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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온호가 기지 얼음바다에 계류 중이다
▲ 장보고기지 테라노바베이 아라온호가 기지 얼음바다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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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 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형! 잘 다녀오세요. 수행(?) 잘 하시고요!"
   
후배가 메시지와 함께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었다. <마션>이었다. 영화로 개봉했지만 보지 못했었다.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 모래폭풍을 만나 홀로 남겨진다.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500일을 넘게 버텨야 하는 상황.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온실을 만들어 감자를 재배한다. 실패를 주저하지 않고 다시 시작한다.
   
남극은 그랬다. 마치 화성에서의 삶처럼 세상과 단절된 곳 같았다. 기약 없이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이랄까.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 와트니처럼 당당히 마주하는 힘을 배운다.
가능성과 불가능의 경계에서, 상황을 인지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한다. 하나의 작은 목표를 실행하고 다음을 설정한다. 과정 속에서 변화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희망'이다.
   
'남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꿈을 꾼다. 대자연을 만난다는 것! 악몽이 없는 편안한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바람 소리, 돌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게 된다. 수많은 유빙 조각 중 하나처럼... 복잡한 퍼즐을 맞춰가야지.

긴 항해 끝에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좋다. 기지 입구의 펭귄 가족 동상이 반겨준다. 우리나라, 일본, 캐나다, 미국 국기가 함께 게양되어 있다. 남극에서는 탐사대원 한 명이 나라를 대표한다. 다국적 대원들의 국가를 알 수 있다. 프로젝트를 위해 공동연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장보고기지는 2014년 준공되었다. 펭귄들은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집단서식을 한다
▲ 펭귄 가족 동상 장보고기지는 2014년 준공되었다. 펭귄들은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서 집단서식을 한다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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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새 '도둑갈매기'가 나타났다. 펭귄의 알을 훔쳐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낯선 이방인을 보고 경계를 하며 정찰 비행을 한다. 부화 시즌이라 예민하다. 기지 근처에 둥지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노려봤다는 이유로 사납게 달려든다. 깜짝 놀라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다. 넓은 물갈퀴의 발로 머리를 치고 간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손을 들어 화해의 제스쳐를 취해본다.
   

2014년 완공된 장고보기지는 독특한 외형의 건물이다. 메인동을 기준으로 연구동과 대원들이 거주하는 본관 등이 연결되어 있다. 혹한의 날씨와 눈, 비상시 탈출이 용이하도록 현대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얼어붙은 땅을 고르고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완공하기까지 애쓰셨던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부화기 시즌 펭귄알을 훔쳐먹기로 유명다. 천적이 없어 번식력이 강하다
▲ 남극 하늘의 지배자 '도둑 갈매기' 부화기 시즌 펭귄알을 훔쳐먹기로 유명다. 천적이 없어 번식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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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안은 안락하다. 밖의 추위와 달리 26도 내외 기온을 유지한다. 월동대(1년 동안 남극에 상주하며 기지유지, 연구 활동을 하는 대원들)와 하계대원들(11월부터 익년 3월까지 하계시즌 분야별 탐사활동을 하는 탐사대)이 함께 지내게 된다.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도서실 등 부대시설이 있다. 눈에 띄는 공간이 있다. 실내 인공암벽이 설치되어있다. 등반 경험이 풍부한 안전요원들에겐 최고의 체력관리 장소다.

폭설과 눈폭풍(블리자드)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현대적인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다
▲ 장보고 과학기지 전경 폭설과 눈폭풍(블리자드)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현대적인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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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감자 온실' vs. 장보고기지 '채소 온실'

   
화성에서 살아가는 와트니는 감자온실을 만든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먹거리를 재배한다. 남극에서는 채소를 재배(?)한다. 아라온호의 보급 이후 식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냉동 저장된 음식들로 조리가 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상추를 화분에 길러 재배한다. 엄격한 관리 기준과 허가가 필요하다. 남극은 외부의 오염과 해충, 바이러스에 민감하다. 기지에서 배출되는 물질들은 정화하여 모두 회수된다. 자동 온도 조절장치에 의해 채소들이 '쑥쑥' 자라는 게 신기하다.

일주일에 한번 신선한 야채가 대원들의 식단에 올라온다
▲ 자동 조절 장치를 갖춘 '야채 온실' 일주일에 한번 신선한 야채가 대원들의 식단에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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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추위 때문에 감기 바이러스가 없다. 기지 밖은 평균 -15도의 날씨이다. 블리자드(눈 폭풍)라도 불어오면 -35까지도 내려간다. 외부에 나가려면 방한복과 방한화로 완전 무장한다. 얼굴 전체를 덮는 바라클라바를 쓰고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 화창한 하늘, 살살 부는 바람도 살이 에인다. 남극은 남극이다.

