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무 4패, 5경기 연속 무승. 박지성(은퇴)이 국가대표팀을 떠난 뒤로 대한민국은 '숙적' 이란을 단 한 차례도 이겨보지 못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두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두 차례 맞대결에선 1무 1패를 기록했다.

애초부터 이란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가 유독 중동에 약했던 탓도 있지만, 이란은 그중에서도 막강한 상대였다. 1996 UAE 아시안컵 8강전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전반전을 2-1로 마치며 기세를 올렸지만, 후반에만 무려 5골을 헌납하며 2-6으로 대패했다.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손꼽히던 알리 다이에에게 무려 4골을 내줬다.

이란은 이후에도 메디 마다비키아, 알리 카리미, 자바드 네쿠남 등 유럽 무대를 누비는 아시아 최정상급 선수를 끊임없이 배출하며 대한민국을 괴롭혔다. 현재는, 새로운 '한국 킬러'로 떠오른 사르다르 아즈문을 비롯해 2017·2018시즌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등이 선배들을 뒤따르고 있다.

골문으로 향하는 손흥민 한국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기 위해 골문으로 달려가고 있다.

▲ 골문으로 향하는 손흥민 한국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 지난 2013년 6월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기 위해 골문으로 달려가고 있다. ⓒ 유성호


'죽음의 조'에 속한 이란, '과정'이 있어 기대되는 '결과'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팀 못지않게 이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상대 전적, '주먹 감자'와 '홈 텃세' 등 악연이 깊어진 상대지만, 그들이 어떻게 이번 월드컵을 준비했고 어떤 결과를 받아들이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

이란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었다. 대한민국의 박지성 때문이었다. 박지성은 이란 원정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낸 데 이어 본선 진출을 확정 짓고 치러진 최종전(홈)에서도 경기 막판 동점골을 터뜨리며 이란의 남아공행을 가로막았다.

이란은 충격에 빠졌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실패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했고, 성공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발걸음이 빨라졌다. 세계적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수석코치를 맡은 바 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란은 이전의 색채를 벗어던졌다. 화끈한 공격 축구를 버리고 탄탄한 수비를 중시하는 팀으로 거듭났다. '지루하다', '재미없다', '침대 축구' 등 비아냥거리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89분 동안 움츠려있었더라도 1분간 몰아쳐 승리를 따낼 수 있는 팀을 위해 나아갔다.

사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이란과 맞붙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란에 홈과 원정에서 모두 패했지만, 그들이 '정말 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우리가 경기 내용에서는 압도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이란에 패한 것은 그들이 잘해서가 아닌 우리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란은 1무 2패로 조별리그를 뚫지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첫 경기였던 나이지리아와 맞대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비에 잔뜩 힘을 실은 축구는 졸음을 불러왔지만, 승점이란 실리를 챙기는 데 성공했다.

2차전은 더 놀라웠다. 준우승팀 아르헨티나와 맞대결에서 0-1로 패했지만, 정규시간(90분)이 지날 때까지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리오넬 메시의 극적인 결승골이 아니었다면, 이란의 결정력이 조금 더 빛났더라면 '대이변'이 일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경기에선 1-3으로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희망을 얻은 대회임이 분명했다.

축구협회(이란)의 전폭적인 신뢰를 등에 업은 케이로스는 이란을 더욱 강력한 팀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맞붙은 이란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이란이 이 정도까지 축구를 잘했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포백 수비와 미드필더진의 간격은 90분 내내 변함이 없었고, 공간을 메우는 협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 입장에서는 틈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짜임새 있는 수비력과 비교해 아쉬움이 있었던 결정력은 아즈문과 자한바크슈 등 소수 재능들의 능력을 극대화해 완벽히 메웠다. 상대의 공을 빼앗는 순간부터 빠른 역습을 전개했고, 날카로운 슈팅이 골망을 갈랐다. 한순간의 방심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은 보는 이를 더욱 놀라게 했다. 

최근 10경기 '무패' 이란, 세계 무대에서 성과 낼 수 있을까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성적은 그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이란은 10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6승 4무의 놀라운 성적으로 러시아행을 확정지었다. 본선행을 결정짓고 치른 최종전(vs.시리아) 이전까지 실점은 1골도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로워지는 역습은 승리를 가져왔다.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낼 차례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이란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어려운 조에 속했다.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 유로 2016 우승팀이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과 묶였다. 그나마 약해 보이는 모로코도 '다크호스'로 손꼽히는 팀이다.

하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이후 한 길만을 걸어온 '과정'에 주목한다. 아시아에서만큼은 화끈한 공격 축구를 선보일 능력이 충분함에도 완성된 팀을 위해 '실리 축구'로 나아간 뚝심에 눈이 간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려 7년이란 시간 동안 묵묵히 내달렸다.

이란은 15일 오전 0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B조 1차전 모로코와 맞대결을 벌인다. 지난 네 차례의 월드컵 도전사(1승 3무 8패)에서 단 한 차례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던 이란. 목표를 위해 자신들만의 길을 걸었던 그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4차전 경기가 끝난 뒤 이란 케이로스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4차전 경기가 끝난 뒤 이란 케이로스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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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VS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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