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는 불에 탄 여성과 그 여성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눈빛의 남성, 폐허가 되어버린 집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화재로 전소된 그곳은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예전 모습을 되찾고 한 여성(제니퍼 로렌스 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녀는 남편의 흔적을 찾아 온 집안을 헤매고 현관 앞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던 남편(하비에르 바르뎀 분)을 조우한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마더!>에서 1969년생(한국 나이 49세)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과 1990년생(한국 나이 28세)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세월을 초월해 부부를 연기한다. 이 집을 방문한 손님들은 부부에게 아버지와 딸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세월을 건너뛴 오묘한 부부는 영화 초반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장면과 함께 영화 <마더!>의 거대한 복선이 된다.

이보다 더한 복선은 이 영화가 <블랙 스완>(2010)의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 작품이라는 점이 아닐까. <마더!>에는 한 줄의 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하는 남편, 그를 뒷바라지하며 화재가 났던 집을 복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아내의 평온한 일상이 그려진다. 이미 대런 감독은 <블랙 스완>을 통해 미국 뉴욕의 발레계를 배경으로 성공의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와 그 여성을 가혹하고 소모적으로 이용하는 예술 감독 토마스 리로이(뱅상 카셀 분)의 불온한 관계를 그린 바 있다. <마더!> 속 평온한 일상의 부부가 불온해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 <마더!> 스틸 컷.

영화 <마더!>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니나 다를까. 외딴집에 불현듯 찾아온 낯선 중년남성(에드 해리스 분)의 등장은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자신의 시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방을 내주고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남자의 시중을 들어주는 등 과도하게 환대한다.

아내는 평화로운 가정의 일상이 흔들리는 것에 불안을 느끼지만 남편은 일상을 깨뜨리는 혼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치 아내가 지키려 했던 평화로운 일상이 안 써지는 시를 강제로 쓰게 했던 양 말이다. 더 솔직하게는 아내와의 일상에서는 단 한 줄도 안 써지던 시가 낯선 손님의 '파격'을 통해 '구원'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손님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아내, 아들들이 다짜고짜 방문하고 뜻밖의 사고까지 벌어진다. 이는 이 집의 주인이 누구였는지조차 모호하게 이 '가정'을 '공용'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기꺼이 자신의 집을 내어준 남편과 달리 그 속에서 아내는 혼란스러워하며 '가정'을 지키려 한다.

남편의 시, 그리고 아내의 가정

영화 <블랙 스완>에서도 그랬듯이 대런 감독은 <마더!>에서도 '현모양처'처럼 순종하며 남편의 처분을 바라는 아내와 대비되는 캐릭터로 방문객의 아내(미셀 파이퍼 분)를 등장시킨다. 마치 '시바'(힌두교 파괴의 신) 여신처럼 관능적이고 파괴적인 그녀는 편애로 말미암아 두 아들을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또 장례식의 순간에도 모성의 주도권을 놓지 않아 그들이 방문한 집까지 난장판으로 만들고야 만다. <블랙 스완>에서 화이트 스완이었던 니나가 변모하듯 현모양처 아내 역시 그 자신의 집을 흔들어 놓았던 '모성'에 충동을 받아 남편을 도발하고 잉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인을 통해 자신의 시를 길어올리려던 남편은 정작 '아내의 잉태'를 통해 샘솟듯 영감이 떠오르고 10년 만에 신작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어쨌든 부부는 낯선 가족의 방문으로 아이를 얻고 시도 얻게 된다. 그러나 영광은 온전히 가정으로 수렴되지 못한다. 남편의 분에 넘치는 명망은 가정을 지키려는 아내와 아이의 처참한 희생으로 이어진다.
 
 영화 <마더!> 스틸 컷.

