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에는 각 구단마다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가던 소위 '리즈 시절'이 있다. 우리은행 위비는 통합 5연패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가 전성기고 그 전에는 신한은행 에스버드가 통합 6연패를 차지하며 WKBL을 지배했다. 삼성생명 블루밍스와 KEB하나은행은 프로 초창기 각각 4번의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하다 못해 2000년에 창단한 '막내구단' KDB생명 위너스조차 2004년 겨울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적이 있다.

하지만 KB스타즈의 경우 프로 출범 후 정규리그 우승만 2회 차지했을 뿐 아직 단 한 번도 챔피언 결정전 우승컵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KB가 투자를 소홀히 해 매 시즌 하위권을 전전하는 약체는 결코 아니다. 김지윤, 신정자, 정선민, 변연하, 강아정 등 KB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스타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우승 경험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

그런 KB가 2017-2018 시즌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챔프전 우승에 도전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독보적인 챔피언 우리은행의 전력이 약해지며 리그 전체적으로 전력 평준화가 이뤄진 가운데 지난 시즌 13경기를 결장하고도 신인왕을 차지한 '거물' 박지수가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을 보내기 때문이다. 과연 KB는 오랜 한을 풀고 프로 출범 후 첫 챔프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

'거물 루키' 박지수로도 풀지 못했던 우승의 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 뿐 박지수의 루키 시즌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 뿐 박지수의 루키 시즌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 KB스타즈


지난 2015-2016 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KB는 플레이오프에서 하나은행을 만나 먼저 1승을 따내고도 2,3차전을 내리 빼앗기며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팀을 이끌었던 서동철 감독은 자진 사퇴했고 팀의 기둥 변연하는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이 끝난 후 '첼시 리 사태'가 터지며 하나은행의 성적이 말소되는 바람에 순위가 한 단계 올라갔지만 변연하가 없는 2016-2017 시즌을 생각하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년 4월 KB의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안덕수 감독과 KB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왔다. 14.3%의 적은 확률을 뚫고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분당 경영고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의 주전센터로 활약하는 한국여자농구의 미래 박지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안덕수 감독은 박지수를 지명하며 드래프트 현장에서 학부모와 기자단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거물루키' 박지수도 당장 KB의 운명을 바꿔주진 못했다. 아시아청소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느라 팀 합류가 늦은 박지수는 설상가상으로 이 대회에서 발등 인대를 다쳤다. 뒤늦게 프로 데뷔전을 가졌지만 WKBL의 판도를 뒤흔들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1월에는 '청주 아이유'로 불리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주전가드 홍아란이 임의탈퇴로 팀을 떠나는 악재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의 활약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5-2016 시즌 KDB생명에서 활약한 적이 있는 플레네트 피어슨은 13.49득점 7.06리바운드에 그쳤다. 득점은 국내 선수인 김단비(신한은행, 14.71점)와 박혜진(우리은행,13.54점)에도 뒤진 리그 8위에 불과했다. 바샤라 그레이브스와 카라 브랙스턴 역시 박지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진 못했다.

그럼에도 KB는 신한은행에게 상대전적에서 앞선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 막차 티켓을 얻었다. 하지만 알리샤 토마스를 앞세운 삼성생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2연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박지수가 데뷔 시즌부터 더블-더블(10.41득점, 10.2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한 것이 플레이오프 조기 탈락의 쓰린 속을 달래 줬다. 홍아란의 갑작스런 이탈로 인한 피해를 심성영이라는 유망주의 발굴을 통해 최소화한 것도 지난 시즌 KB의 작은 수확이었다.

누구보다 꾸준한 KB, 이제는 우승컵이 절실히 필요하다

 비시즌 동안 대표팀에 선발됐던 심성영은 이번 시즌 KB의 주전가드로 더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비시즌 동안 대표팀에 선발됐던 심성영은 이번 시즌 KB의 주전가드로 더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 KB스타즈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KB는 강아정과 박지수를 중심으로 변연하와 홍아란이 없는 첫 시즌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냈다. 2011-2012 시즌부터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어가면서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함께 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KB는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KB에서만 12시즌을 뛰었던 김수연이 은퇴를 선언했을 뿐 전력에 큰 변화 없이 이번 시즌을 맞는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KB는 WNBA 애틀랜타 드림에서 뛰었던 브라질 출신의 빅맨 다미리스 단타스를 지명했다. 지난 시즌 WNBA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7.7득점 3.6리바운드를 기록했던 단타스는 이번 시즌 KB에서 박지수와 '트윈타워'를 형성할 예정이다. 2라운드에서는 풍부한 WKBL 경력을 자랑하는 노장 포워드 모니크 커리를 선택했다.

강아정은 변연하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KB의 에이스다. 지난 시즌 부상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13.03점 4.6리바운드2.9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고군분투했다. 이번 시즌엔 박지수가 풀타임으로 활약할 수 있는 만큼 골밑보다는 장기인 외곽슛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강아정 정도 되는 선수라면 3점슛 성공률이 최소 35% 안팎을 기록해야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지난 시즌 강아정의 3점슛 성공률은 '고작' 29.8%였다).

상대 수비의 집중 마크를 받게 될 박지수는 그만큼 부상 위험 또한 높다.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박지수는 기량이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적절한 출전시간 관리가 필요하다. 김수연의 은퇴로 박지수를 대체할 백업 빅맨이 부족한 KB로서는 김가은,김보미,김진영,커리 등 식스맨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스몰 라인업' 운영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11-2012 시즌부터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KB는 WKBL 무대에서 가장 꾸준한 팀이다. 통합 6연패를 노리는 '절대 강자' 우리은행조차 2011-2012 시즌에는 꼴찌에 허덕인 바 있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는 10년의 꾸준함보다는 한 번의 우승을 더 높게 평가한다. KB가 더 늦기 전에 홈구장인 청주실내 체육관 천장에 우승 배너를 달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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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2017-2018 시즌 프리뷰 KB스타즈 박지수 심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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