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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멋진 장면 가운데 하나는 두 정상의 산책이었습니다. 두 정상이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다리를 걸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정치회담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왜 산책을 선택했을까요? 표현 하나 하나가 예민하고 단어 선택에도 긴장을 쏟아야 하는 정치회담에서 '걷는다'는 것은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에게 걷는다는 것은 복잡한 속내를 훌훌 털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입니다다. 해질 무렵, 퇴근길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죠. 남북의 첨예한 정치적 이해관계도 산책으로 풀어갔는데, 내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도 걷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요? 서울 밤산책, 오늘은 경복궁역에서 삼청동입구를 지나 가회동 북촌을 걸어보겠습니다.

 꼬까옷을 입고 사뿐사뿐
꼬까옷을 입고 사뿐사뿐 ⓒ 이영미

해가 길어졌습니다. 7시 경복궁역을 출발합니다. 아직 날이 훤합니다. 경복궁 야간 개장시즌이 시작되어 경복궁 경내를 통과하여 삼청동 방향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연인들, 친구들이 설레는 걸음으로 걷고 있습니다.

 야경이 멋진 국립현대미술관
야경이 멋진 국립현대미술관 ⓒ 이영미

경복궁 안쪽 길을 통과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앞을 통과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건축물로써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조명과 조형, 최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합니다. 서울의 도심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조용합니다. 퇴근 이후 사람이 빠져나가고 관광객 마저 궁궐 근처를 떠나고 나면 고요한 정적이 남습니다. 현대미술관 뜰에 가만히 앉아 건물의 불빛이 하나 하나 들어오는 것을 지켜봅니다.

 작품처럼 서 있는 나무
작품처럼 서 있는 나무 ⓒ 이영미

국립현대미술관자료실 앞에서 만난 나무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지형과 조명에 맞춰 조형물처럼 서 있습니다. 밤의 미술관을 산책해 보세요. 낮의 미술관에서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혼자서 오롯히 그 풍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서울의 모습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서울의 모습 ⓒ 이영미

현대미술관을 나와 정동도서관을 지납니다. 어둠이 내리면 빛은 이 도시의 주인이 됩니다. 낮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존재가 여기 있소! 하며 자신을 드러냅니다.

 북촌 가회동 입구 정육점
북촌 가회동 입구 정육점 ⓒ 이영미

가회동 북촌입구에서 붉은 조명의 가게를 만납니다. 정육점입니다. 정육점이 있는 동네, 흔치 않죠. 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어요. 전통적인(?) 붉은 조명을 비추고 군더더기 없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북촌의 여느 가게들의 세련되고 화려함과는 많이 다릅니다. 북촌, 이곳 역시 큰 맘 먹고 소고기를 사고, 갈비찜을 준비하고 미역국을 끓이는 사람들이 있는 그냥 평범한 동네입니다.

 북촌 골목길. 주말에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촌 골목길. 주말에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영미

 앗! 너무 귀여워
앗! 너무 귀여워 ⓒ 이영미

북촌길에 접어들어 작은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인적은 드물고 불빛은 고요합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인적은 드뭅니다.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인듯 했습니다. 주말을 피해 평일, 골목길을 조용 조용 걸어보세요.

 눈길을 사로 잡은 기와집
눈길을 사로 잡은 기와집 ⓒ 이영미

북촌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문창살이 이쁜 기와집을 보았습니다. 요즘 저런 문창살을 만들어줄 철공소가 있을까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매우 섬세한 만듬새였습니다. 마치 공예품 같은 문창살이었습니다. 하늘색 오묘한 물받이며 쇠창살의 거부감스러움을 반감시키는 저 창살조형을 선택한 건축주는 어떤 사람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일년 만에 걷는 북촌은 소란스러웠습니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드라마에 나온 그 한옥 골목길은 마치 시위라도 하듯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해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이제 북촌 골목 안쪽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멀리 삼청동과 이어지는 북쪽으로 돌아 가회동으로 오는 길을 선택해야겠습니다(다음에 소개할게요).

 불꺼진 가게를 기웃거려보았습니다
불꺼진 가게를 기웃거려보았습니다 ⓒ 이영미

찜찜한 마음을 뒤로 하고 골목길을 빠져나옵니다. 월요일, 큰 길가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불 꺼진 모자 가게를 기웃거립니다. 아주 먼 시간 속으로 여행 온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도심이 고요할 수 있다는 상상, 해보셨나요?

 법련사 연등
법련사 연등 ⓒ 이영미

가회동 북촌한옥 마을 큰 길을 따라 중앙고 올라가기 전에서 다시 유턴 하여 길을 돌아옵니다. 안국동 골목길을 걸어 경복궁 쪽으로 걸어옵니다. 어느새 오후 9시가 가까워졌고 법련사 앞 연등이 빛납니다.

 궁궐의 담은 조명을 받아 더 멋집니다
궁궐의 담은 조명을 받아 더 멋집니다 ⓒ 이영미

경복궁 담장이 빛을 받아 더 멋집니다. 저는 밤의 경복궁 담장을 서울의 건축물 야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겠습니다. 600년 왕조의 위엄과 역동하는 오늘의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품위있고, 동시에 명랑합니다. 걸으세요, 봄밤은 짧으니까요.

오늘의 걷기는?
거리: 큰길+골목길 8km (걷기 앱 기준) / 소요시간 1시간 30분
주요코스: 경복궁- 현대미술관- 정독도서관 – 북촌 – 북촌 한옥 골목길 – 가회동성당-안국동- 경복궁역

 오늘의 산책길
오늘의 산책길 ⓒ 이영미

덧붙이는 글 | 서울의 도심을 걷는 다는 것, 새로운 서울을 만나다는 것이 아닐까요. 도심의 골목은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퇴근길, 천천히 걸어 짧은 도시여행을 해보세요.



#북촌#산책#서울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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