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G PROJECT


"어렸을 때 마술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특수한 사람들만 하는 분야가 됐나.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시였다. 한 단어에 모든 감정, 맛이 느껴졌지만 일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스페셜하고 자극적인 것으로만 알아차리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마술이 통하는 것이 있는 거 같다. 시가 어렸을 때 감성을 터트려 주듯이. 마술도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정재찬 교수

"일종의 촉촉한 시간이다. 완벽하게 구상하지 않고, 여백을 만들어서 관객들이 상상하고 참여할 수 있게. 일분일초를 계산하는 무대는 숨통이 안 트여지는, 숨 막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이은결X정재찬 < CHEMI-PROJECT >(아래 <케미 프로젝트>)는 숨 쉴 수 있는, 호흡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마술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시를 통해 위로와 소통을, 예술을 재고하게 만드는 시 에세이스트 정재찬 교수가 한 자리에 선다. 단순한 마술과 시의 만남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 즉 마술과 시를 통해 각자의 영역을, 더욱 폭넓게 표현하고 끄집어내, 보는 이들의 생각지도 못한 사고의 영역을 건드린다. 단지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리라 느끼고, 교감하고, 여백을 느끼게 한다. 어떠한 장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이들의 만남이 더욱 기대를 높이는 이유다. 27일, 개막하는 <케미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정재찬 교수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대를 듣는다> 등 다수 책을 집필했으며, JTBC <김제동의 톡투유> tvN <어쩌다 어른>을 통해 대중에게 시에 대한 장벽을 깨트렸다.

이은결은 마술이라는 장르를 대한민국에 알리고, 한 단계 발전시킨 장본인. '디 일루션'을 통해 마술의 영역을 되짚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작가 EG로 '멜리에스 일루션'으로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22일, 리허설이 끝난 늦은 오후에 이들을 만났다. 리허설이 끝났다고 하기엔 이들의 표정은 아이처럼 해맑았고, 지친 기색은커녕, 이야기 도중에도 아이디어가 들끓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듯, 대화 속에서도 무대에서 폭발할 시너지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강연, 강의만 했는데 공연이라니! 기대는 하고 오지 마세요. (웃음)"

공연 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정재찬 교수는 '기대는 하지 말라'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은결과 서로에 대해, 작품에 관해 대화 할 때는 너무나도 재밌는 이야기보따리꾼 이었다. 작품의 이름처럼 이은결과 정재찬은 '케미'(케미스트리)가 척척 맞았다.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꾸몄다.

특'별'한 만남, 서로에 대한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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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찬(아래 정): "이은결과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만났는데 특별히 좋았다. '별 특집'인데 시에서도 별이 중요한데 일루션도 그렇지 않나. 이은결이 "공연 계획이 있는데 모시고 싶다"라고 해서 "참 젊은이가 매너가 좋다"라고만 속으로 생각했다(웃음). 사실, 방송 한 번 하고 헤어지고 있지 않나. 근데 정말로 초대권을 보내왔더라."

이은결(아래 이): "선생님을 모시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루션이라는 무대도 시적으로, 표현이 가능한 장르라는 것에 생각하게 됐고, 그 표현에 대해 관심을 끌게 됐다. 책도 보고, 강연도 찾아봤는데 선생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봤는데 완전히 매료됐다. '시보다 시적인 것이 중요하다'라는 문구도. 너무나 좋은 말이 많았다."

정: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다른 문화 예술과 융·복합적으로 다가가는 내용이다. 이은결이 초대한 관객과의 대화를 갔는데, 이은결이 "마술은 서사가 아니라 서정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내게 크게 다가왔다. 그 당시는, 사적인 대화도 나눠본 적 없고 막연히 '마술하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생님이 보신 관객과의 대화에서 포에틱 마술(시 퍼포먼스)을 테스트했다. 작품 활동할 때 메타포로 이미지를 만들어, '멜리에스 일루션' '디 일루션' 등을 통해 보이긴 했지만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았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메타포를 어떻게 내보일까'보다, 내가 느꼈던 것들이 사상으로 바뀐 것, 이미지화시킨 것들을 무대에 올렸는데,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시와 마술의 공통분모 크다... 만남은 필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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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은결은 마술계의 아방가르드다. 이런 시도가 곧 새로운 영역이다. 마술이라는 기법으로 표현하지 못한 영역을 표현하는 것. 새로운 예술 영역이고, 장르도 모르겠는데 무대만 보면 놀랄 수도 있다."

이: "마술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일루션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 또 통용화 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혼자 해결되지도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마술하는 분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마술이 좋은 예술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영역의 작가들도 함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마술은 서프라이즈,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마술사들도 갇혀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마술 때문에 속고 있는 것이 아닐지. 종교적인 신을 모시는 것이나,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되는 강령처럼. 예술을 표현하는 고유의 비법, 언어화시키는 방법이나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정: "처음에는 이은결이 그렇게 진지한 줄 몰랐다(웃음). 마술은, 스토리로 끌고 가더라도 결국은 '짠'이다. 시도 극적인 감정에서 '아' '오'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저 친구가 본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정의 본질을 잘 알고 있구나, 라고 느꼈다. 순간 '나는 어떻게 저 친구의 표현을 알아듣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은결이 작가적 고뇌를 많이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이은결이 아니라, 표현론적, 마술의 역사 등. 깊은 세계에 빠진 이은결에 대한 말이다."

이: "덕수궁에 선생님 강연을 보러 간 적 있다. 강연을 보고 '정말 말씀 잘하신다!'라는 생각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에 확신이 더해졌다."

