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

ⓒ (주)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영화의 입체적 캐릭터는 감독도 예상할 수 없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파드마 앙뚜가 보이는 변화가 그렇다. 감독 문창용, 전진은 예사롭지 않은 파드마 앙뚜의 5살에서 12살(상영된 영화 기준)까지의 삶을 따라다닌다. 전생을 기억하는 어린 '린포체'로서 앙뚜가 무엇을 근심하고 소망하는지를 좇으며 관객에게 낯선 티베트 문화와 히말라야 비경을 선보인다.

'린포체'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적인 전생 인정 제도다. 앙뚜는 6살 때 라다크 불교협회로부터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환생한 티베트 불가의 고승인 '린포체'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앙뚜의 전생지가 티베트 캄이어서 그곳 제자들이 와서 모셔가야 잠재력을 발현시켜 린포체로서 피어날 수 있다. 중국에 의해 국경 통행이 금지된 전생지 사찰로부터 소식이 없자 앙뚜는 살아 있는 부처로 존중받기는커녕 라다크 사찰로부터도 내쫓긴다.

외면 당하는 어린 '린포체', 아이를 돌보는 승려

 축복하는 앙뚜 린포체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초등학생 앙뚜 린포체에게 공존하는 상이한 모습들을 포착한다. 키가 작아 걱정하고, 날아오는 공이나 화약 터뜨리는 놀이가 무섭고, 공부하면 졸리고, 눈썰매타기에 환호하고 등 천진난만한 표정은 여느 또래들과 같다. 그러나 자기 사찰이 없는 무연고 린포체라는 의식이 순간순간 아이다움을 좀먹는다. 전생의 기억은 자꾸 흐려져 이젠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데, 마을 사람들은 '가짜 린포체'라거나 '먼지 속을 뒹구는 린포체'라고 비웃는다. 앙뚜는 스트레스에 부쩍 화를 내고 행동이 거칠어진다.

그런 앙뚜를 거두는 노스승 우르갼은 티베트의 전통 의사 '암치'이자 승려다. 우르갼은 의사로 키우려 한 동자승이 '린포체'가 되자 극진하게 수발하느라 암치를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전적으로 기댄 어린 린포체의 미래가 막막해지자 전생지 티베트 캄으로의 여정을 위해 다시 암치 행각으로 돈을 모은다. 그의 나날은 앙뚜 린포체를 향한 자발적 헌신과 무조건적 사랑으로 채워진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 ⓒ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우르갼이 앙뚜의 보호자 겸 놀이친구로서 손색 없다는 것을 살뜰하게 보여준다. 비좁은 암자가 들썩일 정도로 분주하게 앙뚜를 씻기고 입히고 먹일뿐더러, 일상만도 버거운 노구지만 앙뚜가 잊고 간 노트를 챙겨 학교에 갖다 주기도 한다. 난롯불 지필 장작을 패다 넘어지기도 하는 우르갼은 뒤치다꺼리를 하는 와중에도 푸념하지 않는다. 앙뚜와 축구, 눈싸움 등을 함께하며 숨차지만 오히려 즐거움을 북돋운다. 앙뚜의 학교 공부와 불경 공부를 독려하는 표정에서는 다그침이나 매서움을 찾아볼 수 없는, 자비로운 모습이다.

우리에게도 깨달음 주는 두 사람의 관계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앙뚜와 우르갼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내레이션 없이 표정과 대화만으로 전달한다. 영화 후반부, 우르갼과 12살이 된 앙뚜는 티베트 캄으로 두 달 반가량 3,000㎞ 여정을 떠난다. 전생지 사찰과의 연결을 가로막는 국경 앞에서 염원의 소라고둥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앙뚜는 마침내 린포체 영재 교육에 합류한다. 열린 결말을 장식한 감동적인 장면들은 연출이 아닌 다큐멘터리이기에 더 아름답다.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 위치한 티베트 국경 마을 시킴에서 우르갼은 앙뚜의 장갑만 구매하고 자신은 맨손으로 눈 덮인 산길을 오른다. 앙뚜는 냄새를 걱정하면서도 꽁꽁 언 발을 내밀고 우르갼은 이를 손으로 감싸쥐고 녹여준다. 설산의 하얀 빛과 대비된 빨간 옷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모진 추위 속에서도 피어난 한 송이 꽃인 양 아름답고 귀하다. 린포체 교육을 받으러 입소하는 앙뚜와 이별 세레머니로 눈싸움을 하는 척하다 마침내 우르갼이 통곡하는 장면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자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결정체다.

밥 먹을 때도, 눈싸움할 때도, 손가락질 받을 때도,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할 때도, 설산을 오를 때도 언제든 함께한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람 중심의 사회를 꿈꾸는 지금 여기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한편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기에 박수칠 만 하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앙뚜 린포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온갖 종류의 책과 영화를 즐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