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경기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기는 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저스는 10월 20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열렸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서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호투와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11-1 대승을 거두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올랐다(시리즈 스코어 4승 1패).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차지한 것은 1988년이 마지막이었다. 다저스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 등극도 1988년이었으며, 이후 다저스는 29년 동안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1988년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당시의 감독이자 현재 다저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토미 라소다가 클럽하우스에 방문하여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월드 챔피언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정도로 염원이 크다.

다저스는 1988년까지 총 6번의 월드 챔피언(1955, 1959, 1963, 1965, 1981, 1988)에 올랐으며, 21번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아메리칸리그 출범으로 월드 시리즈가 생긴 이후로는 18번 리그 챔피언을 차지했다. 1988년 우승 이후에는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5번(2008, 2009, 2013, 2016, 2017) 진출했다.

그러나 다저스는 2008년과 2009년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패했고, 2013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그리고 2016년에는 시카고 컵스에게 패했다.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 4팀 중 가장 긴 시간 우승하지 못한 팀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창단 이래 월드 챔피언 없음)에 이은 2번째였다.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팀" 다저스, 29년 만에 월드 시리즈 진출

다저스는 2017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선수 보강에 나섰다. 지난 시즌 후반기에 손가락 물집이 자주 말썽을 일으켰지만 나름 좋은 활약을 해 줬던 베테랑 왼손 투수 리치 힐과 재계약했고, 이번 여름 트레이드 시장에서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에이스였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를 데려왔다. 뿐만 아니라 류현진, 브랜든 맥카시 등 긴 부상에 시달렸던 일부 주전급 선수들이 돌아와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타선은 저스틴 터너를 중심으로 세대 교체에 성공했다. 애드리안 곤잘레스의 플래툰으로 다저스에서 역할을 맡았던 터너가 풀 타임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후, 현재 다저스의 타선 전체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신인 코디 벨린저가 팀내 홈런 1위에 올랐고, 크리스 테일러, 로간 포사이드, 오스틴 반스 등 젊은 타선들이 힘을 냈다. 말썽을 일으키던 야시엘 푸이그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다.

불펜도 켄리 잰슨이 버티고 있는 뒷문을 믿고 다른 투수들이 힘을 냈다. 잰슨은 올 시즌도 65경기에서 5승 무패 41세이브(1블론) 평균 자책점 1.32로 트레버 호프먼 상을 받았던 지난해보다도 더 위력적인 투수가 됐다. 페드로 바에즈가 23홀드, 조시 필즈가 15홀드, 루이스 아빌란이 13홀드, 브랜든 모로우가 10홀드 등 다른 주요 필승조들도 2점 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철벽 불펜을 형성했다.

무엇보다 부상 선수나 부진에 빠진 선수가 있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등장해서 빈 자리를 채워줬다. 이 때문에 다저스는 포스트 시즌 로스터를 구성할 때에도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그 결과 이 날까지 포스트 시즌 전적 7승 1패(승률 0.875)로 질주하고 있다.

다저스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선발투수들이 기대만큼의 큰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앞뒤 타선 가리지 않고 매 경기 다른 선수들이 골고루 활약해 준 덕분에 먼저 실점하고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를 뒤집으면 바로 철벽 불펜을 가동하여 승리를 지켜내는 공식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다저스 불펜은 이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경기에서 컵스의 타선을 상대로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비록 1점 차로 패했던 4차전 경기에서도 실점은 모두 선발투수 알렉스 우드의 실점이었고, 뒤이어 등판한 구원투수들은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그 결과 다저스 불펜은 현재 포스트 시즌 6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다저스는 11승 1패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포스트 시즌 최고 승률 기록에 도전한다. 디비전 시리즈가 도입된 1995년 이래 아직까지 월드 챔피언까지 11전 전승 우승 사례는 한 번도 없으며, 와일드 카드 결정전을 치르는 경우도 아직 12전 전승 우승 사례는 한 번도 없다(201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2승 5패).

