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법을 잊은 두산이, 흥미로워야 할 1, 2위 맞대결을 시시하게 만들고 있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는 16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홈런3방을 포함해 장단 13안타를 터트리며 8-3으로 승리했다. 지난 3일 KIA 타이거즈전 끝내기 패배(11-12) 후 내리 10연승을 달리고 있는 두산은 지난 2000년에 세웠던 구단 최다 연승 기록과 타이를 만들며 점점 독주 체제를 굳하고 있다(47승20패).

선발 이용찬이 6이닝7피안타2사사구7탈삼진3실점(2자책)으로 시즌 7승째를 따냈고 마무리 함덕주는 1.1이닝 무실점으로 15번째 세이브를 챙겼다. 타선에서는 상위타순에 배치된 5명 중 박건우를 제외한 4명이 멀티히트를 기록한 가운데 2번 지명타자로 출전한 최주환은 결승타와 쐐기 홈런으로 언제나처럼 두산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소속팀이 두산이라 후보일 수밖에 없었던 만년 유망주

최주환은 광주 동성고 시절 청소년 대표에 뽑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최주환은 야속하리만치 실력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학교에 선동열 이후 최고의 재능으로 불리던 '초특급 유망주' 한기주(삼성 라이온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동성고는 총 4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는데 2차 6라운드(전체46순위)로 두산의 선택을 받은 최주환은 동기들 중 가장 낮은 순번으로 지명을 받았다.

최주환은 두산 입단 후 퓨처스리그에서 뛰어난 타격 재능을 뽐내며 꾸준히 성장했다. 내야수로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지만 확실한 자기 포지션이 없던 최주환은 프로 입단 후 4년 동안 1군에서 32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입단 동기 김현수(LG트윈스)나 민병헌(롯데 자이언츠)이 1군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은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결국 최주환은 2009 시즌이 끝나고 병역의무를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입대했다.

최주환은 2010년 상무에서 유격수로 출전하며 타율 .382 151안타 104득점 24홈런 97타점 15도루라는 만화 같은 성적을 기록하며 퓨처스리그를 지배했다. 하지만 2012년 팀에 복귀했을 때 두산에는 2루수 오재원, 유격수 손시헌(NC다이노스), 3루수 이원석(삼성)에 백업으로는 김재호와 허경민까지 있었다. 최주환은 2013년 타율 .297, 2014년 타율 .280 4홈런 31타점, 2015년 타율 .282 5홈런 32타점을 기록하고도 백업신세를 면치 못했다.

최주환은 언젠가부터 '팀을 잘 못 만난 선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다른 팀에 있었다면 얼마든지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재능과 실력을 가졌지만 내야진이 강한 두산에 있어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몇몇 야구팬들은 아까운 세월만 보내고 있는 최주환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두산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산은 팀 내 가장 확실한 대타 요원이자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최주환을 뚝심 있게 지켰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디던 최주환은 프로 12년 차가 된 작년 시즌 드디어 날개를 활짝 펼쳤다. 2루와 3루, 지명타자를 오가며 두산 타선의 빈 곳을 메운 최주환은 129경기에 출전해 타율 .301 7홈런57타점65득점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첫 해에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워낙 3할 타자들이 흔해졌지만 그라운드를 누비기 보다는 벤치를 달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던 최주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타격에 눈 뜬 최주환, 두산의 '득점권 악마'로 거듭나다

작년 시즌 1억 원의 연봉을 받았던 최주환은 생애 첫 풀타임 3할 타율에 대한 보상으로 올해 100%가 인상된 2억 원에 연봉계약을 체결했다. 고액 연봉자가 됐지만 여전히 최주환의 자리는 정해지지 않았다. 두산의 2,3루에는 수비가 탁월한 오재원과 허경민이 있고 유틸리티 플레이어 류지혁이 언제나 호시탐탐 빈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타자 지미 파레디스가 합류하면서 최주환은 여전히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최주환의 입지는 작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다.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면서 경우에 따라 2루와 3루, 때론 1루수까지 소화하고 있는 최주환은 테이블 세터부터 중심타선까지 어떤 타순에 배치돼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실제로 최주환은 두산이 치른 67경기 중 64경기에 출전해 타율 .327 9홈런53타점40득점OPS(출루율+장타율) 0.954를 기록하고 있다. 홈런은 이미 작년에 때렸던 한 시즌 개인 최다 기록(7개)을 훌쩍 넘었다.

최주환의 진짜 가치는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발휘된다. 주자가 없을 때 .269에 불과한 최주환의 타율은 주자가 나가면 .391로 치솟는다. 실제로 최주환은 득점권 타율 .375로 이 부문 전체6위에 올라 있다. 여기에 주력이 썩 빠른 선수가 아님에도 박해민(삼성 라이온즈)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많은 6개의 3루타를 치고 있다. 그만큼 상황 판단이 빠르고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펼친다는 뜻이다.

최주환은 두산이 팀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세운 16일 한화전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1-1로 맞선 5회 세 번째 타석에서 윤규진을 상대로 우전 적시타를 때리며 두산의 리드를 안긴 최주환은 팀이 4-3으로 앞선 7회에도 이태양을 상대로 장외로 넘어가는 큼지막한 솔로 홈런을 터트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두산이 반드시 득점이 필요했던 순간마다 최주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두산은 지난 1일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파레디스를 퇴출시킨 후 현재 외국인 타자 자리가 공석이다. 외국인 타자의 도움 없이도 팀 타율 2위(.298), 팀 득점(409점), 팀 타점(381점)에서 각각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만큼 외국인 타자를 급하게 데려올 필요가 없는 상황. 그리고 두산이 이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에는 필요한 순간 언제나 타점을 올려주는 '득점권 악마' 최주환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두산 베어스 최주환 득점권 타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