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랑


지난해 여름, 대학로를 뜨겁게 달궜던 뮤지컬 <이블데드>가 돌아왔다. 뮤지컬 <이블데드>는 샘 레이미 감독의 동명 영화 시리즈 중 1, 2편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애쉬와 그의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어느 숲 속의 오두막으로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애쉬와 친구들은 수상쩍은 물건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애쉬의 여동생 '셰럴'을 시작으로 애쉬의 연인 '린다', 애쉬의 친구 '스캇', 스캇의 여자친구 '셀리'까지 모두 좀비로 변하거나 죽게 된다.

한편, 고고학자 '애니'는 연인 '에드'와 함께 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연구를 돕기 위해 오두막에 방문한다. 그러나 에드 역시 좀비로 변해버리고, 남은 두 사람은 좀비들을 물리치기 위해 '네크로노미콘'을 외운다. 기존 좀비물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 단순한 설정이 이 극의 내용 전부다.

그렇다. <이블데드>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래서 재미 없는 스토리이다. 하지만 <이블데드>는 'B급 감성'을 전면에 내세워 '뻔함'을 탈피했다. 음악의 멜로디가 진지하고 감성적인데 반해, 터프하고 우스꽝스러운 가사에 관객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린다. 또한 욕설, 선정적인 농담, 신조어가 난무하지만 완급조절에 성공해 위트있게 풀어낸 대사는 단언코 이 극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랑


대망의 '스플레터석'은 <이블데드> 마니아를 대거 양산한 요소로, 무대 가장 앞쪽에 위치해 '좀비들 피의 축제'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좌석이다. 아마도, <이블데드>를 사전 정보 없이 처음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인터미션 때 앞쪽 좌석의 관객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우비를 입고 덧신을 신으며, 만반의 준비를 하는 광경에 놀랄 터. 특히 이번 시즌에서는 작년에 비해 피의 양을 배로 늘리고, 물 조리개로 피를 뿌리는 '물 주는 좀비', 붓을 이용해 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좀비'를 등장시켜 스플레터석 관객들을 피에 흠뻑 적시고 있다.

이렇듯 원작 영화가 호러와 코미디를 균형있게 다루었다면, 과감하게 코미디를 선택한 것은 뮤지컬 <이블데드>의 똑똑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블데드>는 'B급'으로서만 효용 가치가 있는 극일까? 필자는 <이블데드>의 '뻔한' 스토리 속 '뻔하지 않은' 메시지에 주목해보려 한다.

도구적 여성 캐릭터를 빼 버렸다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 때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 가능하더라도 그게 창작물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경우, 스크린을 무대로 옮기면서 시리즈 두 편을 합쳐 165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140분 이내로 압축해야 했으니 위와 같은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블데드>가 고른 선택지는 텍스트 전체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불필요한 장면을 대거 삭제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영화에는 등장하나 뮤지컬에서는 등장하지 않게 된 인물이 여럿 있었다. 다음은 그 불운의 주인공 중 하나 '바비조'의 이야기이다.

고고학자 애니는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 원주민 제이크를 만난다. 애니는 제이크에게 길을 물으려 했지만, 그는 몹시 슬픈듯 숲 속에서 흐느끼고 있다. 제이크는 자신이 슬픈 이유가 "망할 제작사가 '이블데드' 1, 2편을 합치며 여자친구 '바비조'를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원작 영화에서 바비조는 숲을 거닐다가 살아 움직이는 나무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나무에게 봉변을 당하는 역할이 셰럴에게 주어졌고 바비조는 극 중에서 전면 퇴장당하게 됐다.