당시 화이트삭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레드삭스를 스윕했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LA 에인절스를 상대로 1차전 패배가 화이트삭스의 유일한 패배였다. 그러나 화이트삭스는 선발투수들의 4연속 완투에 힘입어 1패 뒤 4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스윕에 성공하며 11승 1패로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큰 경기 울렁증 이겨낸 커쇼, 처음으로 시리즈 최종전 승리투수

사실 다저스의 에이스 커쇼는 정규 시즌에서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선발투수였다. 만 29세의 나이로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을 벌써 3번이나 수상했고, 리그 트리플 크라운과 MVP도 각각 한 번 씩 차지했을 정도로 최고의 투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랬던 커쇼도 포스트 시즌만 되면 작아졌다. 물론 모든 경기마다 부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하필 커쇼가 부진했던 경기들이 너무 중요한 순간에 부진했고, 그 부진의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에서 유독 부진한 선수로 인식이 된 것이다.

커쇼가 포스트 시즌에서 약한 투수라는 이미지가 쌓이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2013년 NLCS 최종전이었던 6차전이었다. 그 전까지 커쇼는 2013년 포스트 시즌 3경기에서 도합 19이닝 1자책으로 압도적이었는데, 그 6차전에서만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진 것이다. 물론 득점 지원은 당시 2차전과 6차전 상대 투수였던 마이클 와카(당시 NLCS MVP)에게 막혀 한 점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커쇼는 시리즈 기선 제압에 중요한 첫 경기 등판에서도 부담을 보였다. 2014년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는 넉넉한 리드를 안고 시작했던 7회에만 6실점하는 등 6.2이닝 8실점의 충격적인 패전을 당했다. 2015년에는 퀄리티 스타트 패전을 당했고, 2016년에는 5이닝 3실점 패전, 2017년에는 6.1이닝 4실점(4피홈런)으로 쑥쓰런 승리투수가 됐다.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커쇼는 1차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아주 부진한 것은 아니었는데, 자신이 포스트 시즌에서 약하다는 꼬리표를 떼어내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왔고, 커쇼는 6이닝 1실점(1피홈런)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하며 자신이 포스트 시즌에서 약하기만 한 투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번 5차전에서는 키케 에르난데스가 그랜드 슬램을 포함하여 혼자서 3홈런 7타점으로 최고의 날을 보낸 덕분에 커쇼는 초반부터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 커쇼에게 이 날 경기에서 굳이 흠이 있다면 또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면서,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만 피홈런이 6개가 되었다는 점이다.

커쇼는 이전까지 시리즈 최종전만 되면 더욱 작아졌다. 201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6이닝 무자책 노 디시전을 기록했을 뿐, 그 해 NLCS 6차전에서 4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고, 2014년 NLDS 4차전에서도 6이닝 3실점 퀄리티 스타트 패전을 당했지만 7회에만 2점을 내 주고 당한 패전이었다.

2016년에도 커쇼는 시리즈 최종전에 2번 등판했다. 그 중 한 번은 디비전 시리즈 5차전 마무리투수 등판으로 0.2이닝 세이브를 기록했고, 나머지 한 번은 NLCS 6차전으로 5이닝 4자책 패전이었다. 그랬던 커쇼가 이번에는 시리즈 최종전에서 드디어 승리를 기록하게 됐다. 다저스가 마지막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1988년에 태어난 커쇼는 이제 생애 첫 월드 시리즈 등판 기회를 자신이 스스로 만들었다.

터너와 테일러 NLCS 공동 MVP 수상, 이제는 월드 시리즈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에서는 시리즈 중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에게 MVP를 수여한다. 그런데 이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MVP가 2명이 나왔다. 2017년 NLCS MVP로는 다저스의 타선을 이끄는 베테랑 저스틴 터너와 젊은 타자 크리스 테일러가 공동으로 수상하게 됐다.

