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개정을 위한 2차 협상이 31일 서울에서 개최됐다. 지난해 8월 22일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와 올해 1월 5일 제1차 한미FTA 개정협상에 이어, 이번에도 한미 양국의 통상 수장은 무릎을 맞대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처를 취하면서 강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현실화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에도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30일(현지 시간) 연두교서 연설에서 "경제적 굴복의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economic surrender is over)"고 선언하면서, "나쁜 무역협정을 고치고 새로운 것으로 협상해 나갈 것(We will work to fix bad trade deals and negotiate new ones)"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초강대국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 우리나라 통상교섭본부의 준비는 충분할까? 아니다. '12척에 불과하다'던 통상교섭본부 인력은 단 1명도 충원되지 않았으며, 협상의 기초자료인 한미FTA 5년의 이행평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이행평가 연구용역 관련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12척도 안된다'는 통상교섭본부, 인력 증원은 0명협상 준비의 시작은 조직 정비다. 현재의 통상교섭본부 조직은 김현종 본부장의 표현을 빌자면, 한미FTA 개정협상을 준비하기에도 "배 열두 척이 안 된다."
손금주 의원 : 현재의 통상교섭본부의 인력과 자원으로 한미FTA 개정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 배 열두 척이 안 됩니다.(2017년 8월 2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한데 산업부의 업무 부담은 더욱 커졌다. 지난 1월 5일 한중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공청회 개최 등 중국과의 FTA마저 개정협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계 초강대국인 G2 국가와의 무역협상이 개시됐거나 개시될 예정이다. '12척도 안 된다'는 통상교섭본부 조직은 확충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통상교섭본부 조직은 단 1명도 충원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지난 11월 8일 "미국, 중국 등 주요국 통상현안 및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산업부 소관 국정과제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직 역량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통상교섭본부 내 80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고, 임기제 공무원을 15~20명 신규채용하는 내용의 공문을 행정안전부에 보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협의 요청'이라는 제목의 동 공문에 의하면, 산업부는 통상교섭본부 내에 신대외질서전개실을 신설하고, 신대외질서전략지원관과 신대외질서법무지원관을 신설하며, 기존 통상정책국ㆍ통상협력국 심의관은 폐지하겠다는 협의안을 제시했다.
이후 행정안전부는 11월 20일 '전문임기제 협의(신규) 결과 알림'이라는 제목 하의 회신공문을 통해 신통상질서전략실과 통상차관보 산하에서 근무할 전문임기제 공무원 19명(법률전문가 12명, 해외 지역별 경제분석 6명, 홍보 1명) 신규임용을 승인했다. 통상교섭본부 직제 개편 및 80명의 공무원 증원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직제 개편과 80명의 공무원 증원안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행정안전부가 승인한 전문임기제 공무원 19명은 새로 채용되었을까?
아니다. 이번에는 기획재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기획재정부는 한미FTA 2차협상이 진행중인 지금까지 신규채용 인력에 대한 예산 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직급 맞추기보다 조직 정비가 우선
한편 산업부는 지난 1월 29일 유명희(51, 배우자 정태옥) 통상정책국장을 1급인 통상교섭실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1948년 상공부가 설립된 이래 산업부에서 7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1급 공무원이 나온 것이라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했다.
산업부 관계자에 의하면, 수석대표인 무역대표부(USTR) 마이클 비먼(Michael Beeman) 대표보와의 직급을 맞추기 위한 것이란다.
'12척'도 안되는 조직 정비는 그대로 놔두고, 수석대표의 직급만 맞춘다고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직급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면 작년 8월과 10월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나 지난 1월 5일 1차 개정협상 때는 왜 그대로 놔뒀는지 의문이다.
한미FTA 개정을 위한 2차 협상의 첫째 날인 31일, 협상이 끝나고 우리 협상단을 찾은 김현종 본부장은 "지금은 평가하기 너무 이르다"면서 "쉽지 않은 협상이고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의 조직 정비 행태가 딱 그 모습이다.
참으로 "갈 길이 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 FTA연구모임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