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도 커피 마시고 마을 마실 다니며 여유 부리다 배 시간에 아차차 늦을 뻔해서 목숨 걸고 밟은 덕에 10시 30분 차귀도 입항배를 무사히 탔다네. 하마터면 '제주도 교통사고 전국 상위엔 여행객 렌트카'라는 기사에 한몫할 뻔했지.
차귀도 참 좋드만~ 제주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이라는데 다른 무인도를 가보지 못했으니 크기에 대한 실감은 잘 모르겠더군. 오름인 듯, 평야인 듯 넓은 억새밭을 오르면 기암괴석이 둘러싼 절벽 아래로 진쪽빛 파도가 시원 아찔하게 펼쳐져 있지.
'무인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지 '사람을 볼 수 없는' 곳은 아니란 걸 곧 알았지. 이 무인도에 가려면 '자구내 마을'이란 곳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나는 이 마을 이름이 자꾸 '지구내 마을'로 읽히더군. 배를 타면 '10분'만에 갈 수 있는 이곳은 무인도 가는 길이 너무 빠르고 쉬워서 약간 허망했는데다가 무인도에 뭔 사람이 그리 많담~
너른 황금벌판이 머리 위의 푸른 하늘과 발아래 쪽빛 바다 사이를 기분 좋게 경계 짓고 있다. 약한 인간은 새처럼 날아올라 구름 위에 앉을 수도, 절벽 아래 파도 위에 앉을 수도 없으니 하늘 한 번 보고 억새밭 한 번 보고 바다 한 번 보며 그저 감탄사나 내뱉을 수밖에-
좁고 가파르지만 짧아서 다행인 경사 길을 오르면 넓게 펼쳐진 황금벌판 속에서 바람과 함께 군무를 추고 있는 억새들 너머 저 멀리 하얀 무인 등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그림 같은 절경을 보려면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되는데 이 언덕 이름은 '볼레기 언덕'이다. 볼레기는 '헐떡거린다'는 제주도 말로 등대를 만들 때 섬 주민들이 '볼렉볼렉(헐레벌떡, 헐떡벌떡)' 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돌과 흙을 힘들게 져 날랐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흰 등대와 겨우 남은 집터의 흔적 몇몇이 지금은 무인도인 이곳에도 한때는 사람이 산 자취를 희미하게나마 알려 주고 있다. 차귀도는 1911년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해서 그 뒤로 열몇 가구가 모여 살았는데 68년 김신조 간첩 사건과 74년 추자도 간첩단 사건으로 주민 전원 퇴거 명령이 내려 무인도가 된 것이란다.
늘 억새와 갈대가 헷갈리는데 강이나 바다 근처 '물' 가까이 있는 것은 갈대이고 산에 있는 것은 억새라는군.
해안 절벽에서 바라 보는 풍광은 수년 전 가 본 베트남 하롱베이 못지 않았다네~
섬 한 바퀴를 대충 돌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데리러 오는 중소형 관광선은 대체로 만선이더군. 아마 나혼자 갔음 한 대 보내고 이 구석, 저 구석 더 노닥거리다 다음 배를 탔을 테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노는데도 시간을 너무 잘 지키더군.
자구내 마을 선착장에선 바닷 바람에 말린 차귀도표 '화살오징어'를 팔고 있더군. '한치'는 들어 봤어도 화살오징어는 처음 들었는데 그게 그거라는구먼. '한치'가 다리가 짧아 한치(3cm)밖에 안 된다고 하여 한치라고도 한다는 거, 한겨울 추운 바다에서도 잡힌다고 하여 찰한(察)자를 써서 한치라고도 하는 건 이번에 알았구먼~ 정태춘의 이어도(떠나가는 배)나 김추자의 무인도를 들으며 버터 고추장 찍은 소주 한 잔 꼴깍하면 참 맛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