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타이거즈의 6년 차 우완 한승혁은 올해 시범 경기에서 시속 157km의 강속구를 뿌리며 5이닝 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KIA팬들은 '드디어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의 수호신이 나타났다'며 한승혁에 대한 기대를 더욱 키웠다. 하지만 올 시즌 한승혁은 36경기에서 1승 1패 1세이브홀드 평균자책점 7.15에 그치며 예년에 비해 전혀 발전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한승혁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하며 초라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사실 한승혁은 입단 전부터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프로 입단 후에는 고질적인 제구 난조 때문에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했다. 기다림에 지친 팬들은 이제 한계가 찾아온 듯하지만 한승혁은 시즌 후 방출되지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타 팀으로 이적하지도 않았다. 한승혁에게는 배워서 익히기 힘든, 타고나야 하는 재능의 요소인 '강속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속구는 각 구단의 감독과 투수코치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여기는 투수의 최대 강점이다. 물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쓸쓸히 유니폼을 벗은 선수도 수두룩하지만 여전히 전세계 프로구단에서는 강속구 유망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올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두산 베어스 역시 22일에 열린 KBO 2차 드래프트를 통해 강속구 투수 한 명을 영입했다. 이제는 '유망주'라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해진 우완 파이어볼러 최대성이 그 주인공이다.

롯데가 10년을 기다리다 포기한 우완 파이어볼러

최대성은 부산고 시절 좌완 장원준(두산), 2학년 잠수함 이왕기(은퇴)와 함께 부산고 마운드의 트로이카로 이름을 알렸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2차 2라운드(전체 9순위)로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1차지명 장원준과 2차 1순위 김수화(은퇴)가 선발 투수로서의 잠재력을 인정 받은 반면에 강속구를 가진 최대성은 '제구력을 갖출 경우' 차세대 마무리 투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입단 당시만 해도 정복하기 쉬운 영역으로 보였던 '제구력'은 선수 생활 내내 최대성의 앞을 가로 막았다. 특히 2006년 즈음에는 이왕기, 가득염과 함께 야구팬들로부터 '이왕기름 넣을 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최대성의 불안한 제구력은 악명이 높았다. 워낙 제구력이 나빠 '최대성은 몸 맞는 공만 조심하면 무조건 볼넷'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

최대성은 2007년 41경기에서 3승 2패 7홀드 2.67을 기록하며 오랜 약점을 고치고 드디어 롯데 불펜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부족한 유연성 탓에 하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끊어 던지는 투구폼으로 인해 팔꿈치에 무리가 갔고 2008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재활로 인해 2009 시즌을 통째로 거른 최대성은 그해 11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며 실질적으로는 4년의 공백을 가졌다.

최대성은 복귀 시즌이었던 2012년 8승 8패 1세이브 17홀드 3.59로 좋은 성적을 올린 후 이듬 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며 13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특유의 기복을 보였다. 언제나 희망은 실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워낙 뛰어난 구위를 가졌기 때문에 롯데 팬들은 해마다 최대성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롯데 구단은 10년의 기다림 끝에 최대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즉시 전력감 포기하고 선택한 최대성, 김강률처럼 뒤늦게 꽃 필까

최대성은 2015년5월 트레이드를 통해 신생팀 kt 위즈로 트레이드됐다. 당시만 해도 1군 데뷔 시즌을 보내던 박세웅이 유망주에 불과했다면 최대성은 프로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던 '즉시 전력감'이었다. 최대성 역시 롯데에서 짊어지고 있던 큰 기대와 부담에서 벗어나 신생 구단에서 마음껏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으니 나쁠 것이 없는 이적이었다.

하지만 최대성은 트레이드 후 5경기에서 20.25라는 만화 같은(?) 평균자책점을 남긴 채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며 1군 마운드에서 자취를 감췄다. 실제로 최대성은 2015년 5월23일 한화 이글스전을 마지막으로 2년이 넘도록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는 퓨처스리그에서 15경기에 등판해 2패 1홀드 21.76로 부진했다. 특히 22.1이닝 동안 45개의 사사구를 기록했을 정도로 제구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최대성은 시즌 후 kt의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의 지명을 받았다. 두산은 지난 2009년 이현승 영입을 위해 넥센 히어로즈로 보냈던 금민철(kt 2라운드 지명)이나 쓰임새가 다양한 전천우 내야수 손주인(삼성 라이온즈 2라운드 지명) 같은 즉시 전력감들을 거르고 불안요소가 가득한 파이어볼러 최대성을 선택했다.

두산 불펜은 FA를 선언한 김승회를 전력 외로 분류하더라도 마무리 김강률을 비롯해 이용찬, 이영하, 김명신처럼 1군에서 성과와 가능성을 보인 우완 투수들이 있다. 하지만 최대성이 2012년이나 2014년 수준의 구위를 보여 준다면 불펜진 불안으로 고전했던 두산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최대성은 오는 12월2일 세 살 연하의 프로골퍼 박시현과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 공을 던지던 최대성에게 '가장의 책임감'이 추가된 셈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른 살까지 부산을 떠나지 않았던 최대성은 수원을 거쳐 내년 시즌부터 서울의 잠실 야구장 마운드에 오르게 된다. 사실 프로 입단 후 10년 넘게 유망주 껍질을 깨지 못한 선수는 그만큼 기량이 급성장할 확률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산은 올 시즌 11년 차 '노망주' 김강률의 대성공을 목격한 바 있다. 두산은 최대성이라는 오래된 강속구 유망주도 김강률처럼 내년 시즌 성공의 길로 들어서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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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2차 드래프트 두산 베어스 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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