그래서 <케미 프로젝트>

정: "어쩌면 각자의 영역에서 하는 것이 편하고 쉬울 수도 있다. 서로의 합을 맞추는 과정도 쉽지 않고. 그동안 시, 배경, 그림, 음악 등 나 혼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미 프로젝트>는 이미지가 비주얼로 판타스틱하게, 시를 설명한 무대와 전혀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이: "요즘은 시적인 가사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나. 더 직설적이게. 예전에는 편지도 시로 쓰지 않았나. 지금은 메신저 세대다. 이모티콘으로 이미지를 나타내고. 시적인 이미지로, 또 그것을 시적으로."

정: "도시락을 못 싸 온 친구가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을 알고, 반 친구들이 도시락을 채워주는 노르웨이 광고. 그런 광고를 봐도 시가 떠오른다. 시가 오버랩 된다. 글도 쓰고 강연도 할 수 있다. 근데 그런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정말 판타스틱한 거 아닌가."

이: "근데 마술로서 도시락이 채워지는 광경은 아니다. 도시락에 채워지는 것이 '마술로서'이지 않나. 그 경계가 쉽지 않다."

마술과 시, 환상이 아니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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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마술과 시는 기적이 아니라, 현실 안에 있는데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게 아닌가. 내 눈앞의 환상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만드는 것이 마술이다. 초현실적인 것만 얘기하다 보니 '마술은 특별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작 사람들과는 멀어진다는 생각이다. 마술도 일상을 얘기하고, 평범한 존재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정말 특별할 수 있다는, 다른 예술에서 느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마술에는 신기함, 절대적 힘이 있는 것처럼 많이 생각한다. 신기함이 없으면 마술이 아니라는 것처럼. 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을 했다. '디 일루션'에서 손가락 움직임만 보이기도 했는데(핑거발레) 댓글을 보면 그것 역시 마술로 받아들이더라. 현실에도 이미 마술적인 것이 많이 있는데 말이다."

정: "핑거발레, 너무 좋더라. 내 평생 처음 본 마술은 아버지의 '까꿍'이었을 거다. 이미 어렸을 때 마술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특수한 사람들만 하는 분야가 됐나. 그런 의미에서 원형적인 것이 시와 마술이 통하는 것이 있는 듯.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이 시였다. 한 단어에 모든 감정, 맛이 느껴졌지만, 일상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처럼. 스페셜하고 자극적인 것으로만 알아차리게 말이다. 시가 어렸을 때 감성을 터트려 주듯이. 마술도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재미있다고 다 재밌는 것이 아니다. 의도한 것이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 재미를 찾아가는, 찾아갈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 영화도 보면 볼 수 록 감독이 이런 것을 숨겨뒀다니!라고 깨닫게 되는 것처럼. 어릴 때는 <어린왕자>가 필독서라서 봤는데, 성인이 돼서 다시 보면 텍스트는 다른데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던 <케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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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공연하는 것에 대해 주위에서는 게스트인줄 안다. (웃음) 내가 마술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까지가 소명이고 욕망일까'하는 것이다. 자잘한 삶의 목표일지, 두렵기도 하고. 하지만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컬래버레이션, 융복합에 관한 책인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오니까 안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비겁함이랄까. 그런데 <케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은결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흥분되기 시작하더라. 가보자! 당신 믿고 가자! 안되면 마술로라도 해주겠지! 라는 마음이다. (웃음)"

이: "좋은 시를 알게 해주셔서(웃음). 그냥 단순히 눈앞에서 '있다! 없다!'라고만 보여주는 것은 재미없을 거 같아서, 마술 밖의 것을 하고 싶었다. 일루션이라고 하지만, 마술을 뭔가 초월적인 것을 하는 것 같지 않나. 시를 다 담을 수 없는 느낌이다. 이미지를 보고 읽어야 하는데, 텍스트를 이미지화한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다.

실제로 뉘앙스가 나누어져 있는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의 맛을 결정하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냥 끄적거리는 것밖에 되지 않나. 그 '미묘한 차이'를 공부하게 된다."

정: "'가는 거야!'하고,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까지 왔다는 의미가 있을 거 같다. 멈추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과욕은 반성하지만 가고 나서 판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 덕분에 또 다른 협업도 생각할 수 있는 거고. (웃음) 작품을 통해 용기와 기회를 얻은 거 같아 고맙다. 또 다른 가능성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덕분에 아이디어가 많아지고."

이: "일 년에 내가 꼭 하고 싶은 작품은 30%만 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인데 올해 못했다. 이 무대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케미 프로젝트>한다는 것에 들떠있다. 관객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웃음) 원하지 않아도 나올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 "기존에 있었던 우리에 대한 이미지를 잊고 오는 것이다. 어떤 기준에 있었던 프레임을 벗고 공연을 즐겨달라는 것. 처음 시도되는 것이라, 거친 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 "세계 초연이라고 하는데(웃음). 시와 미술, 음악. 어떻게 보면 아무도 신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상한 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다. 마술을 예술이라고, 무대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오면 된다. 물론 처음 하는 무대라 아직 장르도 규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의외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재밌다.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케미 프로젝트>는 27일부터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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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찬 교수가 바라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이은결은 예술가 본연의 길을 간다. 시작이 마술이었고, 이미 자신의 길을 넘어섰다. 대중의 눈은 바꿀 수 없고,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태지처럼. 덕분에 후배들의 출발 선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한 마술 입문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CHEMI-PROJECT 이은결 정재찬 케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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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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