터너는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타율 0.353에 2홈런 5볼넷 5타점 OPS 1.145로 불타오르며 흔히 "터너 타임"이라 불리는 승리 공식을 만들었던 타자다. 특히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는 끝내기 스리런 홈런을 포함하여 혼자서 4타점을 책임지며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테일러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타율 0.316에 2홈런 3타점 4볼넷 OPS 1.247로 중요한 순간 큰 활약을 펼쳤다. 특히 3차전에서는 3루타와 홈런 하나 씩을 기록하며 2타점을 기록하는 장타로 승리에 기여하는 큰 임팩트를 선보였다.

이제 다저스는 월드 시리즈 1차전이 열리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간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는 올스타 게임 승리 리그의 팀이 월드 시리즈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갔지만, 2017년부터는 승률에 의한 홈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면서 최고 승률 팀(104승 58패)인 다저스가 어드밴티지를 획득했다.

또한 챔피언십 시리즈가 시카고에서 끝나게 되면서 다저스는 25일에 열리는 월드 시리즈 1차전까지 홈에서 4일의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5차전 승리투수 커쇼가 정상적인 루틴으로 4일을 쉬고 월드 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저스는 정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꾸릴 수 있다.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상대 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뉴욕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5차전까지 치른 가운데, 양키스가 3승 2패로 앞서있다. 두 팀은 뉴욕에서 휴스턴으로 다시 이동하여 21일부터 시리즈 6차전을 치른다. 만일 6차전 경기에서 애스트로스가 승리할 경우 ALCS는 22일 7차전까지 가게 된다.

다저스는 베테랑 외야수 안드레 이디어가 이번 디비전 시리즈 당시 인터뷰에서 챔피언십 시리즈 상대 팀이 최대한 체력을 소진하고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컵스와 워싱턴 내셔널스는 디비전 시리즈를 5차전까지 치른 데다가 컵스가 선발투수들을 구원 등판시키는 등 로테이션까지 꼬인 채로 올라왔다.

공교롭게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소 6차전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두 팀은 휴스턴에서 뉴욕으로, 다시 뉴욕에서 휴스턴으로 이동하는 체력 소모가 있었다. 두 팀 모두 총력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월드 시리즈에서도 다저스는 홈 어드밴티지에다가 체력적 우위 그리고 상대를 기다리는 여유까지 갖게 됐다.

다저스가 월드 시리즈를 앞두고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투수들의 피홈런이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실점 대부분이 홈런이었던 만큼 정규 시즌 팀 홈런 1위 양키스(241개) 또는 2위 애스트로스(238개)를 만나는 다저스가 부담을 갖게 되었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피홈런이 문제다. 커쇼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만 6피홈런을 기록했고, 그 중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1경기 4피홈런을 허용하고도 승리투수가 되는 쑥쓰러운 기록을 세웠다. 1경기만 등판한 알렉스 우드도 3피홈런으로 좋지 않은 모습이며, 힐과 다르빗슈 유도 각각 2피홈런이다.

게다가 양키스와 애스트로스의 홈 구장들은 타자 친화적으로 유명한 뉴 양키 스타디움과 미닛 메이드 파크다. 양키 스타디움은 예전의 경기장에 비해 담장 높이가 낮아서 홈런이 많이 늘어났으며, 미닛 메이드 파크는 좌측 담장까지의 거리가 짧아 오른손 타자 홈런이 많이 나오고 중앙 외야가 유난히 깊어서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가 엄청난 비거리의 3루타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러한 점들은 다저스가 상대 팀들에 비해 유리한 조건에서 월드 시리즈를 맞이하지만 꼭 해결해야 할 숙제다. 비록 이 약점을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다저스는 다른 동료들이 승리를 돕는 그야말로 완벽한 "팀"이 되었기 때문에 선발투수들이 최소한의 역할을 다하면 불펜이 뒷문을 닫아 걸고 승리를 지킬 수 있다.

다저스가 29년 동안 염원하던 21세기 첫 내셔널리그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제는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까지 앞으로 4승이 남았다. 류현진은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들어가진 못하고 있지만, 예비 명단으로서 팀 일정에 동행하고 함께 프로 생애 첫 리그 챔피언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팀" 다저스가 여세를 몰아 21세기 첫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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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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