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 무승부는 대한민국(아래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에게 최선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결정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 내내 상대를 끈질기게 괴롭히면서 이끌어낸 이번 무승부는 2019 프랑스 월드컵 진출권이 걸린 4강 진출의 확률을 높인 결과였다.

10일 오후 10시 45분(한국 시간) 요르단 암만인터내셔널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8 요르단 여자축구 아시안컵 B조 2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경기에서는 양 팀 모두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 채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이날 경기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지난 1차전 '아시아 최강' 호주에 무실점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1점을 확보한 한국은 일본전에서 승리할 경우 최약체 베트남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4강행의 9부 능선을 넘는 셈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차전 베트남을 4-0으로 이겼지만, 남은 호주와의 경기에서 패한다면 4강 진출이 확실치 않아 이번 경기에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따라서 이번 한·일전은 사실상 4강 결정전이었다.

한국은 지난 호주전보다는 더욱 공격적인 색채를 들고 나왔다. 이는 윤덕여 감독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역대 전적에서 4승 9무 15패로 크게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윤덕여 감독 부임 이후 일본전 성적은 2승 1무 1패로 오히려 앞선다. 지난해 동아시안컵에서도 대등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2-3으로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윤덕여 감독은 경기 초반부터 선수들에게 공격적으로 나설 것을 지시했다. 선수들은 라인을 올려 상대를 압박했고 이로부터 많은 찬스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공격에서 확실한 방점을 찍지 못한 한국은 후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공세에 다시 밀리기 시작했고 투지 넘치는 수비를 통해 승점 1점에 만족하는 데 그쳤다. 

공격 선택지 즐비했던 한국, 골 결정력은 아쉬워

전반 8분 만에 이금민의 날카로운 드리블과 전진 패스에 이은 이민아의 결정적인 슈팅 찬스가 나올 만큼 한국은 전반 초반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 우측 윙 포워드 이금민은 경기 내내 직선적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다. 167cm의 작지 않은 신장에도 불구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이금민이 돌파해오자 상대 윙백은 물론 센터백들이 측면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빈 공간이 생기다 보니 2선 미드필더인 이민아와 지소연이 빠르게 파고들며 뒷 공간을 노렸다.

여자축구대표팀 주장 조소현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둔 여자 축구 대표팀의 조소현(8번)이 지난 3월 27일 오후 경기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능곡고와의 연습경기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여자축구대표팀 주장 조소현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둔 여자 축구 대표팀의 조소현(8번)이 지난 3월 27일 오후 경기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능곡고와의 연습경기에서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기자기한 축구를 구사하는 일본을 상대로 오히려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가져간 점도 인상적이었다. 상대 수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빠른 전진 패스와 침투를 이용했다면 수비 라인이 뒤로 내려선 상황에서는 짧고 리듬감 있는 패스로 점유율을 높였다. 이민아와 지소연, 조소현이 위치를 바꿔가며 패스 플레이를 가져감으로써 일본 수비수들의 하중을 높였다. 2선에서 세 선수가 번갈아가며 공격 찬스를 잡으니 수비수들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점유율을 높이고 난 후 한국은 경기 운영을 자신 쪽으로 가져갔다. 

이날 경기 원 볼란치로 출전한 조소현의 분전도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한몫을 더했다. 조소현은 지난 호주전 윙백으로 경기를 소화했다. 탁월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낮은 위치에서 상대 공격을 끊어내고 강력한 킥으로 역습을 주도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포지션 변경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는 자신의 본 포지션인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그는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했다. 수비 시에는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상대 공격수들을 막아냈고, 공격 시에는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며 공격수들을 지원했다.

이처럼 이번 경기에서 한국에게는 수많은 공격 선택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결국 결정력 부재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6번의 슈팅과 2번의 유효 슈팅이 발생했지만 모두 골문을 벗어나거나 골키퍼 손에 걸리고 말았다. 전반전 경기를 주도했을 당시 선제골을 가져갔더라면 후반전 충분히 손쉬운 경기 운영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 베트남전에서 대량 득점이 필요한 입장을 고려해 봤을 때도 무득점은 탐탁지 않은 결과였다.        

압박 수비의 역효과, 체력 문제의 숙제로 남다

공격에서 다채로운 플레이를 가져간 것과 같이 한국은 이날 두 번의 수비 변화를 가져갔다. 바로 압박 수비와 수비 블록 형성이었다. 전반에는 압박 수비가 통했다. 지난 호주전 키워드가 질식 수비였다면 이번 일본전의 필승 카드는 압박 수비였다. 이번 경기 승리로 4강행을 조기에 확정 짓고자 한 일본은 공격에 많은 힘을 실었다. 다나카와 이와부치를 필두로 하는 투톱과 공격력이 좋은 사카구치와 스미다 모두 선발 출전해 한국의 골문을 노렸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 수비에 꽁꽁 묶였다. 오히려 그들에게 결정적인 찬스가 몇 차례 찾아오지 않을 만큼 한국 선수들은 앞선에서 패스 줄기를 잘라내며 그들이 공을 잡을 확률을 최소화했다.

한국 선수들은 공격이 끊긴 시점부터 수비에 돌입했다. 최전방 공격수 정설빈이 1차 저지선을 형성했고, 그 뒤의 조소현과 이민아 등이 빠르게 수비로 전환하며 상대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일본 공격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최대 강점인 짧은 패스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간 점유가 선결되어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이 이를 방해했다. 그리고 위험 지역에서의 커버 플레이뿐만 아니라 세컨볼에 대한 위치 선정도 좋았다. 안정된 플레이를 하다 보니 위험 지역에서 찬스를 내주지 않았고, 점유율도 되려 높여갔다.

문제는 후반이었다. 윤덕여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압박 수비를 포기하고 수비 블록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물론 최후방 위험지역에서는 둘 이상의 수비수들이 달려들면서 일본이 찬스를 잡는 것을 최소화했지만, 전반전보다 많은 선수들이 무리하게 올라가는 것을 지양하고 포백 앞 수비 라인을 겹겹이 쌓기 시작했다. 후반 중·후반으로 돌입하면서 나타날 체력 문제에 따른 변화였다. 실제로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선수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체력을 안배하기 위한 변화였지만, 일본 공격수들의 경기 템포가 살아나면서 경기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수비에서 안정적인 볼 처리가 되지 않으니 높은 위치에서 재역습을 맞았다. 후반 20분과 47분 가와스미와 이와부치의 슈팅은 한국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공격 장면이었다. 수비가 흔들리니 공격도 덩달아 무너졌다. 수비에서부터 나가는 패스가 부정확해 뛰어 들어가는 공격수들에게 좀처럼 공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수비들은 손쉬운 대비가 가능해졌고, 후반 막바지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다행히 0-0으로 경기가 마무리되며 결과론적으로 한국의 수비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1차전 호주에 이어 2차전 일본을 상대로도 승점 1점을 따내면서 3차전 경기 결과에 따라 4강 진출을 자력으로 확정 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전반전과 후반전 적절치 못한 체력 안배에 따른 공·수 밸런스 파괴는 이후 대표팀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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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요르단 여자축구 아시안컵 대한민국 일본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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