이로 인한 약팀 선수들의 강한 투지와 높은 집중력까지 더해지면 승부를 뒤집는 일은 매우 어려워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4-4-2 포메이션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사하고 있는 우루과이와 스웨덴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공 상황에서 그들의 수비를 뚫는 일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일격을 당한 이후에 그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촘촘한 그물망을 뚫는 거의 유일한 무기는 선수 개인 능력이 중요한 세트피스다. 실제로 우루과이(1실점)와 스웨덴(2실점)이 허용한 3실점 중 지공은 단 한 골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세트피스 상황이었다. 

 7월 3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위스와 스웨덴의 경기. 스위스의 발론 베라미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와 공을 다투고 있다.

7월 3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열린 러시아 월드컵 16강 스위스와 스웨덴의 경기. 스위스의 발론 베라미가 스웨덴의 에밀 포르스베리와 공을 다투고 있다. ⓒ AP/연합뉴스


자연스럽게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첫 월드컵 진출팀인 아이슬란드와 1-1로 비겼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멕시코와 한국에게 지고 스웨덴에게도 매우 고전했다. 우승후보 프랑스도 C조 조별리그 1차전 호주와 경기에서 4-4-2 포메이션를 상대로 승부를 그르칠 뻔 했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객관적인 전력이 뛰어난 팀이 16강에 대부분 올라가고 16강전에서 조별리그 1위 팀이 모두 승리를 거둔 것과 달리, 시메오네식 4-4-2 포메이션 덕에 이번 월드컵에서는 상대적 약체들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심지어 브라질도 수비 상황에서는 4-4-2 전형을 즐겨 사용할 정도로 시메오네의 4-4-2 포메이션은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 어떤 팀이 월드컵의 챔피언이 되든 간에 이번 대회의 진정한 승자는 ATM의 '두목' 시메오네임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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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오네 러시아 월드컵 4-4-2 포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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