추위와 강한 자외선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한다
▲ 기지 외부 탐사시 복장 추위와 강한 자외선 노출을 예방하기 위해 완전무장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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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시즌이라 24시간 낮이다. 한국보다 4시간 빠르다. 침실 창문은 빛이 들어오지 않게 가려 놓는다. 기상 음악과 함께 일과가 시작된다. 탐사활동은 그날의 기상 상태에 좌우된다. 헬기를 이용한 내륙탐사는 날씨 제한이 크다. 지구의 나이테 빙하를 연구하고,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을 찾는다.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생존법을 살펴보고, 남극점까지 안전한 길(Korean route)을 찾아낸다. 남극탐사는 과거로부터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약 2미터의 두께 얼음 바다가 형성되었다. 해양 탐사를 위해 얼음 구멍을 만들었다
▲ 장보고기지 앞 바다 '테라노바베이' 약 2미터의 두께 얼음 바다가 형성되었다. 해양 탐사를 위해 얼음 구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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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대원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해양 탐사를 한다
▲ 얼음 구멍 잠수대원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해양 탐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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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기지 앞 바다는 탐험의 역사와 함께한다. 100여 년 전 남극은 인류에게 미지의 땅이었다. 테라노바베이(Terra Nova Bay)는 스콧 탐험대가 발견했다. 남극점 탐험을 위한 접안해안이었다.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이 테라노바(Terra Nova) '새로운 땅'이다. 남극점에 누가 먼저 설 것인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한다.
   
1910년 노르웨이 아문센(1872~1928)과 영국의 스콧(1868~1912)은 남극점 경쟁을 했다. 아문센은 혹독한 날씨에 적응하며 치밀한 준비를 했다. 전문성을 가진 대원들과 장비, 에스키모처럼 개썰매를 이용했다. 중간 보급지를 설치해가는 극지법으로 1911년 12월 14일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다. 또 다른 경쟁자 스콧 탐험대가 1달 뒤 도착한다. 그들이 본 것은 노르웨이 국기였다. 대원들은 돌아오는 길에 모두 탈진과 동상, 저체온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사뭇 다른 탐험이었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정복을 목적으로 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기지 주변에는 빙하 크레바스가 산재해 있어 항시 조심해야 한다
▲ 빙하 크래바스 지대 기지 주변에는 빙하 크레바스가 산재해 있어 항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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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의 역사를 새로 쓴 '어니스트 새클턴'

적은보수와 혹독한 추위
오랜 어둠의 시간
도처에 위험에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지 못하는 모험에
참여할 사나이들을 찾습니다
성공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음

1907년 영국 런던의 한 일간지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남극 탐험을 준비하는 어니스트 새클턴이 낸 광고였다. 얼음에 배가 갇혔다. 1914년 8월 28일 남극 횡단길에 오른 영국의 탐험대장, 1차 목적지는 북서쪽 300km 스노우힐. 그러나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이 없다. 목숨을 건 사투가 이어진다. 18개월간 남극 얼음 바다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식량으로 쓰인 펭귄만 1300마리, 그들을 위한 구조선은 없다. 새클턴은 작은 배로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 구조 요청을 위해 목숨을 걸고 파도를 넘는다. 3개월 뒤 28명 대원들 모두 살아남는다. 떠날 때의 목표는 남극횡단. 실패한 탐험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남아있다.

호주 지질학자 더글러스 모슨(1882 ~1958)은 전설적인 탐험가다. 1907년 새클턴의 남극탐험대에 참가한 경험이 있던 그는 1912년 동료 2명과 조지 5세 랜드를 탐험한다. 동료가 개썰매와 함께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또 다른 동료도 개의 간을 생식하다가 후유증으로 숨지게 된다. 모슨은 눈 폭풍을 뚫고 160km 거리를 홀로 생환한다.
   
내륙 탐사를 위한 모든 짐은 헬기를 이용해 운반한다
▲ 그물에 짐을 옮기는 헬기 내륙 탐사를 위한 모든 짐은 헬기를 이용해 운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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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들은 세상에 도전하며 역사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들도 절망의 순간 앞에서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파란 바다가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 땅이 갈라지듯 빙하소리가 요란하다. 하얀 설원을 지나간 사람들의 고뇌가 느껴진다. 세상과 떨어져 혼자된다는 것. 한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심장을 뛰게 한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자연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다. 빙하팀의 일원으로 남극의 한가운데 내륙으로 들어간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태그:#남극, #남극여행, #남극빙하, #펭귄, #남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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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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