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승 5패', 분명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빠졌다. 서울삼성 썬더스의 일시 대체 외국인 선수 칼 홀은 평균 8.1득점 6.3리바운드를 기록 중이다. 김태술과 김동욱, 문태영 등 핵심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만 36세다. 골밑의 열세를 메우기 위해선 이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서울 삼성의 행보는 놀랍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8일, 라틀리프가 빠진 첫 경기이자 원정 10연전의 시작을 알린 부산 KT전. 삼성은 10점 차로 패했다. 리온 윌리엄스와 웬델 맥키네스에게 무려 40득점 26리바운드를 헌납했다. 외국인 선수가 한 명밖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골밑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14일 울산 원정은 절망적이었다. '10-30', 1쿼터에 승부가 갈렸다. 울산 현대 모비스 이종현이 헐거워진 삼성 골밑을 마음껏 공략했다. 마커스 블레이클리도 힘을 보탰다. 삼성은 일찍이 경기를 포기한 모습이었고, 연패를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지난 5일 라틀리프가 뛰었던 고양 오리온전을 포함해 4연패였다.

그러나 삼성은 귀신같이 살아나 이후 5경기에서 3승 2패를 기록했다. '천적' 창원 LG와 경기에서 연패를 끊었다. 특히 라틀리프가 있어도 깨지지 않던 창원 원정 11연패에서 벗어났다. 인천 원정에서도 승리를 챙기면서 2연승을 달렸다. 마키스 커밍스가 27득점을 몰아쳤고, 홀이 KBL 무대를 밟은 이후 최고의 활약(23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을 보였다.

다시 2연패. 삼성은 '선두' 원주 DB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막판 집중력이 아쉬웠다. 24일 안양 KGC와 경기에선 골밑 싸움에서 심한 열세를 보이며 완패했다. 그런데 올 시즌 세 번째 'S-더비'에선 이겼다. 강력한 우승 후보 서울 SK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삼성은 외곽슛이 폭발했고, 골밑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단단해진 삼성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SK와 서울 삼성의 경기. 삼성 김동욱이 드리블하고 있다. 2017.12.25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SK와 서울 삼성의 경기. 삼성 김동욱이 드리블하고 있다. 2017.12.25 ⓒ 연합뉴스


라틀리프가 빠졌지만, 삼성은 더 단단해졌다. 삼성의 가장 큰 아쉬움이자 약점으로 불린 수비가 달라졌다. 상대보다 한발 더 뛰고, 끊임없이 도움 수비에 들어간다. 박스아웃을 철저히 하고, 이관희와 이동엽 등 가드진의 리바운드 가담도 쉼 없이 이루어진다. 외곽에서도 완벽한 기회를 내주는 일이 줄었다.

수비가 안정되면서, 화력이 폭발했다. 공격은 한발 앞서 뛰는 빠른 농구다. 삼성의 김태술과 김동욱의 패스는 상대 수비를 배려하지 않는다. 수비 리바운드 이후 재빠르게 상대 림을 공략한다. 커밍스와 이관희, 이동엽 등이 상대 진영으로 빠르게 내달려 득점을 만들어낸다.

지공도 좋다. 커밍스의 개인기가 갈수록 빛을 발한다. 커밍스가 수비 균열을 불러오면, 외곽에서도 기회가 생긴다. 김동욱과 문태영은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김동욱은 경기당 평균 3점슛 2.56개를 성공시킬 뿐 아니라 성공률이 50%에 달한다. 김태술과 이관희, 이동엽 등도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득점을 쌓는다.

희망찬 삼성의 중심

커밍스의 재발견이다. 삼성이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단신 외국인 선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밍스는 무난했다. 평범한 득점력과 경기력을 보였다. 놀라운 운동 신경을 자랑하고, 1번부터 4번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 능력을 갖췄지만 아쉬웠다. 지난 시즌 마이클 크레익처럼 색깔이 뚜렷한 선수가 필요하다고 봤다.

오산이었다. 커밍스는 흙 속의 진주였다. 라틀리프가 빠진 삼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데는 커밍스가 있다. 속공에 앞장서고, 유연한 스텝으로 손쉬운 득점을 쌓는다. 외곽슛 시도가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3점슛도 나쁘지 않다. 라틀리프가 빠진 8경기 모두 2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12일 전주 KCC와 경기에선 35득점을 폭발시켰다.

라틀리프 부상 전, 커밍스는 25분 이상 소화한 경기가 두 번뿐이었다. 20득점 이상 기록한 경기도 네 차례밖에 없었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설 기회가 생기자, 놓치지 않았다. 득점과 어시스트 능력을 마음껏 뽐내면서, 공격의 핵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라틀리프가 부상에서 돌아오더라도 삼성의 주 공격수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김태술과 김동욱도 라틀리프가 빠진 삼성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김태술은 시간이 갈수록 전성기 시절 기량을 회복하는 느낌이다. SK전에선 12득점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리에 앞장섰다. 올 시즌 첫 더블더블이었고, 두 자릿수 어시스트였다. 노련한 경기 운영과 패스, 속공 전개 등 국내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손색없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되찾았다. 김태술은 최근 4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전주 KCC 이적 후 보기 어려웠던 뱅크슛이 살아났다. 3점슛도 물올랐다. 19일 전자랜드전 이전까지 6경기 연속 3점슛이 없었지만, 최근 4경기에서 평균 2개 이상의 3점슛을 터뜨리고 있다. 승부처에서 터지는 만큼, 영양가도 만점이다.

김동욱은 '농구 도사'다. 못하는 게 없다. 공격과 수비 모두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다. 3점슛 라인에서 한 발짝 이상 떨어져 슛을 시도함에도 쏙쏙 림을 가른다. 힘을 이용해 손쉬운 골밑 득점도 만들어낸다. 흐름을 읽는 눈과 허를 찌르는 패스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과거 함지훈 '킬러'로 명성을 떨쳤던 만큼, 타고난 힘을 앞세워 골밑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벤치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관희는 올 시즌 MIP(기량발전상)가 가장 유력한 선수다. 수비만 잘하는 반쪽짜리 선수에서 공격력까지 갖춘 슈팅 가드로 올라섰다. 올 시즌 27경기에서 평균 18분 52초를 소화하고 있다. 지난 시즌 전 경기(54경기)에 나서 평균 11분 13초를 소화한 것과 비교하면, 출전 시간이 많이 늘었다.

평균 득점도 2배(3.63->7.30) 이상 증가했고, 경기력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여유'가 생기면서, '무리'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속공에 앞장서 손쉬운 득점을 만들어내고, 날카로운 패스로 어시스트를 올리기도 한다. 아직은 더 보완해야 하지만, 영양가 넘치는 3점슛도 늘어났다. 올 시즌에는 삼성의 주전 슈팅 가드로 봐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삼성에는 이관희와 주전 경쟁을 벌이는 이동엽, SK전에서 3점슛 3개를 폭발시킨 최윤호,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가면서 감각을 회복하고 있는 차민석 등 알토란같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이 버틴다. 라틀리프의 공백을 메우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선수들이다. 

라틀리프의 복귀는 예정보다 조금 늦춰질 전망이다. 이상민 감독은 SK전에 앞서 "라틀리프가 전치 3주 진단을 받았지만 부상 치료 기간을 연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이상민 감독은 무리하게 복귀를 추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완벽한 회복이 이루어져야 복귀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단단해지고 있는 삼성에 완벽한 몸 상태의 라틀리프까지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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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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