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Me Too'라고 크게 적혀있는 대자보가. 세상이 'Me Too'로 시끌벅적한 요즘 우리 학교는 조용하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말할 만했다. 어디 학과에서 일어난 일인지, 가해자가 누구인지 매우 자세하게 실명을 거론하고 있었다.

대자보에는 같은 학과의 피해자들이 모여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 쓰게 됐다고 적혀있었다. 가해자들이 누군지 알 수 있다는 사실보다 놀라웠던 건 해당 세 가지의 성추행 문제들이 모두 가까웠던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고 여러 고민들을 나눴던 상대가 가해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친했던 친구, 의지가 됐던 선배. 믿음이 깨졌다는 것이 컸다. 단순히 성적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이제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됐다고 한다. 게다가 가해자들은 당시의 일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짧은 사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니 더욱. 대자보 주변에는 많은 쪽지들이 붙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등의. 가까운 사람이기에,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밝히기 어려웠을 이야기. 그 용기 있는 외침이 우리 학교에서도 시작됐다.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피해자의 고발

 가해자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강의를 계속 하다가 스스로 사임을 했고 남정숙 교수는 해임 당하게 됐다. 대학 측은 남정숙 교수를 단순한 계약강사로 치부하며 계약을 해지했다. 학생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그녀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피해자인 그녀가.

가해자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강의를 계속 하다가 스스로 사임을 했고 남정숙 교수는 해임 당하게 됐다. 대학 측은 남정숙 교수를 단순한 계약강사로 치부하며 계약을 해지했다. 학생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그녀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피해자인 그녀가. ⓒ EBS


EBS <다큐 시선>에서는 #미투 운동에 대해 다뤘다. '용기 있는 외침, #미투'라는 제목처럼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勇氣).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를 말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밝히는 것에 도대체 왜 용기라는 거창한 것이 필요한 일일까.

한 대학교의 대우교수로 13년 동안 강의를 했던 남정숙 교수. 그녀는 해당 대학의 대학원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장의 성추행은 지속됐고 학생들 앞이라고 해서 멈추지 않았다. 남정숙 교수가 해당 일을 문제 삼자 그는 실수였으며 술이 취했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2차 피해가 시작됐다. 대학원장의 지위를 이용해 남정숙 교수를 전임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없는 사실을 지어낸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성추행 증거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고 주변 학생들의 증언이 있다며 1심에서 무혐의까지 받게 됐다. 이에 남정숙 교수는 증거를 직접 모아서 진정서로 제출했고 결국 승소할 수 있었다. 벌금 7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죄목에 대해 그가 받을 처벌이었다.

고작 그것뿐이었다. 가해자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강의를 계속 하다가 스스로 사임했고 남정숙 교수는 해임당하게 됐다. 대학 측은 남정숙 교수를 단순한 계약강사로 치부하며 계약을 해지했다. 학생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그녀는 다시 강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피해자인 그녀가.

이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1차 피해만으로 너무 아팠을 피해자는 주변으로부터의 2차 피해를 감당해야했다. 그것을 버틸 수 없다면 고발해서는 안됐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했다.

미투를 시작으로 한 변화의 바람

 영국, 스웨덴, 독일, 캘리포니아, 프랑스 등 방송에 나온 많은 나라들이 명확한 ‘동의’를 기준으로 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피해자가 계속하여 진술하고 입증해야하니 말이다.

영국, 스웨덴, 독일, 캘리포니아, 프랑스 등 방송에 나온 많은 나라들이 명확한 ‘동의’를 기준으로 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피해자가 계속하여 진술하고 입증해야하니 말이다. ⓒ EBS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의 현실은 처참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법정 다툼을 이어나가던 한 부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부부가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가해자는 오랜 시간 피해자 부부와 함께했던 친구였다.

피해자 부부는 소송을 걸었지만 가해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대로 된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강간이란 '사람을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강제하여 성관계를 함'이라고 되어있다. 영어사전은 어떨까. 영어 사전에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행해지는 성관계 또는 다른 형태의 성폭행의 종류'라고 칭하고 있다. 이때, 동의의 입증은 가해자에게 책임이 있다.

피해자가 강제성에 대해 입증해야 하는 우리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해외 강간죄 성립요건만 보더라도 얼마나 우리나라가 성폭행에 대해 보수적인지 알 수 있다. 영국, 스웨덴, 독일, 캘리포니아, 프랑스 등 방송에 나온 많은 나라들이 명확한 '동의'를 기준으로 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음을 피해자가 계속하여 진술하고 입증해야하니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이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외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고 피해자만 죽어나가는 일들이 생긴 것이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현실. 이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힘든 일이었지만 함께 용기를 내기로 했다. 거리로 나서고 #미투를 함께 외치는 여성들.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제 외침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사회 곳곳 일반인들의 #미투까지 이어지면서 말이다. 그 용기를 응원하고 싶다. 또한,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이제는 피해자가 더 이상 용기를 낼 필요 없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다큐발굴단>을 통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재밌는 다큐들, 이야깃거리가 많은 다큐들을 찾아보고 더욱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미투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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