영화 <마더!>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마더!> 속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마치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 부부 관계를 보는 듯 하다. '장신(長身)'으로 유명한 마사이 부족 남자들은 말과 소의 피를 먹으며 전사로 길러진다. 그러나 정작 일상을 채우는 건 마오리족 여성들의 가사 노동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며 빈둥거리는 남자들과 달리, 마오리 족 여성들은 가사와 육아는 물론 농사일까지 전담하며 가정을 책임진다. 영화 역시 비슷한 모습으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규정짓는다. '엄마'(마더)를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에서 그녀(제니퍼 로렌스)가 엄마가 되는 건 영화가 시작된 후 한참 지나서다. 오히려 영화 속 '마더'는 남성 중심 체제의 보호자로서 여성이다.

남편은 시를 위해 아내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간다. 아내는 집을 손보고 가사를 돌보며 남편을 뒷바라지한다. 그녀의 소망은 아이를 낳아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 가정은 시를 잉태하는 영감, 배경일 뿐이다. 남편의 관심은 시를 매개로 한 세상 속 자신에게로 향한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아들을 희생하고 결국 아내를 제물로 삼아서까지.

영화는 평화로운 한 부부의 일상으로 시작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부부가 잉태한 아이, 시에 이르러 대런 감독이 생각한 세계에 대한 담론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가장 추상적인 인간 사고의 산물 '시'를 통해 입신양명을 바라는 남편과 구체적인 인간의 생산물인 아이를 원하는 아내를 대비시켜 엇갈리는 남편과 여성의 이해를 보여준다.

아내는 집이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남편, 아이로 구성된 '가족' 단위에 대한 로망을 놓지 못한다. 반면 남편은 '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욕망을 통해 전지전능한 지배욕을 드러낸다. 앞서 아내의 동의 없이 외부인을 기꺼이 집으로 맞이해 칭송 받았던 남편은 자신의 아들조차 강탈해 제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욕망에 화답한 바깥 세상은 그(하비에르 바르뎀)를 영감의 지도자로, 나아가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의 시가 좋다고 찾기 시작한 사람들은 극성 열혈팬이 되고 영감의 교도가 되고 과격한 극렬사상 집단으로 변모해 간다. 이는 필연적으로 테러와 유혈 진압을 초래한다.

사랑을 기반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생산하려는 '모성성'은 철저히 남성의 세계 속에서 소모되고 희생된다. 그러나 대런 감독은 영화 중후반에 벌어지는 난장을 통해 그 추상과 '허명(虛名)'에 집착한 남성의 세계가 달려간 끝에는 폭력 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또 그 폭력의 세계는 여성의 '희생'을 통해 끊임없이 '재부팅' 되고 있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암시한다.

인간의 역사라 쓰고 남성의 역사라 읽고팠던 대런 감독
 
 영화 <마더!> 스틸 컷.

영화 <마더!>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대런 감독의 <마더!>는 '인간의 역사'라고 쓰고 '남성의 역사'라고 읽어야 하는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 속에서 남편으로 상징되는 남자들은 <블랙 스완>의 리로이만큼이나 여성을 소비고 소모하며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이어가고자 한다. 잠시 등장했던 또 다른 마더(미셸 파이퍼)는 남성의 권력으로 이어진 강고한 위계 질서의 강렬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조력자일 뿐이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자신의 저서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결국 지배와 억압으로 귀결될 뿐이다"고 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보다 젊은 '엄마'로 리뉴얼되는 아내로 마무리하면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폭력으로 귀결되는 남성의 역사를 담론화했다.

영화 <마더!>에 대한 호불호는 '정체 모를 영화가 나아가는 궤적을 이해하는가' 그리고 '대런 감독이 펼쳐보이는 상징적이면서도 도식적인 담론이 21세기에도 유효한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로 역사를 규정짓고 있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성과 여성에 대한 '역할론'에 매몰되는 우를 범한다.

지난 세기까지는 인간의 역사를 지배와 억압으로 도식화해 설명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과연 21세기에도 그 성적 역할론이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질문을 남긴다. 오히려 차별의 역사를 논하고자 하는 바가 남성과 여성을 '외향적 남성성'과 '사랑 순종주의의 여성성'으로 규정하는 역설적 차별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지배와 억압의 도식이 낳은 자충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마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