그러나 뮤지컬 <이블데드>에서 바비조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제이크 역의 배우 '육현욱'과 '원종환'이 1인 2역을 열연하는 장면은 <이블데드>의 코믹함을 담당하고 있는 대목 중 하나다. 극의 흐름상, 바비조는 아예 발언권이 없었더라도 무방하다.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고 복선을 깔아두는 인물은 더더욱 아니며 제이크의 말에 너스레를 떠는 정도가 주어진 임무의 전부였다. 원작 영화에서 바비조는 사실상 '도구적인 여성캐릭터'로 볼 수 있다. 만약 바비조가 전면적으로 삭제 당했더라면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윤곽을 나타내지 못 했을 터. 오죽하면, 그녀가 맡은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무에게 된통 당하는 것'이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캐릭터를 제이크 입을 통해서만 살려둔 것은 긍정적인 각색으로 보인다.

소외되는 인물에 대한 주목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랑


고고학자 애니의 연인 에드는 좀 처럼 대사 한 줄을 말하기가 어렵다. 에드가 입을 떼려는 순간마다 애니는 그의 말을 가로 막거나, 대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는 "자기, 오늘따라 말이 많네?"라고 말한다. 이에 관객들은 황당할 따름. 에드의 목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을 많이 했다니? 그 이유는 에드가 '엑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에드는 오두막에 도착해 좀비로 변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대사 한 줄 말할 수 없던 엑스트라의 운명을 살았던 그는 좀비가 되어서도 '엑스트라 좀비'일 뿐이다. 애쉬는 좀비로 변한 에드에게 전혀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 '엑스트라' 좀비는 '주인공'을 죽일 수 없기 때문. 실제로 극 중 애쉬는 "이 좀비는 안전하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엑스트라 좀비는 얼마 가지 않아 애쉬의 손에 죽는다. 허나, 죽기 전까지 인간일 때 삶과 마찬가지로 한 마디도 하지 못 하고 죽는 것은 아니다. 안전함이 확인된 좀비에게 애쉬, 애니는 발언권을 허한다. 드디어 입을 열 기회를 얻은 에드는 솔로곡 '엑스트라 좀비'에서 "아무도 기억 못하지, 나오자마자 죽어", "또 나와도 모를걸? 왜냐면 대사 한 줄 없어", "시체 쌓여있는 장면에서 내 얼굴은 1초나 보일까"라며 엑스트라의 울분을 노래한다.

또한, <이블데드>는 이를 이용하여 '주인공은 불사신'인 기존 서사의 법칙을 지적한다. 다수의 악당과 맞붙어 싸우는 데도 절대 죽지 않는 주인공에게 의아함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이블데드>는 '좀비임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이기 때문에 안전한 좀비'라는 설정으로 이를 역설한다. 이는 <이블데드>가 '휴머니즘'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목이다.

애써 감추지 않는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포스터 및 공연 사진. 뮤지컬 <이블데드>는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호러 뮤지컬로 'B급 호러'를 표방한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하여 오는 8월 26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 ⓒ ㈜랑


<이블데드>는 대놓고 B급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 구조상 서사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장면과 장면의 인과 관계도 명확하지 않고, 뜬금 없는 행동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블데드>는 애써 이 단점을 포장하려 들지 않음은 물론이요, 감추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는 애쉬와 애니가 입맞춤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좀비들이 대거 살해당하는 가운데, 애쉬와 애니는 눈이 맞는다. 이윽고 키스를 하려던 찰나, 애니는 관객들 머리 위의 물음표를 대변하는듯 "잠깐만, 네 여자친구가 1막에서 죽었고 내 남자친구가 10분 전에 죽었는데, 우리가 여기에서 키스를 하면 개연성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무대가 하나의 세계이기를 표방함에 있어서 원래 '개연성'과 같은 단어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 부조리함에 관객들은 냉소가 아닌 폭소를 터뜨린다. 이는 <이블데드>가 외려, 단점을 수면 위에 올려두고 말함으로써 장점으로 승화시킨, 똑똑한 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누구나 애정하는 좀비가 하나쯤은 있다"

뮤지컬 <이블데드>의 이번 시즌 홍보문구이다. 애정하는 좀비가 없어도 좋다. '좀비 숙성기간'을 거친 매력 넘치는 좀비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 애정하는 좀비를 만들러, Join us!

뮤지컬 이블데드 B급 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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